조지야에 들어서다!

인천에서 아시아나를 타고 터어키 이스탄불을 거쳐서 조지야에 들어옵니다.

 

거주하는 한국인은 2~3 명에 불과

저녁 8시에 도착하여 작은 공항에 나와 주위를 둘러봅니다. 아주 정답고 포근한 풍경들이 소박하고 정겨웁게 느껴집니다. 10월 중순의 조지아는 코 끝을 자극하는 독특한 냄새를 풍깁니다. 낯선 곳의 냄새가 심장을 뛰게 합니다.

조지야의 수도 트빌리시에 사는 한국인은 2~3명 이라고 합니다.  단체 여행객은 가끔 터어키를 경유하여 오지만  조지아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몇 명에 불과합니다. 친구 부부가 마중나와 조지야인(친구의 친구)의 오래된 벤츠에 올라 시내로 들어갑니다. 석양이 물든 잔잔한 도로와 산들을 보면서 낮선 풍경 속으로 차가 달려갑니다. 조지야의 첫 느낌은 이스탄불의 비내리는 공항보다  인간적이고 한국과 가까운 느낌이 들었습니다. 낮설지 않은 그런 느낌들…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도 했던 작은 나라

스탈린의 고향이기도 한 조지야는 2008년도에 러시아의 침공을 받았던 당시 폭격의 잔해가 아직도 일부 있다고 합니다.  작은 나라가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이 언뜻 이해가 되지 않기도 하고 아무튼 이상한 나라입니다.

산악인들의 후예라고 합니다. 산에서 자고나라 투쟁심이 강하고 자존심이 강하다고 합니다.  남성적이고 빨치산(파르티쟌)의 후예답게 인구 4백만의 작은 나라지만 기가 죽지 않고 씩씩해 보였습니다. 시내에 들어서니 큰 강이 흐르고 강을 사이에 두고 절벽과 암벽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틀만 머물러서 자세히 그루지야를 볼 수는 없었지만, 만나는 인간들의 내면이 순수하고 강한 인내심을 가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몇 천미터의 산악지대에서 계속 죽음을 불사하며 외세에 항쟁하는 것이나,  스위스같은 조그만 나라의 전통과 명예를 지켜내며 사는 것은,  민족적 기질이 다분히 강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아일랜드도 작은 나라지만 문화와 전통이 매우 깊은 내력을 지닌 것이 비교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포도주의 유래가 시작된 곳

조지야에서 포도주가 처음 유래되었고 메디신이라는 용어(단어)도 조지야에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자세한 이력과 전통은 제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그렇다고 자부하니 믿어주고 들어주면 되는 것 같습니다.  사람을은 보수적으로 보이고 조지야 정교회를 방문하니 러시아 정교회와는 다른 묘한 종교적 색채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반러시아 감정으로 현직 대통령과 국민들이 미국의 편에 서서 자본주의를 발전시키려고 외자유치 및 관광사업에 박차를 가한다고 합니다.

도시는 전체적으로 고적들과 오래된 건축물이 많아 마음에 안정과 평화를 주는 도시입니다.  한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낭만적인 생각이 들곤 합니다. 사람들은 매우 친절하고 온화합니다.

 

체첸의 ‘백야’를 생음악으로 듣다.

농촌에 초대되어 가족들과 그 친지분들과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연주를 들으면서 보낸 몇 시간은 지난 2년 동안 내게는 가장 행복한 하루였습니다. 조지야의 음식은 이스탄불보다 맛있었습니다. 유기농 재료로 만든 빵과 채소, 식탁에 올라온 모든 것이 먹을수 있고 감미로왔습니다. 특히 포도주는 환상적입니다.

우정을 위하여 양을 한마리 잡고, 담근  포도주를 먹으면서 체첸의 <백야>와 또 조지야의 비장한 생음악들을 듣고 있자니 내 속에서 잠자고 있었던 모든 영혼들이 깨어나 요동을 치는 듯합니다.

조지야

 

감미로운 포도주,  비장한 음악, 사랑스러운 사람들

함께 있는 사람들이 사랑스러워 감당하기 힘든 마지막 하루였습니다. 조지야에서는 손님과 친구들이 오면 바로 그날이 축제의 날이라고 합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음악을 들으며 춤을 추다보면 행복이란 이런 것이었지…라고 느껴집니다.

조지아에서 내 생의 최고의 날 중 하나를 기억 속에 저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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