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목을 써놓고 컴퓨터를 켜두고 잠시 아침을 먹고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제목을 읽어보니, 뭐 있어 보인다. 근데 내가 사실 하려던 말은 이번에 내가 뉴욕을 가서 아웃렛에서 쇼핑을 하던 얘기를 잠깐 하고 싶어서다.

뉴욕을 가서 쇼핑을 하면 누구나 그렇겠지만, 뉴저지에 있는 우드버리 아웃렛이나 그라운드 제로 옆에 있는 센트리 21 (Century 21)을 빼놓을 수 없다. 특히 이번처럼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는 5번가의 백화점들은 나랑 동떨어진 얘기들이다. 특히 아웃렛에서 내 맘에 쏙 드는 물건을 말도 안 되는 파격가에 건지게 되면 비행기 값을 아낀 생각이 들어 뿌듯해진다. (사실 정신차리고 다음달 카드사용 내역서를 확인해보면 내가 치러야 되는 돈은 ‘비행기값 + 물건값’인데 말이다)

하나의 쇼핑센터가 마을 형식으로 구성된 우드버리와는 달리, 센트리 21은  3층으로 된 백화점에 온갖 디자이너 상품들이 정신 없이 빡빡하게 옷걸이에 걸려있다. 특히 3층 여성 정장 코너에 가서 사람들 손을 많이 타서 올이 나가있는 실크 비즈 블라우스를 들어보면 스텔라 맥카트니의 정상가 200만원짜리 옷이거나, 고소영이 입어서 더 유명해진 오스카 드 라 렌타 (Oscar de la Renta)의 드레스가 매몰차게 여러번 가격표가 바뀌어 구석에 처박혀있기도 하다.

다 예전에는 부띠끄 매장의 화려한 조명을 받고 도도하게 혼자 걸려있었을 옷들이 여러번 트럭을 바꿔 타고 굴러 굴러 여기까지 들어왔을 것을 생각하니 불쌍하게 생각되기도 하고, 또 좀 패션 센스 있으면서도 아웃렛에서 보물찾기를 마다하지 않는 주인들을 만나야지 그나마 이름값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애틋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센트리 21에는 요즘 뉴욕, 파리에서 이름을 날린다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필립림이나 알렉산더 왕같은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철 지난 옷들도 한 켠에 자리잡고 있다. 이들 브랜드들의 특징은 뉴요커들이 좋아한다는 무채색의 심플하거나, 혹은 매우 실험적인 옷들이어서 과연 원피스 하나에 백만 원이 넘는 돈을 주고 사야될 필요가 있을까 생각이 들게 한다.

또 시작가가 백만 원이 넘다 보니 파격 세일에 세일을 더한다고 하더라도 몇 십만 원을 훌쩍 넘긴다. 물론 옷을 입어본 사람들이야 그 몸에 착 감기는 남다른 감촉을 느낄 수 있다고 하지만, 그냥 눈으로 보았을 때는 유니클로의 J 플러스나 바나나 리퍼블릭의 몇 만원 짜리 원피스와 비교해봤을 때 파격할인된 가격표를 보고도 충동 구매가 쉽게 일어나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이건 ‘개인의 취향’이다. 아는 사람도 알아보기 힘들 것 같은 질샌더의 블랙 팬츠를 살 돈이 있다면, 나라면 차라리 적어도 아는 사람은 알아볼 수 있다는 알렉산더 맥퀸의 원피스를 고르겠다)

이렇게 ‘일반인’의 눈에는 크게 다를 바 없는 신진 디자이너들의 옷 가격표가 오래된 명품 브랜드에 맞먹는 몇 백만 원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을 보면, 어쩌면 이 패션의 세계라는 것이 ‘현대 미술’과 매우 비슷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큰 캔버스에 페인트를 흩뿌린 잭슨 폴록의 그림이나 하얀 바탕에 까만 굵은 선 하나 그어놓고 유명 현대 미술관에 떡 하니 자리를 잡고 있거나, 소더비, 크리스티 같은 옥션 하우스에서 높은 가격에 팔리는 그림들 말이다. 미니멀리즘을 표방하면서 평범하기 그지없으면서도 다른 평범한 옷 브랜드의 제품보다 몇 배 심하게는 몇 십 배 높은 가격표를 붙인 ‘패션계의 인정을 받은’ 신진 디자이너의 작품도 이와 비슷한 메커니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 난해한, 혹은 이해할 것 마저 없어 보이는 현대 미술 작품이 마켓에서 ‘낯설게 하기의 미학’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가격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보그나 엘르 등 패션지 기사를 통해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점점 귀에 익숙해지는 젊은 아시아계 패션 디자이너들의 옷에도 공(0) 두 세 개는 더 붙은 듯한 가격표가 붙여진다. 작가나 디자이너나 자기 작품을 알아봐주는 사람과 장소, 타이밍(소위 ‘운때’)이 작가의 성공을 위해 작품 그 자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요즘 읽기 시작한 책 중에 ‘Seven Days in the Art World’가 있다. 실제로 현대 미술계 현장에서 작가가 일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것을 적은 소설인데 한 마디로 현대 미술계의 뒷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지난 주 갔었던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서점의 베스트셀러 부스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는 점이 이색적이다. 만약 그게 현대미술작품으로 미술관 전체가 채워진 MOMA 였다면, 더 신선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젊은 화가들이 현대 미술계의 인정을 받으며 화려하게 작가로 칭송을 받기까지의 업계 뒷 이야기에 대한 작품이다.

결국 현대 미술이 작품성을 얻기까지는 작가의 작품 그 자체는 아주 기본 중의 기본인 것이고, 작품이 작가의 손을 떠난 이후의 딜러, 큐레이터, 작품 수집가, 비평가, 언론 등의 합작품에 대한 평가일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맞는 말이다. 그것에 바로 현대 미술에 대해 애호가 혹은 무관심자가 극명하게 나뉘는 이유이기도 할 테니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이 글을 쓰다가 문득 떠오른 궁금한 점. 미술계에도 ‘센트리 21’같은 곳이 있을까. 내 마음에 쏙 드는 폴 스미스 자켓을 1/5 가격에 고를 수 있는 곳처럼, 보기만 해도 달콤한 앤디워홀의 ‘LifeSavors’ 작품을 내 스스로 지갑을 열 수 있는 수준의 가격에 소장할 수 있는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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