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의 연승은 이세돌프로기사의 5대 0의 일방적인 승리를 응원했기에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충격입니다. 대학원 시절부터 인공지능은 연구의 대상이자 목적물이었고 사업 역시 그 분야에서 해오면서, 동료들끼리 인공지능은 어차피 풀리지 않는 문제이니 평생 먹고 살 수 있겠다는 농담을 하곤 했었습니다.  최근 인공지능으로 주가를 예측하는 회사를 실리콘 밸리에 차렸지만,  이번 알파고의 승리는 여전히 놀랍습니다.

웃음기 사라진 알파고와의 대국

‘한판 정도…’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대국에서는 마치 장난감을 대하듯이, 애완용 로봇을 다루는 어린이처럼,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비틀어보고 하는 이세돌 기사의 표정이 오히려 재미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해도 중반 이후에 알파고의 소위 덜컥수가 나와서 손쉽게 이세돌프로가 이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이제까지 제가 알고 있었던 ‘인공지능’이었기 때문이죠. 정말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능을 보이다가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데서 엉뚱한 판단을 하곤 하는 게 현재의 인공지능입니다.  독립적인 사건에서는 7, 8개를 잘 판단하고 1,2 개를 틀려도 큰 문제가 없기도 합니다. 확률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에 주식 투자의 분야에서는 이미 인공지능을 활용한 펀드가 더 나은 수익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둑 게임이 어려운 이유는 개별 선택이 독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매번 놓이는 돌들이 최종 승부에 계속 연결되어서 영향을 주게 됩니다. 따라서 열 번을 잘 선택한다고 해도 한두 번의 실수는 패배로 이어집니다. 흑과 백 쌍방이 100 여수 이상을 착수하는 바둑 게임에서 인공지능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을 거라고 믿기는 오히려 전문가라서 어렵습니다. 더군다나 상대방이 인간계 최고의 고수 이세돌프로라면 한두 번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습니다. 그래서 알파고의 승리가 바둑전문가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전문가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 온 것입니다.

‘비록 5대 0으로 졌지만 최고의 기사를 상대로 만만치 않은 승부를 가져갔다’라는 결과가 제가 예상했던 시나리오였고, 그것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인공지능이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되고 이어서 제가 속해 있는 인공지능 관련 산업도 탄력을 받을 수 있을거라고 낙관하고 있었습니다.

전국민이 인공지능을 알게 되다

첫 대국의 결과가 나오고 지인들과 맥주 한잔 할 때만 해도 허무하기도 했지만 간혹 웃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두번째 대국은 그 과정부터 분위기가 다릅니다. 우리가 평소 봐왔던 그런 진지한 이세돌프로였고 해설자들 역시 높은 긴장 속에서 한수한수 해설해갑니다.  역설적으로 한번의 패배로 인간들의 상상력의 폭이 폭발적으로 넓어진 겁니다. 알파고를 까려고 호시탐탐 노리던 자세에서 그의 수를 이해하려는 태도로 변했습니다. 초반의 우세가 점점 박빙으로 가더니 결국 열세를 만회하지 못하고 돌을 던질 때 우리의 기대와 더불어 이성도 같이 붕괴되었습니다.

뭔가가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낍니다. 느낌이 좋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해석하고 나아가야 하는데 도망갈 구석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상황을 우린 ‘두려움’이라고 표현합니다. 유희에서 공포로 감정이 이동되어 버립니다. 제법 바둑을 두던 사람들도 제법 컴퓨터를 알던 사람들도 경직되기 시작합니다. 나머지 세 판을 모두 이겨 역전하면 되지 않나 하는 말은 순식간에 개그로 들립니다. 한 판이라도 이겨야 하는거 아닌가, 왠지 모르겠지만 그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애처러운 생각이 더 합리적으로 보여집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한판이라도 이겨야 ‘다음’ 이 있으니까요.

많은 바둑 전문가들이 인공지능이 부분적이 전략들 즉 바둑 사활에서는 빠른 계산으로 인간을 압도할 수 있지만 초반 포석이나 형세판단에서는 약점이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었습니다. 특히 ‘패’라는 프로기사들도 피해가고 싶은 바둑 최고의 난제는 절대 인공지능이 잘 할 수 없을 거라고 믿고 있었고 3국 바둑 후반에 이세돌프로가 승부수로 던졌습니다.

이제껏 패를 피해갔던 알파고가 손을 빼는 장면에서 결정적인 약점이 나타났다고 해설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한 수를 두지 않아도 된다는 계산이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다다르자 해설을 하던 프로기사도 지켜보던 사람들도 모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긴박한 승부에서 천하의 이세돌프로를 상대로 한 수를 두지 않고 ‘거긴 별다른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인간계 고수는 존재할 수 없는데, 알파고가 감히 그렇게 해버린 겁니다. 그리고도 불계승을 거둘 수 있었기에 더 이상 약점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이제는 바둑에서 어렵게만 느껴졌던 그래서 바둑을 아름답게 만들었던 개념들, 모양, 두터움, 기세, 중원, 발빠름 등은 더 이상 낭만적인 바둑 용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냥 기계가 계산 가능한 그런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계산이 가능하다는 건 더 이상 흥미롭지 않을 수 있는 겁니다. 결과를 뻔히 아는 이야기만큼 지루한 것도 없으니까요.

인공지능은  17년 전에 체스게임을 정복하고 5년 전에는 미국 최대 퀴즈쇼에서 사람을 제쳤습니다. 작년부터는 운전자 없는 자동차가 실제 도로를 달리고 있습니다. 이미 인공지능이 인류 문명 곳곳에 침투해서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인공지능의 존재를 가장 크고 시끄럽게 알린 것이 바로 이번의 바둑 대국입니다.

21세기 서양기술문명의 총아라고 여겨지는 구글의 전 CEO 가 자랑스럽게 알파고를 대동하고 – 실제로는 미국/영국 서버에 존재하겠지만 – 동양 최고 정수의 놀이 문화인 바둑 최고 고수에게 도전장을 내민 장면은 산업혁명 이후 첨단 군함과 무기로 무장하고 동양을 찾아왔던 역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당시에도 처음 만난 서양의 기술들을 처음에는 무시했을 것이고, 충돌의 결과에 많이 놀랐을 것입니다. 믿었던 조선의 최고 정예부대들이 배 한두 척을 당하지 못하고 물러서는 것은 대단한 충격이었을 겁니다

인공지능 기술 따라잡기

근대사를 어렵게 시작했지만 한국은 민족 특유의 영리함과 성실함으로 오늘날 세계적인 국가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와 같은 초일류 글로벌 기업을 보유한 국가이기도 합니다.  그 과정에서 후발 주자의 이점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삼성전자가 일본 회사들의 기술을 따라잡기 위해서 반도체칩을 부셨다든지 현대자동차가 독일의 명차들을 분해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앞으로 디지털 경제를 이끌고 갈 인공지능은 그 특성상 심지어 그것을 만들어낸 개발자까지도 인공지능의 결과가 왜 그런지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을 만큼 복잡합니다. 애플의 아이폰을 사면 시리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를 사면 무인 운전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마 조만간 구글의 알파고를 인터넷을 접속해서 개인들도 도전해볼 수 있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폰, 테슬라 자동차 안에는 어디에도 인공지능은 없습니다. 분해해보고 싶어도 서비스 단말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구글 본사 마운틴 뷰 또는 사막 한가운데 있는 데이터센타 또는 전세계에 분산되어 네트워크 위에만 존재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더이상 지난 세기 후발 국가들이 했던 카피 전략이 미래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한번 뒤쳐지면 다시 역전의 기회가 아예 없어지는 겁니다. 이것이 인공지능이 주는 진정한 두려움입니다.

시간 싸움, 그리고 알파고의 선물

알파고는 태어난지 몇 년 되지 않아서 그동안 사람이 두었던 중요한 바둑기보에 대해 모두 알아버렸습니다. 그리고 24시간 쉬지도 않고 자기들끼리 바둑을 둘 수 있습니다. ‘유럽 바둑 챔피언을 꺾고 불과 3개월만에’라는 표현은 인류에게는 의미가 있지만 인공지능에게는 3개월이 3년일 수도 30년일수도 어쩌면 3천년일 수도 있습니다. 출발 시점 1, 2년 차이가 얼마 후엔 수백년 수천년의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물리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의 개념이 인공지능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겁니다.

전세계가 주목하는 인공지능의 대중적 출현이 바로 서울에서 한국인 이세돌기사를 상대로 일어났다는 것은 역사가 한국에 주는 최고의 선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바둑을 즐겨 두는 중국, 일본도 관심이 많겠지만 한국 국민만큼 공감을 갖지는 못할 것입니다. 구글은 이번 이벤트로 수천억원의 광고 효과를 거두었을테고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세계 최고의 자리를 지켜갈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교육효과를 얻었습니다. 전국민이 인공지능에 대해 높은 수준으로 이해하게 된 것입니다. 어떤 정치인도 학자도 몇 년 안에 결코 할 수 없었던 일을 불과 1주일 안에 다 해버린 겁니다. 만약 한국이 알파고가 준 이 선물을 잘 활용한다면 그 가치는 결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것입니다.

알파고가 인공지능 기술을 활용한 비즈니즈 정도의 의미가 아니라 지구의 모든 인류가 맞이하게 될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서막이라는 것을 다른 어떤 국가보다 더 절실하게 알 수 있다면 앞으로의 디지털 경제에서 한국은 남들보다 빨리 나아갈 수 있을 겁니다.

우스갯소리로 곧 정치권이 ‘인공지능특별법’을 제정하고 온 나라가 인공지능으로 야단이겠군 하지만, 이는 정치를 떠나 당장 시작해야하는 시급한 과제입니다. 정치권은 여야를 떠나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고, 학계에서는 인문 사회 예술 등 모든 분야에서 인공지능에 대한 연구가 바로 시작되어야 합니다. 산업계에서도 자신들의 비지니스가 미래에 인공지능과 어떤 관련이 있을지를 면밀히 검토해서 미래 전략을 짜야 할 것입니다.

알파고야 말로 한국이 미래를 위해 쓸 수 있는 ‘신의 한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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