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이 아닌 개체는 하찮은 존재이거나 인간보다 높은 수준의 존재이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개체보다 우위에 있는 어떤 것이다. 공동생활을 영위할 수 없거나, 혹은 공동생활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만큼 자급자족이 가능한, 그래서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짐승이거나 신이다. – 아리스토텔레스

 

문자문화 vs. 구술문화

책을 읽는다는 것은 혼자서 하는 경험이고, 대단한 집중력을 요구하는 과정이다. 폐쇄적이고 제한적이며 철저히 자신만의 세계 속에 파묻힌다. 만약 누가 책 읽는 과정에 끼어든다면 몰입을 할 수 없다.

미국의 역사학자 엘리자베스 아이젠슈타인은 “개인이 사회집단에 선행한다고 여기는 생각은 듣는 사회보다 읽는 사회에 더 어울린다”라고 말했다. 문자 위주의 문화를 대변하는 묵독의 대중화는 대중을 개인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것은 독서를 통한 개인화가 개인을 공동체로부터 고립시켰다는 의미는 아니다.

구술문화 위주의 사회에서는 어휘의 수가 몇 천개가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문자 위주의 사회에서는 수십만 개의 어휘를 갖는 경우가 보통이다. 그만큼 문자언어는 느낌이나 마음상태를 포함하여, 세상을 표현할 수 있는 용어를 광범위하게 제공한다. 독서는 타인과 대화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풍부한 언어와 수많은 사람들의 관점을 취하며 자기 자신과의 대화를 가능케 한다. 독서는 자기 분석적 사고의 함양과 자기성찰을 통해 개인을 더 성숙한 존재로 만듦으로써 공동체에 기여하게 된다. 그럼에도 묵독으로 대표되는 문자문화는 공동체적이라기 보다 개인적이다.

세인트루이스 대학의 명예교수 월터 옹은 “전형적인 시각 관념은 판명과 분석이지만, 청각적 관념은 조화와 종합이다”라고 했다. 묵독은 내면의 소리를 내놓지만, 낭독은 소리 그 자체가 밖으로 나온다. 내면의 소리는 나 혼자만 들을 수 있지만, 입으로 나오는 소리는 나뿐만 아니라 타인이 들을 수 있다. 듣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타인과의 소통을 직접적으로 가능케 한다. 독서의 초기 역사에 낭독이 대중적인 독서였던 이유는 문자가 발명되기 전의 사회가 구술문화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낭독은 문자가 탄생된 이후에 생겨났지만 무척이나 구술문화적인 독서법이다.

구술문화의 특징은 참여적이고 공동체적이라는 점이다. 소리는 널리 퍼지며 서로 주고받을 수 있으며 동시다발적이다. 개인의 영역은 희미한 반면 집단의 영역을 공고히 해 준다. 내면의 성찰을 중시하기보다 개인간의 유대감과 공동체의 조화가 우선시된다. 개인의 성장과 성숙보다 공동체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 궁극적 목표이다.

이제 루이스와 톨킨의 낭독모임인 잉클링스에서 나는 낭독보다는 ‘모임’에 방점을 찍고자 한다. 낭독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할지라도, 책을 중심으로 모임을 가졌다는 그 자체가 구술문화를 부활시키는 행위이다. 독서모임은 개인화된 독서가 공동체적 독서와 융합되는 것을 가능케 한다. 그렇다. 독서모임 자체가 그 무엇보다 훌륭한 ‘독서법’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로 태어난다

뇌과학의 황금기는 안타깝게도 큰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와 대개 일치한다. 전쟁 중에 입은 머리 부상으로 뇌의 여러 부위에 손상이 생기곤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뇌를 직접 스캔하고 촬영할 수 있는 기술과 장비가 세상에 나오면서 뇌 손상이 없는 사람을 통해서도 뇌의 비밀을 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뇌과학은 뇌가 특정 정신작용에 맞추어 어떻게 반응하며,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 뇌의 활성화 영역을 탐구함으로써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런데 뇌는 특정 정신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1997년 워싱턴 대학의 고든 슐먼은 이처럼 기존 생각을 뒤집는 질문을 던졌고, 그 질문의 해답을 찾기위해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결과 사람들이 특정 과제를 수행할 때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휴식을 취할 때, 몇몇 뇌부위가 일관되게 더 활성화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뇌는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항상 효율성을 추구하는데, 아무런 정신활동을 하지 않을 때에도 모든 스위치를 끄지 않고 특정 영역을 활성화한다니. 이렇게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을 때의 뇌의 상태를 ‘기본 신경망(default network)’이라고 한다. 이후 많은 연구 끝에 기본 신경망이 사실상 사회인지(social cognition) 신경망과 중첩된다는 것을 알아냈다.

사회인지는 다른 사람이나 또는 자신과 타인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기본신경망이 사회인지를 위한 것이라면, 우리가 다른 일에 몰두하지 않을 때는 타인과의 관계에 가장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일까? 기본 신경망에서 기본을 뜻하는 ‘default’가 진정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나는 지금 ‘한글’ 프로그램으로 이 글을 쓰고 있는데, 두 세가지를 변경하는 것 말고는 기본 설정 그대로 두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기본 설정이 바로 디폴트(default)이다. 일반적으로 프로그램 제작자는 프로그램을 원활히 사용할 수 있도록 기본적이지만 가장 최적화된 설정을 해 놓는다. 뇌의 기본 신경망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기본 신경망이 사회인지 신경망과 중첩된다는 것은 사회생활과 사회적 관계가 우리의 삶에 가장 기본이 되는 중요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사회의 일원이 되지 않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짐승이거나 신이다”라고 말했듯이 인간은 사회적 존재인 것이다. 아기들은 거의 태어나는 순간부터 기본 신경망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매슬로의 욕구 피라미드는 다시 만들어져야 한다. 인간은 생리적 욕구와 동등하게 ‘기본적’으로 사회적 욕구를 가지기 때문이다.

글자를 모르는 2.5세의 미취학 아동들과 침팬지를 비교한 실험이 있다. 실험결과 숨겨 놓은 보상물을 찾아내거나 도구의 특성을 이해하는 등의 물리적, 공간적 과제에서는 침팬지와 아이의 수준이 비슷했다. 하지만 사회성 검사는 아이가 침팬지를 압도했다. 어린아이는 누가 시범을 보여 줄 때 침팬지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보상물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단서를 더 잘 이해했고, 시범자의 시선에 따라 표적을 찾아내는 법을 알았다. 이는 인간이 여러 도전 과제를 능수능란하게 해결할 수 있는 고도의 일반지능을 타고났다기보다 ‘사회생활 전문가’로 서 태어났음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독서모임은 우리의 기본 신경망인 사회적 인지를 이용한 독서법이라고 할 수 있다. 독서가들과 함께 할 때, 독서가들 앞에서 발표를 할 때, 독서가들과 함께 토론을 할 때 우리 뇌는 매우 만족해하며, 우리의 독서는 한층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

 

따라쟁이: 우리는 나도 모르게 타인을 따른다

심리학자 로버트 치알디니는 사람들이 가정에서 전기를 아껴 쓰게하는 동기가 무엇일까 알아보는 실험을 했다. 연구팀은 캘리포니아에 거주하는 주민들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과 같이 물었다.

당신이 에너지를 절약해야겠다고 결심할 때, 아래의 요인들이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가?

  1. 돈이 절약된다.
  2.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3. 사회에 이롭다.
  4. 많은 이들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

조사 결과 주민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순위는 다음과 같았다.

  1. 환경보호에 기여할 수 있다.
  2. 사회에 이롭다.
  3. 돈이 절약된다.
  4. 많은 이들이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있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대답했겠는가? 사람들은 자신이 에너지를 절약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리고 개성이 중시되는 현대사회답게 자신은 타인을 따라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연구팀은 과연 주민들의 에너지 절약 동기가 자신들이 말하는 것과 일치하는지 알아보는 실험에 착수했고, 지역 주민의 양해를 구해 현관문 손잡이에 에너지 절약 캠페인 카드를 걸어 놓았다. 각각의 캠페인 카드에는 다음과 같이 모두 다른 내용이 적혀 있었다.

  1. 에너지 절약을 실천해 환경을 보호합시다.
  2. 미래 세대를 위해 에너지 절약에 동참합시다.
  3. 에너지를 절약하여 전기요금을 절약합시다.
  4.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는 지역 주민들의 물결에 동참합시다.

물론 이 문구 아래에는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내용을 덧붙였다. 1번 카드에는 “매달 온실가스 배출량을 최대 262파운드 줄일 수 있습니다” 라고 적혀 있고, 2번 카드에는 “지역주민의 77%가 에어컨 대신 가급적 선풍기를 사용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식이었다. 만약 이 실험이 주민이 스스로 생각하는 에너지 절약 동기와 일치하다면, 가장 효과가 큰 것은 1번이고, 가장 효과가 작은 것은 4번이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군중심리를 이용한 4번이 주민들을 에너지 절약자로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한 것이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따라쟁이’이다. 우리의 뇌는 항상 타인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집중한다. 그리고 타인의 행동은 내 행동을 유발하는 가장 강력한 인센티브이다. 그런데 타인의 행동이 나에게 주는 영향은 주민들의 고백처럼 의식의 차원을 넘어선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타인을 따라간다.

만약 가까운 지인이 비만인 사람이라면 나도 비만이 될까? 하버드 의과대학의 니콜라스 크리스타키스 박사가 12,067명을 32년간 추적 연구한 결과, 비만인 사람이 나와 매우 가까운 사람이라면 나도 비만이 될 확률이 비약적으로 증가한다. 배우자가 비만이라면 내가 비만이 될 확률은 37% 높아진다. 형제가 비만이라면 내가 비만이 될 확률은 40% 높아진다. 아, 역시 유전자 때문인가? 아니다! 친구가 비만이라도 내가 비만이 될 확률이 57%나 높아진다. 더 흥미로운 것은 지인과 얼마나 가까이 살고 있느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나는 서울에 살고 나와 가장 친한 친구가 부산에 산다할지라도 친구가 비만이면 나도 비만이 될 수 있다.

미국 중서부 남자 대학생들을 연구한 결과에서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과 룸메이트가 될 경우 평점이 평균 0.25점 하락하는 것으로 나왔다. 친구따라 강남가서 그런거 아닐까? 실제로 이러한 ‘동료압박’의 힘은 대단하다. 내 취미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초등학교 때는 딱지치기와 스트리트 파이터라는 게임이었고, 중학교 때는 야구였고, 고등학교 때는 농구와 당구, 대학 때는 스타크래프트 게임이었다.

그런데 내 취미의 역사는 내 친구들의 취미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광주에서 중학교를 다닐 때는 해태 타이거즈가 날리던 시절이라 남자 아이들은 거의 모두 야구를 했는데, 중학교 3학년때 서울로 전학을 왔더니 야구를 하는 아이들은 없었고 대부분 농구를 하고 있었다. 마이클 조던이 활약하던 시기였을 뿐만 아니라 서장훈, 전희철, 이상민, 현주엽 등 연세대와 고려대의 농구 대결이 엄청난 화제였던 시기였다. 나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서 수업이 끝나면 만화 『슬램덩크』를 읽고 마음을 가다듬은 후, 선수인양 혼자 열심히 농구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난다.

만약 친구들이 농구나 스타크래프트가 아니라 독서를 하고 그것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취미였다면 나는 어땠을까? 확신하건대 나도 어떻게든 독서를 했을 것이다. 물론 옛날 내 모습을 떠올려 볼 때, 그런 친구들하고는 어울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더 높겠지만 말이다.

나는 앞에서 성인에게는 독서의 기본이 다독이라고 말했고, 다독을 위해 내 경험을 예로 들면서 환경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독서를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드는 것 말이다. 그런데 그때의 환경은 내 주변을 책의 숲으로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독서가의 바다로도 만드는 것이어야 한다. 독서모임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된다. 심지어 특별히 독서모임을 하지 않더라도, 페이스북에서 다독가와 친구를 맺는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나도 나태해져 있을 때 주변 다독가들의 왕성한 독서력에 영향을 받아 다시 마음을 다잡을 때가 많았다.

우리는 따라쟁이들이다. 우리의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뇌가 그렇게 만들어진 이유는 우리가 누군가를 모방하고 동조하고 모범으로 삼을 때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독서모임은 따라쟁이인 우리를 독서가로 만들어 주는 매우 강력한 독서 환경이다.

 

소속감이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

우리는 어떨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느낄까? 돈이 없을 때, 업무에 시달릴 때, 중요한 시험이 눈앞에 다가왔을 때일까? 그보다, 우리의 몸은 왕따를 당할 때 가장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

집단에서 제외되거나 배척을 당하는 이른바 ‘사회평가적 위협(social-evaluative threat)’은 우리의 감정뿐만 아니라 신체의 면역체계까지 공격한다. 캘리포니아 대학 스티브 콜 교수의 연구팀은 에이즈(후천성면역결핍증)환자들을 9년동안 관찰했다.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에게 배척을 받는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 환자들은 그렇지 않은 환자들보다 면역기능이 현저하게 낮아졌다. 특히 체내에 병원균이 들어왔을 때 맞서 싸우는 CD4라는 T세포 수치가 떨어졌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슬픔, 불안, 우울 등 우리가 보통 스트레스가 심한 감정이라고 여기는 감정을 느낄 때에는 CD4가 떨어지지 않았다. 오직 강제적인 사회적 고립을 느낄 때에만 면역체계에 심각한 손상이 일어났다.

사회적 배척은 몸을 해롭게 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학습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심리학자 로이 바우마이스터는 실험 참가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어 한 집단에는 거부당했다는 느낌이 들도록 상황을 만들었고, 다른 집단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후 지능검사와 대학원입학자격시험(GRE)과 유사한 시험을 치르게 했더니, 지능검사의 경우 사회적 배척 경험을 한 그룹은 정답률이 69%였지만 그렇지 않은 그룹은 82%였다. GRE는 그 결과가 더 극명해서 배척 그룹의 정답률은 39%였던 반면 그렇지 않은 그룹은 68%였다.

이 차이는 실로 놀라운데, 왜냐하면 바우마이스터가 배척 그룹의 실험자들에게 한 말은 “검사 결과 먼 훗날 당신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외롭게 지낼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한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만약 실제로 사회적 배척을 당했다면 학습능력은 더욱 현저하게 떨어질 확률이 크며, 그것이 누적되면 한 사람의 삶 전체가 망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반면 ‘소속감’을 느끼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한마디로 똑똑해 진다. 스탠퍼드 대학의 심리학자인 그렉 월튼과 제프 코헨은 소속감이 학습능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알아냈다. 그들은 예일 대학 학생의 6%인 아프리카계 학생들과 58%인 유럽계 학생들을 집중 연구했다.

실험결과 소속감 조작을 한 아프리카계 학생들은 평균학점이 매학기마다 약 0.2점씩 꾸준히 향상되었다. 하지만 유럽계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학교에서 다수인 그들은 이미 충분한 소속감을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컸기에, 소속감이 결여되어 있던 아프리카계 학생들에게만 효력이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소속감 조작 실험은 고작 한 시간짜리였다. 한 시간의 조작을 통해 소속감을 고취시켰을 뿐인데도 그 효력은 3년이 지나도록 힘을 발휘했다.

여러분이 꾸준히 독서모임을 하고 있고 그 모임에서 충분한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면, 학습능력이 꾸준히 상승했을 가능성이 크다. 독서모임은 몸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미국 국립정신보건원 노화센터의 책임자인 진 코헨은 독서모임에 참가하면서 몇 달, 몇 년동안 정기적으로 꾸준하게 책을 읽는 것은 영화감상이나 강연회 참가, 소풍 등과 같이 일회성 활동을 동일한 횟수만큼 하는 것보다 건강에 훨씬 더 좋다고 말한다.

사회적 배척은 면역체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코헨 박사는 꾸준한 독서모임에서 주는 소속감은 건강에 좋다고 조언하고 있다. 몸과 머리가 함께 좋아지는 독서모임,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토론이 혁신을 만든다

나는 현재 동북아정치경제연구소 하승주 소장, 키스톤매니지먼트 최효석 대표와 함께 ‘책으로 세상 읽기’라는 팟캐스트를 하고 있다. 방송은 경제 경영 도서를 중심으로 격의 없이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하는 것이다. 처음에 1년이 지나도 청취자가 크게 늘지 않으면 폐지하는 게 어떤가 하는 의견이 나왔지만, 논의 끝에 “우리들만의 ‘독서클럽’이라고 생각하고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즐기자!”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돌이켜 보면 나는 두 사람과 토론을 하면서 많이 배웠고, 상당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남독’ 편에서 창의성은 낯선 것들의 연결이라고 이야기했다. 여기서 낯선 것이란 책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낯선 생각을 가진 다른 사람들과의 연결도 창의적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아주 탁월한 방법이다.

1990년대 초에 맥길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케빈 던바는 과학자들이 어떻게 탁월하고 위대한 발견을 하는 지 알아보기로 했다. 분자생물학 실험실 네 군데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학자들이 연구하는 모습을 가능한 한 많이 촬영하고, 동시에 광범위한 인터뷰를 실시하면서 각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변화를 추적하였다.

던바는 이 연구를 통해 우리의 고전적 견해를 뒤집는 새로운 사실을 밝혀냈다. 우리는 흔히 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 현미경을 들여다보면서 열심히 고독과 싸우다가 갑자기 놀라운 발견을 하는 이미지를 상상한다. 하지만 던바의 연구는 과학자들의 탁월한 발견이 고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열명 남짓의 학자들이 모여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최근의 연구에 대해 토론을 나누는 정기적인 실험실 모임에서 나온다는 것을 밝혀냈다. 즉 혁신의 시작은 현미경이 아니라 과학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회의 탁자라는 네트워크였던 것이다.

18세기의 커피하우스는 계몽주의 시대에 일어난 수많은 혁신의 토대가 되었다. 당시 커피하우스는 매우 다양한 인물들이 커피를 사이에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인 장소였다. 결국 그 혁신의 공간에서 전기화학에서부터 보험 산업, 민주주의에 이르기까지 많은 일들이 탄생했다.

프로이트는 오스트리아 빈의 집무실에서 수요일 밤마다 내과의사, 철학자, 과학자들과 모여 토론의 불을 지피며, 정신분석이라는 새로운 학문을 탄생시켰다. 1970년대 홈브루 컴퓨터 클럽이라는 공간의 상호 연결과 충돌은 퍼스널 컴퓨터(PC) 혁명에 불을 댕겼다.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은 이 홈브루 컴퓨터클럽에 가입하고 난 후 세계최초의 퍼스널 컴퓨터 ‘애플1’을 개발했다.

스탠퍼드 대학 경영학 교수 마틴 루프는 이 대학의 졸업생들 중 기업가 766명을 인터뷰하여 혁신점수를 매기는 정교한 시스템을 만들어 졸업생들의 사회적 네트워크를 추적했다. 그 결과 창조적인 사람은 자신의 조직을 넘어서는 넓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었던 것이다.

이 모든 이야기들을 종합해 보자. 우리는 따라쟁이이다. 우리는 독서가들이 득실거리는 독서모임에 참여할 경우, 독서에 대한 상당한 압박을 느낀다. 전설적인 골프 선수인 잭 니클라우스는 “나는 압박을 즐긴다”라고 했다. 다독하는 타인이 주는 압박을 즐기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다독가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

독서모임은 소속감을 주며, 소속감은 우리의 학습능력을 향상시켜 줄 뿐만 아니라 건강을 도모해 준다. 그리고 독서모임을 통해 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토론할 수 있다. 하나의 책을 해석하는 데에도 다양한 관점이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서로의 경험에서 나오는 생각들이 충돌되고 연결될 때,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와 조우할 수 있다.

처음으로 돌아가 보자. 톨킨과 루이스 등의 낭독 독서모임의 이름을 기억하는가? 모임 이름은 잉클링스였다. 그리고 잉클링스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모호하고 완성되지 않은 암시와 아이디어를 찾는 사람들.’

** 본 내용은 그녀생각(고영성)의 신작 <어떻게 읽을 것인가> ‘낭독(소리 내어 읽다)편’에 있는 내용입니다.

 

필자  고영성

출처  그녀생각’s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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