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1월 어느 날 영화 <스포트라이트> 개봉 소식을 명동성당 앞에서 봤습니다. 당시는 이 영화가 무슨 영화인지 잘 몰랐습니다. 오로지 제 눈에는 ‘레이첼 맥아담스’의 귀여운 얼굴만 가득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 이번 8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까지 받더군요. 이렇게 되면 안 볼 이유가 전혀 없지요.

대충 내용은 알고 있었습니다. 2002년 미국 3대 일간지인 <보스턴 글로브>의 탐사보도팀 ‘스포트라이트’가 천주교 신부들의 조직적인 성추행 사건을 터트려서 세상에 큰 충격을 주었지요. 이 사건을 다룬 영화라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언론에 관한 영화를 좋아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보기 시작했는데 이 영화, 가뜩이나 우울한 요즘 제 정신 상태를 붕괴 시켜 버리네요. 영화관을 나오면서 지하로 내려간 마음을 질질 끌고 나왔습니다.

 

2002년 터진 천주교의 거대한 성 스캔들

2002년 9.11 사건이 마무리가 되어 가던 그 해, 대형 섹스 스캔들이 터집니다. 근데 이 스캔들은 이전의 섹스 스캔들과는 크게 다릅니다. 가해자가 성직자였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천주교 신부들입니다. 이 자체가 경악스럽죠. 더구나 성인도 아닌 아동 성추행입니다. 저도 이 천주교 성 스캔들을 얼핏 들었었는데, 당시에는 어린 아이들 귀엽다고 고추 만진 정도로 인식했습니다. 제가 순진했죠.

거론하기도 끔찍하게, 실상은 천주교 신부들이 남자 아이들을 강제 성폭행한 것이었습니다. 더 끔찍한 것은 신부들이 가난한 집 아이, 한부모 가정 아이 등 사회소외층 또는 외로움을 더 잘타고 누군가의 손길이 그리운 아이들을 주요 대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이 자체에 매우 화가 나고 눈물이 나더군요. 신부라는 성직자가 이런 행동을 했다니, 보는 제가 이렇게 참담한데 피해자들은 어떻겠습니까. 피해자들은 말합니다. 이건 육체적 고통의 문제가 아니라 심적인 고통이 문제라고요. 하나님의 대리인인 신부, 믿음 그 자체인 신부가 어떻게 자신에게 이렇게 할 수 있냐며 울먹입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살아 있는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한다고요.

 

스포트라이트

 

심층보도팀의 활약

이 천주교 성 스캔들은 수십 년 간 계속 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2002년 전까지 잘 밝혀지지 않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검찰, 경찰, 그리고 변호사와 지역 유지들을 구워 삶은 천주교가 귤 상자 안에 썩은 귤이 몇 개 있다고 상자째 버릴 수 없다면서 다 덮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도가니 같은 사건이죠. 모든 사람들이 쉬쉬하는 사이에 이 거대한 성 스캔들은 수십 년 째 자행되고 있었고 피해자는 계속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스포트라이트’라는 심층보도팀이 스스로 밝혀낸 것이 아닙니다. 보스턴 출신이 아닌 신입 편집국장의 지시 때문입니다. 외지인인 신입 편집국장은 며칠 전 폐간 직전의 신문에 실린 한 변호사의 컬럼을 소개하면서 게오르그 신부 성추행 사건을 캐보라고 지시를 합니다. 그렇게 스포트라이트팀은 천주교 성추행 사건을 캐기 시작하는데 이 사건이 캐면 캘수록 거대한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신부 한두 명의 개인적인 일탈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 병리학적인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고, 보스턴에서만 수십 명의 신부가 연류되었음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빵 터르렸다면 단순히 몇 명의 신부를 검거하고 끝이 났을 수 있습니다. 편집국장은 신부 몇 명 잡는다고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거대한 악의 근원을 제거해야 한다면서 좀 더 큰 그림으로 보라고 지시하죠. 영화는 이때부터 스릴과 긴장, 충격의 연속입니다. 그리고 성추행 사건을 캐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도 아주 잘 보여줍니다. 또한, 이전에 충분히 세상에 알릴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은 언론 스스로의 자기 비판도 섞어 보여줍니다.

 

점점 더 커지는 충격

영화 <스포트라이트>는 이 사건이 어떻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는지를 심층 보도한 2시간 20분짜리 영화입니다. 영화는 이 사건을 아주 건조하게 담고 있습니다.

보통, 이런 충격적인 사건을 영화로 만들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번갈아 가면서 보여줘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화는 피해자의 눈물은 담지만 가해자의 경우 추기경 1명만 보여주고 성추행을 한 신부들의 얼굴은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신문기사를 읽는 느낌입니다. 피해자들의 억울함과 하소연은 가득하지만 가해자들은 아무런 변명이 없거나 기계적인 변명만 합니다. 그래서 영화 전체가 하나의 긴 심층보도 뉴스기사를 읽는 느낌입니다.

또한, 보통의 영화는 기승전결에 따라 클라이막스가 영화 끝나기 10분 전에 있죠. 그런데 이 영화는 서서히 이륙하는 여객기처럼 점점 긴장감이 후반으로 갈수록 커집니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 장면에서는 지구를 탈출해 버립니다. 서서히 고조 시키다가 마지막 장면으로 거대한 충격을 줍니다. 영화가 끝나고 이런 천주교 신부 성추행이 보스턴이라는 한 곳의 문제가 아닌 미국 전체에서 자행되었다는 자막이 뜨자 100석도 안 되는 작은 상영관은 장탄식이 동시에 터져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정신 붕괴가 일어납니다.

너무나 화나고 슬픈 상태에서 영화관에서 나가라고 불을 켜버리니 당혹스러웠습니다. 지하로 내려간 마음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영화관에서 튕겨 나와 강남 거리를 한참 걸었습니다. 이런 비루한 세상 더 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하네요. 그럼에도 이런 거악을 제거한 연꽃 같은 열혈 기자들의 강인한 표정과 흔들리지 않는 심지를 동앗줄 삼아서 다시 일어섰습니다.

 

스포트라이트

 

거악 제거를 위한 긴 호흡, 심층취재

레이첼 맥아담스의 상큼한 미소를 보러 갔는데 레이첼은 영화 2시간 내내 일만 합니다. 영화는 하나의 거악을 제거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근처에 아동 성폭행범이 사는 것을 알게 되었음에도 거악인 추기경의 죄를 캐기 위해 좀 더 긴 시간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모습도 보여줍니다.

거대한 악을 제거하려면 거대한 시간과 노력과 인력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거대한 악은 그냥 거대해진 것이 아닌 많은 조력자들이 함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거대한 악을 파해치려면 긴 호흡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심층보도팀입니다.

이 심층보도의 어려움을 보면서 현재의 한국 언론을 돌아다 봤습니다. 매일 매일 연성 뉴스를 담은 카드 뉴스를 만드는 국내 언론들의 모습과 그런 뉴스를 넙죽넙죽 받아먹는 뉴스 소비자들의 팀 플레이로 뉴스들은 점점 연성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박단소한 연성뉴스가 만연하게 되면 무슨 문제가 일어날까요? 거대한 악은 더 캐기 힘들어지고, 좀 더 쉽게 악을 자행할 수 있습니다. 보통의 시민들이 길거리에서 일어난 교통 사고나 지하철의 무매너 행동에 분노하고 인신 공격을 하는 사이 거대한 악은 손 뒤집듯 쉽게 악행을 저지르고 다닙니다.

 

연성뉴스의 시대, 언론의 역할

자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 대사가 기억나네요.

“이런 것을 꼭 언론에서 캐야 합니까?”
“이런 것을 언론이 안 캐면 누가 캡니까?”

제 4의 권력이라는 언론이 행정, 입법, 사법부를 감시자가 아닌 3개의 권력에 기생하는 세상이 된 지금, 스포트라이트 팀의 활약이 더 빛을 발하는 것 같습니다.

최근 들어서 거대한 권력의 치부를 밝히는 기사를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그만큼 한국 언론 생태계가 권력지향형, 또는 권력기생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럼에도 음지에서 발로 뛰면서 거악과 싸우는 열혈 기자들에게 감사함을 느낍니다.

아카데미는 이 열혈 기자들에게 큰 상을 줍니다. 그리고 유일하게 존경하는 성직자인 프란치스코가 이끄는 교황청은 이 영화의 작품상 수상을 축하해주었습니다. 2005년 전후로 천주교는 자기 안의 악을 제거하고 다시 믿음을 복원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거대한 악은 한 사람이 만드는 것이 아닌 여러 사람이 만든 다는 것입니다.

“한 아이는 온 마을이 키운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마음 속에서 메아리치네요. 과연 한국이라는 마을은 아이들이 자라기에 건강한 마을일까요? 고개가 저절로 돌려집니다. 언론의 역할을 스포트라이트로 비춘 영화가 바로 <스포트라이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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