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 옥상에 마련된 투숙객들의 공용 공간에는 텔레비전이 한 대 있었는데, 잠이 오지 않는 밤 가끔씩 올라가 보면 어둠 속에 시커먼 네모상자 홀로 번쩍이며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는 그 모습이 퍽 쓸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채널은 언제나 ‘FASHION TV’에 고정되어 있었다. 화면 속에서는 화려하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고 있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그들이 몸을 흔들어대며 카메라를 향해 재잘거릴 때마다 손가락 사이에 걸린 유리잔 안의 술이 찰랑거렸고, 몇 분 간격으로 반복되는 똑같은 광고에서는 끈적한 목소리를 가진 여자가 ‘패션 티비’라고 섹시하게 읊조렸다. 나는 평생 텔레비전이라고는 보지 못한 사람처럼 입을 떡 벌리고 화면을 바라보다가 그 끈적한 목소리를 과장되게 따라 하곤 했다.
“우리 베이루트에 갈까? 파티도 가고…”
“이 꼴을 하고 파티는 무슨 파티. 문 앞에서 쫓겨날걸.”
“옷 같은 것은 여기서 사가면 돼. 아까 보니까 막 보석 박힌 구두 같은 것도 팔던데.”
중동의 파리, 베이루트는 밤마다 그렇게 나를 유혹했다. 아름다운 지중해와 연일 이어지는 파티, 흥청거리는 분위기와 같은 것들이 왜 그렇게도 마냥 그리웠는지는 잘 모르겠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발코니에 서서 어깨를 훤히 드러낸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뾰족한 하이힐을 신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춤을 추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틈이 날 때마다 베이루트 여행 정보를 모았다. 시리아 팔미라니, 요르단 페트라니 하는 곳들은 앞으로의 계획에서 사라진 지 오래였다. 앞 방에 머무르던 유럽인 배낭여행자 무리들이 터질듯한 배낭을 낑낑대며 짊어지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들은 떠나기 전 한참이나 올리브 비누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았는데 나의 코끼리 귀는 그때도 여지없이 펄럭거렸던 것이다.
“내 배낭 안에 든 것이 다 뭔 줄 알아? 비누야. 비누! 올리브 비누! 이건 진짜… 어메이징한 비누라고. 비누만 3kg 샀어. 이거 들고 가려고 원래 갖고 있던 옷가지들까지 다 버려버렸다니까?”
올리브 비누를 사가느라 갖고 있던 짐까지 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올리브 비누가 아닌 보석 박힌 구두를 살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눈과 귀는 이미 패션 티비의 노예가 된 지 오래였다. 나중에 시장 상인들이 써보라고 건네주는 올리브 비누 조각을 몇 개 받아다가 여행하는 내내 써보고는 사두지 않은 것을 후회했지만 한국으로 돌아와서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마저 써버리고 역시 사지 않기를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몸에 닿는 것들은 대부분 그 지역의 해와 바람과 물과 만났을 때 비로소 제 진가를 발휘하곤 했다. 올리브 비누라는 것이 특별히 알레포에서 유명해진 이유가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
해가 지면 알레포 곳곳을 쏘다녔다. 밤이 반가운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한낮의 더위에 당해낼 재간이 없는 것은 알레포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번화가는 쏟아져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나와 친구는 어쩐지 신데렐라의 심정이 되어 눈에 불을 켜고 파티에 신고 갈 구두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 배가 고파지면 몇 군데 찍어둔 케밥집에 번갈아 가며 드나들었다. 시리아의 케밥은 어딜 가나 끝내주게 맛있었다. 그때 케밥을 더 자주 사 먹지 못한 것을 지금까지 후회할 정도로. 케밥을 사 먹으러 가면 꼭 콜라를 시켰는데, 빨간 코카콜라 캔 위에 아랍 글자가 꼬불거리고 있는 그 모양이 좋았다. 내게는 그것이 정말이지 괴상하다 싶을 정도로 이국적이고 마냥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온몸을 감싸는 옷을 입고(심지어 장갑까지 끼고) 눈만 내어놓고 있는 여자들이 엄청나게 화려하고 야시시한 속옷을 구경하고 있는 모습 또한 아랍 글자가 쓰여있는 코카콜라 캔만큼이나 낯선 것이었다. 상점가를 걷다 보면 속옷 상점이 군데군데 있었는데 쇼윈도에 진열된 속옷의 디자인들은 하나같이 어마어마하게 야했다. 그래. 어디에나 그 이유가 반드시 있는 법이다.
학원을 다니며 영어 공부에 한창이라는 모하메드를 제외한 올라비 카페의 나머지 친구들은 거의 영어를 할 줄 몰랐다. 그중 한 친구가 우리에게 아랍어를 가르쳐주겠다며 나섰다. 카페 직원들 중 가장 덩치가 큰 그는 고작 열일곱 살이었는데, 그 친구가 가르쳐주었던 단어들은 ‘동물원’, ‘지우개’와 같은 것들이었다. 여행하면서 써먹을 수 있는 유용한 단어들도 아니고, 이런 말을 어디에 써먹겠냐고 핀잔을 주었지만 그가 너무나도 열심이었기에 그를 만족시킬 만큼 완벽한 발음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따라 하고 또 따라 할 수밖에 없었다. 잘은 몰라도 이토록 소리 내기 어려운 언어는 세상에 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영어학원 친구들에게 너희들 이야기를 했는데 걔네들도 너희들을 만나보고 싶은가 봐. 너희들이 괜찮다면 이따가 저녁에 이쪽으로 오라고 할 생각인데 어때?”
그 날 저녁 큰 키에 조막만한 얼굴을 가진 예쁜 여학생과 볼록 나온 배가 인상적인 남학생이 카페로 찾아왔다. 우리들은 으레 그렇듯이 교과서적인 인사말을 서로 주고받았다.
“너희는 한국에서 왔니?”
“응. 한국 사람이야.”
“북한? 남한?”
변함없는 질문. 농담으로 ‘북한’이라고 하면 눈동자가 이만큼 커다래지겠지.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은 북한과 북한 정부에 대해 나보다 훨씬 더 관심이 많았다. 파키스탄에서 만났던 한 친구는 북한은 전 세계에서 미국에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하기도 했는데, 대부분의 외국인 친구들은 북한의 시스템을 조롱하거나, 핵 미사일 운운하며 한국 사람인 나를 가엽게(?) 여기기도 했다. 어쨌든 여행에서 만난 외국인 친구들과 북한에 대해 짧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통과의례와도 같았다. 시리아 사람과는 대화의 내용이 조금 달랐다. 시리아는 북한 정부와만 단독 수교를 맺은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였으니까.
“시리아 정부는 북한 정부랑 친하지. 북한 사람들도 시리아에 꽤 살고 있어.”
“그래? 나는 살면서 북한 사람을 만나 본 적이 한 번도 없는데…”
시리아에 살고 있는 북한 사람이라…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이질감에 두 눈을 꿈벅이고만 있는 내게 그가 다시 질문을 건네 왔다.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어때? 너희들은 일본 사람을 좋아하니?”
남북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다음은 한일관계. 레퍼토리다.
“내가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는 국적 하고는 상관이 없어.”
“그래도 제너럴리. 한국 사람들은 일본 사람들을 좋아해?”
“글쎄. 세대에 따라 생각이 좀 다른 것 같기는 해.”
나는 으레 그래 왔듯 ‘사람마다 달라’ 정도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종교는?”
아. 드디어 종교다. 터키에서 만났던 터키 친구와 모스크에 같이 간 일이 있었는데, 그 이후 무슬림과는 종교 이야기를 하지 않는 편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나와 같이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을 절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친구는 카이세리라는 도시의 한 대학교에서 일본어와 일본문화를 공부하고 있는 학생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게임이나 만화를 통해 일본 문화를 접해왔고, 무슬림이었지만 술과 담배를 즐겨하며, 금요일 조차도 사원에 가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는 카이세리 시내에 위치한 쇼핑몰에 가야 할 일이 생겨 그 친구에게 시내 구경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고, 친구는 흔쾌히 일일 가이드를 자처했다. 우리는 시내 전경을 보기 위해 동네 뒷산에 올랐다가 그곳에 위치한 모스크를 방문하게 되었다. 관광지도 아닌 곳에 외국인 여자 둘이 찾아온 것이 신기한지 그 모스크의 이맘은 우리를 졸졸 따라다니며 이것저것을 설명해주려고 했다. 잠자코 설명을 듣고 있던 우리에게 그가 물었다.
“두 분의 종교는 뭐죠?”
“종교 없는데요.”
우리의 대답에 이맘의 표정은 물론이고, 친구의 표정도 함께 굳어졌다.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기 시작하는 이맘의 말을 가로채어 친구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종교를 갖지 않을 수가 있지? 그럼 이 세계는 누가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이 나무는? 저 태양은? 이렇게 버젓이 존재하는데 누군가는 저것들을 만들었을 것 아니야.”
“너희들은 태어날 때부터 무슬림인 채로 태어나지만 우리는 달라. 나에겐 종교가 당연한 것이 아니라고. 신의 존재에 대한 확실한 믿음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종교를 갖지 않은 것뿐이야.”
“그럼 신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필요하다는 말이지? 지구 상의 모든 것들이 그 증거야. 신은 있어. 지구의 자전축이 왜 기울어져 있겠어? 그래야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야. 모든 것에 신의 섭리가 깃들어 있어. 종교를 가져야 돼. 어떤 종교든 말이야. 신을 찾고 믿어야 한다고.”
종교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친구의 반응은 꽤 당황스러웠다. 종교에는 관심도 없는 듯 보이던 친구가 왜 이렇게 흥분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해서, 신의 말씀을 잘 섬긴다고 해서, 경전에 대해서 잘 안다고 해서 종교적인 것이 아니었다.
종교가 없다고 했다가는 또다시 신에 대한 한바탕 논쟁이 벌어질 것 같아 나는 대충 딴소리를 늘어놓으며 화제를 돌렸다.
“알레포는 정말 덥다! 서울은 알레포처럼 뜨겁지는 않지만 알레포보다 훨씬 습해. 여름에는 어항 속에 들어가 있는 기분이야. 온몸이 끈적끈적해지거든.”
그의 질문 공세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나중에는 나의 대답이 궁금하다기보다는 배운 영어를 써먹고 싶어 던지는 질문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오기가 발동하여 더 주절주절 대답을 했다. 비영어권 나라에서 학원에서나 영어를 배워 써먹는 사람들의 영어 말하기 대회랄까. 같이 온 여학생은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듣고만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모하메드가 그녀를 마음에 두고 있는 눈치였다. 우리는 산책이나 하자며 밖으로 나왔다.
알레포 구시가지의 골목은 내가 여행을 하며 걸어왔던 그 모든 길 중에 단연코 가장 매력적인 길이었다. 과거의 시간 속에 들어와있는 느낌은 긴장감마저 자아냈다. 이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까, 저 아치형 문을 지나면 이 길은 어디로 연결될까, 이 이정표에는 뭐라고 쓰여있는 걸까, 저 창문 안쪽의 방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사람들이 돌바닥 위로 바삐 걸음을 옮기며 내 곁을 지날 때마다 오랜 옛날 매일 밤 이어진 세헤라자드의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그리 넓지 않은 작은 광장에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근처 가게에서 주스를 사다가 벤치에 둘러앉았다. 사람들의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와 광장 바닥을 미끄러지듯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배경음악처럼 들려왔고, 분위기는 제법 낭만적이었다. 모하메드와 예쁜 여학생이 수줍은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배 나온 남학생과의 영어 말하기 대회는 계속되었다. 내 얼굴에 서서히 드리우고 있는 피로를 읽었는지 예쁜 여학생이 자신의 핸드폰으로 음악을 재생하더니 이어폰 한쪽을 건넸다.
“시리아 음악이야?”
“아니. 시리아 음악은 다 별로야. 그래서 나는 터키 음악만 들어. 한번 들어봐.”
그녀가 내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었다. 아마 몇 번이고 내게 말을 걸고 싶었을 것이다. 남북관계, 한일관계, 종교 따위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터키 음악의 흥겨운 리듬에 어깨를 들썩이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베이루트에 가기 전 파티에 어울리는 옷을 기어코 사겠다고 들른 다마스쿠스의 한 쇼핑몰에서 나는 정말 북한 사람을 만났다. 동양인이지만 중국인 같지도, 일본인 같지도 않았던 그 사람들.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도저히 한국인이 아니었던 그 사람들. 여행을 하다 보면 한국인 여행자, 중국인 여행자, 일본인 여행자가 가진 특징을 구별해낼 수 있는데, 그 둘은 그 무엇에도 속하지 않는 타입의 동양인이었다. 말끔한 수트 차림의 남자가 걸친 재킷에는 사람 얼굴이 그려진 배지가 달려있었다. 꼬부랑 아랍 글자가 그려진 코카콜라 캔과 머리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파격적인 란제리를 고르고 있던 여자들과 한국인처럼 생겼지만 도저히 한국인이 아니었던 이 사람들까지. 그 이상한 기분. 그 낯선 느낌.
며칠 뒤 베이루트 행을 포기하고 다마스쿠스에서 다시 시리아-터키 국경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아라비아 반도에서 녹아 없어지고 싶지 않다며 더운 날씨 핑계를 대었지만, 지금 와 생각해보면 나는 그냥 쉬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익숙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익숙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인지도. 그러면서도 여전히 여행을 하며 낯선 것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이 또한 참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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