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Silicon Valley 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하이테크 산업 중심지입니다.  세상을 주름잡는 많은 회사들이 여기서 시작했고 번성하면서 수많은 인재들이 세계에서 몰려들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전세계 곳곳에서 실리콘밸리를 흉내내서 인도의 실리콘밸리, 한국의 실리콘밸리, 중국의 실리콘밸리와 같은 곳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각국 정부 뿐만 아니라 거대 기업들도 실리콘 밸리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이곳에 지사를 만들거나 연구소를 만들어서 현지의 노하우를 배우려고 합니다. 저 역시 지난 2년 동안 버클리/스탠포드를 거치면서 무엇이 이곳을 세계 IT의 중심으로 만들었을까 끊임없이 살피고 고민했습니다.

그 비법을 알아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사실 몇가지를 재확인했습니다. 실리콘밸리 중심에는 스탠포드/버클리 같은 명문대학이 있고,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느 나라 혹은 어느 도시든 실리콘밸리를 따라하려면 그와 비슷한 대학을 가져야 합니다. 팥빵의 핵심은 팥인데 그것을 빼고 빵만 연구해서는 안되는 것처럼요.

 

Photo : Pixabay

Photo : Pixabay

 

하지만 스탠포드와 같은 명문대학을 만들겠다는 계획이 소위 실리콘밸리 따라하기 전략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의 인재들이 서울이든 북경이든 파리든 모이게 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창업/투자/기업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는 것이야말로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전략이고 어쩌면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 전제조건, 세계 최고의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이 단기간에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누구도 이런 계획을 발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단팥이 빠진  찐빵 계획만 나옵니다.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운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 많으니 우리도 그렇게 해보자, 많은 회사에 식당이 있는 것 같으니 그렇게 해보자 등등 단편적인 방법들만 나오고 있습니다.

물론 미래의 IT 산업이 실리콘밸리를 따라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꼭 캘리포니아 방식이 유효하지도 않을 수 있습니다. 불과 30여년 전에는 이런 명성이 여기에 없었듯이 30년 이후에는 세계의 어느 다른 도시에서 혁신을 주도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실리콘 밸리와 다른 문화, 다른 모습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중앙정부든 지방정부든 정부차원에서 실리콘밸리 따라하기를 한다면 반드시 그 전략에는 최고의 대학과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가 포함되어야 합니다. 좋은 인재들을 어떻게 지속적으로 배출하고, 그 인재들이 대학 졸업 이후에도 어떻게 아카데미아와 계속 관계를 만들어 갈 것인지를 포함되어야 합니다.

지난 학기 청강했던 스탠포드 기계공학과 과목인 ME310 은 아주 흥미롭습니다. 12주씩 3개 학기에 걸쳐서 실제 기업이 갖고 있는 문제들을 학생들이 해결해가는 프로젝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기에 참가하는 기업들은 미국 대기업에서부터 세계 중소기업까지 다양합니다. 그 문제들도 자동차 센서에서 미래의 운동화 개발까지 포함됩니다. 기업들은 사전에 자신들이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와 함께 비용을 학교에 제시합니다. 그 비용은 학생들의 연구개발 활동에 쓰여집니다. 그러다보니 학생들은 연구활동에 필요한 경비, 출장 경비, 재료 비용 걱정없이 마음껏 시도해볼 수 있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학창 시절부터 회사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교과서를 외워서 중간, 기말고사를 잘보고 학점을 잘 받는 시스템과는 확연히 다릅니다.

실리콘 밸리에서는 학교와 사회,기업과의 관계가 매우 친밀합니다. 필요하면 서로 방문하고, 세미나를 통해서 토론하고 새로운 이론을 적극적으로 도입해보고 하는 문화가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연구하다가 기업으로 가기도 하고, 반대로 기업에서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교수로 다시 오기도 하는 등 서로의 인적 교류도 활발합니다.

 

people-coffee-notes-tea

 

시간이 걸리더라도 실리콘밸리 따라하기의 핵심은 사회,기업과 협력하는 대학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기업이 대학 교육, 연구 수준을 무시해버리고 대학이 기업의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한다면 결코 실리콘밸리와 같은 선순환의 고리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서울에는 한국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는 좋은 대학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세계적인 기업들 역시 많습니다. 이들이 서로 협력한다면 서울 전체가 실리콘밸리 못지 않은 기술창업의 도시가 될 수 있습니다.

제일 먼저 대학이 할 일은 담장부터 없애는 것입니다. 도대체 대학을 무엇으로부터 보호하려고 담장을 만들었을까요. 만약 그것이 군사문화의 잔재라면 벌써 제거되어야 했었습니다. HP,  테슬라, SAP 와 같은 거대 기업들이 스탠포드 대학으로부터 건물을 빌려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건물을 지을 비용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좋은 학교 바로 옆에서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혁신하기 위해서이죠. 스탠포드 대학 역시 건물 임대 수익을 위해서 세계적인 기업들에게 건물을 빌려주는 것은 아닐 겁니다. 거꾸로 대학의 혁신 에너지를 기업에서부터 갖고 오기 위해서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이익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거죠. 공학이나 경영학 등 일부 학문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 기술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한다면 인문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들이 기술 기업과 소통해야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가면 그때부터는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직접 체험하면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사회를 떠받치고 있는 기업의 생리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수업시간에 교수님들의 강의가 어떤 내용인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학생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기 위해서는 우선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합니다. 학교와 사회와의 경계를 허물어서 서울전체가 캠퍼스이고 서울의 문제가 곧 대학의 고민거리여야 합니다. 서울의 기업들이 대학들과 연결되어서 같이 논의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세상을 바꾸고 있는 사업들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도시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는 시도입니다. 택시문제, 호텔 숙박문제, 음식문제, 쓰레기, 에너지 등 모든 문제들이 도시에서, 지역 공동체에서 매일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느 대학이든 캠퍼스의 낭만에 안주하고 있을 여유가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서울도 마찬가지로 대학을 멀리하고서 도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학교가 사회 그리고 기업과 만나는 것이 어쩌면 실리콘밸리 따라하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콘텐타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