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연락이 뜸해진지 몇 년 된 후배 한 명이 내가 사는 곳으로 출장을 오게 되었다며 연락을 해왔길래 반가운 마음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홀연히 외국으로 떠나버린 게 한국에서 안 좋은 일들이 많아 모든 걸 접고 떠나버린 줄 알았다며 그래서 먼저 연락하기도 조심스러웠단다. 힘들어했던 모습이 선한데 여기서 보니 정말 행복해 보인단다. 거참, 내 한국 생활이 좀 버겁긴 했어도 그렇게까지 힘들었던 건 또 아니었는데 그 녀석 눈에는 내가 꽤나 안쓰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노을이 지는 어느 겨울의 저녁 퇴근 길

 

나는 호주에 살고 있다. 이 곳에 온지도 어느새 만 3년이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한국이 못 견디게 힘들기도 했고 이직이 어려웠던 것도 계기 중 하나였는데 결과적으로 호주에 온 것이 나로선 신의 한 수였다. 또래들보다 운이 좋기도 했다고 생각한다. 생계를 위해 하던 일을 포기하고 전공이나 경력과 아무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이민자들이 대다수인 이 곳에서 괜찮은 조건에 전공을 살린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는 것, 그리고 퇴근 후 이른 저녁엔 시간을 들여 요리를 하고 식사 후엔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다가 늦지 않은 시간에 잠이 드는 것. 한국에 머물렀다면 조금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호주에 와서 내가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좋은 사람들,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는 것이다. 그들의 영향력은 지난 30여 년 간의 내 인생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꿔놓았을 만큼 개인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이기도 했다. 크게는 누군가로 인해 인생의 소명과 삶의 방향성에 대해 깨닫게 되기도 했고, 사소하게는 포장 음식을 먹더라도 꼭 접시에 예쁘게 옮겨 담아 식사를 하는 직장동료에게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식사하는 법을 배우기도 했다.

누군가로 하여금 가치관이 변하는 경험을 하니 사람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실로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고 나 역시 주변에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었다는 것도 의미 있는 변화였다. 그래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고 가치 있는 일을 위해 부지런히 살게 되었다. 지난주에 만난 한국에서 온 후배의 눈에 내가 달라 보였다면 아마 그런 이유에서였을 것이다.

 

“인간을 바꾸는 방법은 세 가지뿐이다.
시간을 달리 쓰는 것, 사는 곳을 바꾸는 것,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것.
이 세 가지 방법이 아니면 인간은 바뀌지 않는다.”
– 오마에 겐이치 <난문쾌답> 중

 

한국에 있으면서도 충분히 변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말한다면 외국이기 때문에, 사고에 개방성이 생기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많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는 이곳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에 차이와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와서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는데 인류 보편적으로 정당치 못한 일도 문화 차이와의 경계를 인지하지 못하고 받아들여 버리는 것과 같은 일이다. 초심자이기에 갖는 무지함인 것이다. 자신만의 소신과 융통성이 멋지게 조화를 이루어야만 혼란스러운 문화적 충돌 속에서 현명하게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외국생활이다. 그래 나는 여기서 인생 유학을 하고 있는 셈이다.

지인 중에도 호주에 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그리고 나에게 당장 내일이라도 출국할 것처럼 이런저런 질문들을 쏟아내기도 한다. 대부분의 경우 성의껏 대답해주고 나서 듣는 한결같은 소리는 “근데 나는 OO 해서 못가.” 혹은 “나는 영어를 못해서.”와 같은 결론이다. 정말 외국으로 나오고 싶다면 조금은 무모해질 필요도 있다. 나도 한국을 떠날 때 포기해야만 했던 소중한 것들이 있었고 처음부터 영어를 할 줄 알았던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안정적인 삶을 원한다면 있던 자리에 머무르는 것이 최고일지도 모르겠지만, 지금보다 나은 것을 성취하기 위해 한국을 떠나고 싶다면 준비를 해야 한다. 첫째는 언어이고 둘째는 경력, 그리고 셋째는 약간의 돈이다.

나름의 치열했던 시간을 거쳐 이 곳에서의 생활에 만족하며 살고 있지만 내 나라가 아니기에 앞으로 다시 어디에 정착해 살게 될지는 나도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디를 가든 내가 ‘한국이 싫어서’ 떠난 것은 아니다. 이런저런 일들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도 한국인으로서 내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안타까움에 마음 아파한 나였다. 설령 내가 국내에 있다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았을 테지만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들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은 병든 사회를 방관하고 도망쳐 나온 한국인이라는 자괴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아무리 헬조선이다 뭐다 이러쿵저러쿵 비관적인 말들이 많아도, 한국은 내 부모이자 고향이다. 그러면서도 어서 떠나오라고 부추기는 듯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미안하다. 남의 땅에서 사는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도 죄스럽다. 가슴 한편에 그런 마음을 품고 사는 것이다. 이 시대에 외국에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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