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적 미술 교육의 요람, 바우하우스

 

20세기 미술에 관심 있는 분이라면 ― 나치즘과 제2차 세계대전이 모든 것을 무산시키기 전까지 독일 바이마르와 데사우, 베를린에서 운영됐던 혁신적인 미술학교 바우하우스(Bauhaus)에 대해 익히 알고 계실 겁니다.

 

바우하우스

 

지난 세기 초 파란만장했던 시절을 살았던 예술가들에 관해 읽는 것을 좋아하는 저는, 바우하우스에 대한 기록이나 그 시절을 다룬 책들을 좋아합니다. 책 속에서 바우하우스의 팸플릿, 교정에서 찍은 스냅사진들, 학교에서 디자인된 간소하면서 미래적인 일상용품들, 발터 그로피우스(Walter Gropius)의 고층 주택단지인 베를린의 그로피우스슈타트 전경, 바우하우스 재직 시절 화가 파울 클레(Paul Klee)의 사진, 학생들의 공연 의상 등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곤 하지요.

하지만 그 중에서 무엇보다, 그리고 누구보다 제 마음을 사로잡은 건 바로 바우하우스 초창기에 대략 4년 동안 ‘예비 과정’을 가르쳤던 요하네스 이텐(Johannes Itten, 1888~1967)이라는 이름의 괴짜 선생이었습니다.

 

요하네스 이텐

△ 요하네스 이텐 (출처: 위키피디아)

 

미술학교에서 펼쳐진 요하네스 이텐의 요상한 체조 수업

 

대머리에 동그란 안경, 중세 승려 같은 가운을 걸치고 두 손을 앞으로 모은 채 조용히 어딘가 아래쪽을 응시하고 있는 그의 사진만 봐서는 이 사람이 20세기 초 그 어느 곳보다 모던했던 미술학교의 명망 높은 선생이었다는 사실을 짐작키 어렵습니다. 그는 선과 면, 원, 나선과 같은 기본 형태를 이해하는 것이 예술 창작에 본질적이라 여겼고, 12색으로 이루어진 색상환을 만들어 수업에 이용했으며, 창작에 앞서 몸과 마음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 규칙적으로 학생들에게 맨손체조를 시켰습니다. 바우하우스 학생들의 체조 시간이라니! ― 당시의 체조 장면을 찍은 사진을  <바우하우스> 책 삽화로 보게 됐을 때 저는 얼마나 놀랍고 또 즐거웠는지 모릅니다. 이완된 상태로 형상을 순수하게 직관하기 위해 진지하게 맨손체조 중인 학생들의 모습 좀 보세요.

 

바우하우스
△ 바우하우스의 체조 수업 (출처: konstrukt magazine)

 

이 신비주의적인 미술 선생은 실제 자기 내면의 이해와 직관력을 높이기 위해 명상을 하고 철저한 식단조절을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승려 성향을 떠나 제게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기본적 형상과 색상을 얼마나 철저히 이해하느냐에 그 뒤의 모든 것이 달렸다고 하는 그의 믿음이었습니다. 저로서는 금방 공감할 수 있는 믿음이었어요. 나처럼 생각했던 사람이 또 있구나, 하면서 반가운 마음에 그의 사진을 여러 차례 들여다보았지요.

 

아동학 전공생의 야심찼던 교육안

대학 시절에 들었던 아동학 전공과목 중에 어린이집 교수내용을 기획하는 수업이 있었어요.  저는 어린 아이들에게 그날의 학습 주제에 따라 형상뿐만 아니라 물체마다의 성질과 질감까지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가르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동그라미’나 ‘물’ 같은 주제를 잡고 그에 관한 활동만으로 하루를 보내는 황당무계한 수업안을 짰지요.

다행히 저 또한 제 기획안의 한계를 잘 알고 있어서, 강의 시간에 발표를 마친 다음 마치 남의 이야기를 교정하는 양 제 발표 내용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습니다. 선생님도 웃으시더군요.

하지만 뒤통수를 얻어맞는 것 같은 충격은 그 다음에 왔습니다. 제 다음 차례로 발표한 학생은 글쎄 수업 주제를 ‘교통질서’로 잡은 게 아니겠어요! 횡단보도 건너기, 신호등 불 구분하기, 좌측통행 같은 것들이 수업내용이었습니다. 횡단보도 건너는 법을 가르쳐야지, 동그라미나 네모가 무슨 소용인가? 어린 아이는 ‘교통질서를 가르치겠다고 생각하는’ 선생의 손에 맡겨야 하는 게 아닐까? 전 그만 제대로 주눅이 들고 말았습니다.

 

 “횡단보도 건너는 법을 가르쳐야지, 동그라미나 네모가 무슨 소용인가? 

 

프뢰벨의 ‘가베’

프뢰벨

△ 프리드리히 프뢰벨 (출처: 위키피디아)

 

프뢰벨(Friedrich Fröbel, 1782~1852)과 그의 ‘가베(Spielgaben.혹은, 은물恩物)’에 대해 알게 된 건 그 이후였습니다. 원목과 털실 등으로 만든 입체 도형을 열 가지 종류로 나누어 아이들이 제 연령에 맞는 것들을 가지고 놀면서 그 놀이를 통해 자신의 잠재력과 재능을 끌어내도록 한 장난감이자 교구가 바로 가베이지요.

 

프뢰벨

△ 프뢰벨의 ‘가베’ (출처: 위키피디아)

 

어른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런 단순한 장난감을 아이는 쉬이 지루해할 수도 있겠지만, 나무와 털실의 질감, 부드러운 구와 원뿔의 형태 같은 것을 아이가 마음속에 각인시킨다는 생각은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인 것이 사실입니다.

 

질료를 자유롭게 다루는 재능

고등학교에 다닐 때 같은 반 아이 중에 그림을 아주 잘 그리는 아이가 있었어요. 그 애는 미술을 전공하려 하고 있었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그 애가 좋은 미술학교에 입학하는 건 떼어 놓은 당상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도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지만 할 수 있는 것과 못 하는 것의 차이가 천지차이였어요. 눈앞에 있는 것을 연필로는 무난히 스케치해내고도 막상 붓을 들고나면 ― 물감과 물이라는 제멋대로의 재료들과 전쟁을 치르기 일쑤였습니다. 색, 무엇보다 ‘질료’가 제게는 낯설었던 거지요. 자꾸만 연필 윤곽을 침범하고 이미 칠한 색을 적셔 엉망으로 만들어놓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아예 도화지를 찢어놓는 수채물감을, 저는 도무지 어떻게 다뤄야 할지 알 수가 없었어요.

 

창의성

 

하지만 질료를 편안히 대하는, 모든 소재와 사이좋게 지내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림에 소질이 있던 그 아이도 바로 그런 부류였어요. 언젠가 미술 선생님이 소묘 한 편을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주셨을 때, 저는 책상 위에 손톱깎이를 놓고 금속의 광택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면서 정성껏 그린 그림을 학교에 가지고 갔습니다. 4B연필로 ‘금속성’을 표현해내는 데는 결국 실패했지만 제 나름대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 그림이었어요. 하지만 우리 반 화가가 가져온 그림은 사뭇 달랐습니다. 그 애가 도화지 위에 그려온 것은 구겨진 신문지였어요. 신문의 또 다른 재질이 고스란히 도화지 위에 옮아져 있었습니다. 그 애가 아름답게 재구성해놓은 복잡한 구김들 위로 인쇄된 활자들이 정말로 잉크 냄새를 풍기는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런 재능. 가느다란 머리끈 하나, 손바닥만 한 스카프 한 장으로 멋을 낼 수 있는 재능. 조그마한 조각 장식과 골동품을 골라 독특한 분위기로, 그러나 이물감은 들지 않게 주위를 장식할 수 있는 재능. 형상과 재질에 정통한 사람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런 재능을 발휘하지요.

 

어른들을 위한 ‘가베’ 학습

 

창의성

 

요하네스 이텐이 형상과 색을 강조했다면, 그의 후임으로 바우하우스에서 예비과정 교수를 맡은 일련의 선생들은 학생들로 하여금 새로운 매체와 기술, 재료의 특성과 그것으로 구성할 수 있는 형태의 가능성에 주목하게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뒤에 안 것은, 바우하우스 학생들 앞에서 맨손체조 시범을 보였던 이텐 선생이 사실은 경력 초기에 프뢰벨의 교수법으로 초등학교에서 먼저 가르친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도 실은 프뢰벨 학도였던 거지요! 그렇다면 당시 바이마르에 모였던 소수정예의 학생들이 보고 만졌을 갖가지 도형 모형들과 색상환은 성인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창조성을 새로 일깨우기 위해 이텐이 만든 일종의 변형된 가베였는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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