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만 약속 시각에 늘 20분~30분 늦는 친구, 한다고 하는데 일이 좀처럼 진척되지 않아 주위를 답답하게 하는 친구, 마감 기한보다 언제나 하루 이틀(때로는 일주일) 늦는 사람이 주변에 한 명씩은 꼭 있다. 아마도 그런 친구를 둔 주변 사람들은 답답해서 속이 터질 것이다. 그 친구가 바로 나였다.

 

미루기쟁이의 심리

미루기쟁이

 

할 일을 끝내놓고 다른 걸 하면 될 텐데 왜 안 될까?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여유가 있을 때는 왜인지 그 일을 미치도록 하기 싫다. 머릿속에서 싫은 느낌이 용솟음치고, 번번이 굴복하고 만다(조용한 성인 ADHD 증상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다). 약속 장소에 여유 있게 도착하려면 지금 시각에는 준비해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너무 하기 싫다.  자꾸 딴짓을 한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뉴스를 찾아보거나 책을 읽는다든가 미뤄둔 일을 한다든가. 그러다가 결국 약속 시각에 늦고 주변 사람들을 화나게 한다.

나는 이 습관 때문에 선착순 일일 알바에서 잘린 적이 있고 오랜 친구들과 의가 상할 뻔했으며 신혼 초 신랑과 꽤 다투었다(신랑은 약속을 칼같이 지키는 성격, 정말 부럽다).  후회를 거듭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마음먹지만,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마감이 임박하거나 지났을 때의 짜릿한 순간과 몰입감, 살아있는 느낌(?)에 중독되었던 걸까. 하지만 벼락치기 노력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고 차근차근 공들여 여유 있게 끝난 작업보다 완성도가 있을 리 없었다. 몇 년간 반복하니 벼락치기 요법도 내성이 생겼는지 마감이 닥쳐도 ‘하기 싫은 감정’이 올라왔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명상 프로그램도 참여해보고 자기계발서도 읽어보고 ‘To Do List’를 적어보기도 했으며 긍정적 자기 암시를 하거나 우선순위를 세워보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모든 노력은 ‘하기 싫다’는 마음에 단번에 무너져버렸다. 긍정적 암시도 성과가 있을 때 지속하는 거다. 신랑과 지인 등 나에 대한 타인의 신뢰도가 바닥을 치고 나 자신에 대한 불신과 우울이 깊어진 건 말할 것도 없다. 특히 글쓰기와 번역을 일감으로 삼는 나에게는 더 치명적이었다.

 

미루기쟁이

 

나 자신에게도, 일을 맡긴 클라이언트에게도 누구 하나 좋은 것 없는 이 습관이 왜 반복되는지 곰곰이 생각했다.  글이 막히거나 번역이 안 될 때 여지없이 나는 ‘끝없는 미루기’의 늪에 빠져들었다. 기분 전환을 한다는 핑계로 눈앞의 순간적 달콤함에 취하는 것. 5분만 서핑해야지 마음먹지만 5분이 10분이 되고 15분, 1시간이 되는 건 금방이었다. 그 결과, 일정한 공부 시간이 확보되지 않으니 번역 실력이 늘지 않고 글쓰기 작업을 많이 하지 못하니 돈도 모이지 않았으며 하루하루 발전 없이 똑같은 나날들이 쌓여간 것이 벌써 이십 년째다.

이제 30대도 지난 지금 임신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단 생각이 들었다. 임신을 하면 최소 몇 년간은 마음껏 공부할 시간이 없을 거란 생각에 조급해졌다. 설상가상으로 손도 느린 나는 언제나 시간이 부족했다. 어쩌다 일에 몰입하게 되거나 종종 마감 시한을 넘겼을 때 (이때 신기하게 가장 집중이 잘 되는데) 모처럼 찾아온 몰입감을 놓치기 싫어서 끼니를 거르기 일쑤였다. 식사 준비, 먹기, 설거지에 최소 두 시간은 걸리므로.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어느 날 나는 클라이언트가 요청한 주제로 글쓰기를 하다 막혀서 여느 때처럼 딴짓을 하고 있었다. 이런저런 의미 없는 뉴스를 클릭하다 번쩍 머릿속에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래, 기왕 딴짓할 거라면 미루지 않고 글쓰기를 하는 방법을 찾아보자!”

 

그렇게 해서 찾은 것이 바로 이 방법이다. 이유 불문 ’15분 간격’으로 끊기! 일명 ’15분 끊기’. 이 방법은 꽤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었는데, 사람의 집중력이 가장 잘 유지되는 시간이 바로 15분이라고 한다. 15분 끊기의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15분 하고, 5분 쉬어주면 된다. 그래, 밑져야 본전. 한 번 시도해보는 거다. 15분 끊기! 그 결과는? 20년간 ‘미루기쟁이’로 살아왔던 나에게는 너무나 만족스러웠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하나씩 써보겠다.

 

 

 미루기 습관 버리기, 15분 끊기의 위력

미루기쟁이 습관 버리기, 15분 끊기

 

1. ‘하기 싫다’는 감정과 싸울 필요가 없다
15분은 얼핏 짧은 것 같지만 생각보다 긴 시간이다. 잘 풀리면 최소 5~10줄 정도 쓰기에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이걸 해야만 해!’라며 나 자신을 몰아붙이기보다 ’15분만 집중하고 쉬자’라고 마음을 먹으니 예의 ‘하기 싫은 마음’이 끼어들 새가 없었다. 이렇듯 자신의 마음과 싸우기보다 그 마음이 끼어들 여지를 안 주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고 의지력이 덜 소모된다.

 

2. 막혔을 때 끊고 앞으로 나아가기가 더 쉬워진다
번역의 경우 대부분 단어 하나, 구절 하나 때문에 막히는데 그럴 경우 얼른 다음으로 넘어가야 하지만 이상하게 잘 안 되었다. 막히는 부분이 전체적으로
크게 중요한 부분이 아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나중에 이 골치 아픈 대목을 또 들여다봐야 한다는 게 싫었던 걸까? 그러나 15분 끊기를 하자 앞으로 나가기가 훨씬 더 수월했다. 모르는 부분을 종일 붙잡고 있는 것보다 아는 부분부터 끝내놓고 되돌아가는 편이 여러모로 효율적인데 15분 단위로 끊으니 뭔가 재충전이 되면서 전체의 그림을 볼 여유도 생기고 앞으로 나가기가 수월했다.

 

3. 눈이 덜 아프다
대부분의 미루기쟁이가 그렇듯 하는 건 없는데 마음만 조급해서 컴퓨터 앞을 쉬이 떠나지 못했다. 집중이 안 될 때는 딴짓을 하고 또 몰입이 될 때는 몰입이 깨질까 봐 몇 시간이고 컴퓨터 앞에 붙어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날 종일 눈이 아프고 눈이 아프다 못해 머리가 아프고 입맛이 없는 날도 꽤 많았다. 그러나 ’15분 끊기’를 시작하자 인공 눈물을 넣어도 눈이 건조하고 아픈 증상이 사라졌다. 종일 ‘열일’하는 눈에게 자연스럽게 휴식 시간을 주게 된 덕분이다. 알다시피 눈이 피곤하면 집중력도 떨어지고 그래서 더 오래 앉아있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반면 눈이 아프지 않다면 집중력이 생겨 더 빨리 끝낼 수 있다.

 

4. 끼니를 제때 챙겨 먹게 되었다
한 건 없는데 뭘 또 먹자니 또 두 세시간이 날아갈 거란 걱정에 끼니를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아낀 시간만큼 꽉 채워 일한 것도 아니었다. 배만 고플 뿐이었다. 그러나 15분 끊기를 하면서 일의 효율이 늘어나니 내 몸을 돌볼 여유도 생겨났다. 일정한 시간 끼니를 챙겨 먹게 되니 건강도 좋아졌다. 활력이 생기니 일의 효율성이 늘어난 건 물론이다.

 

5. 작업량과 공부 시간이 늘어났다
그간 되돌아보면 책상에 두세 시간 앉아있었다 해도 실제로 작업한 건 한두 줄인 경우가 많았다. 머릿속으로는 두세 시간 작업했다고 믿고 싶지만 실제로 작업한 20분 외에는 딴짓으로 시간을 허비한 것뿐이었다. 그러나 15분 끊기를 하니 실제로 진척되는 게 눈에 보였고 여기에 힘을 받아서 더욱더 집중하여 일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전기세만 잡아먹는 무한 딴짓 1시간을 하고 찔끔찔끔 일하기보다 짧은 시간 앉아있더라도 집중해서 15분씩, 15분씩 마무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많이 성취하는 길이다. 모든 걸 시간 단위로 끝내려는 고정관념만 버리면 된다.

 

6. 절제 있는 딴짓이 가능해진다
예전에는 한 번 딴짓에 빠지면 눈이 아프고 빡빡할 때까지 헤어나오질 못했다. 하지만 15분 끊기 습관을 들인 뒤로는 짧으면 10분, 길어야 30분 안에는 다시 공부나 일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건 아무래도 무한 딴짓보다 일을 진척시키는 재미가 더 크다는 점을 그 ‘하기 싫은 마음’이 알았기 때문이지 싶다.

 

7. 작은 성취감이 쌓인다
15분 끊기의 가장 큰 장점이라 생각하는데 매일 매일 작은 성취감이 쌓인다는 점이다. 작은 성취감은 그 자체로도 소중하며 나 자신을 믿게 해주고 긍정적인 감정을 솟아나게 한다. 자연히 주위 사람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또한 작은 성취감은 모여서 커다란 성공을 이루는 발판이 된다(아직 이루지 못했지만, 꼭 이뤄서 보여줄 거다). 20년간 나 자신도 믿지 못했던 내가 서서히 마음먹은 시간에 가깝게 공부와 일을 마무리하니 기특하고 자랑스럽다. 이제야 제대로 된 사회인, 어른으로 구실을 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필사하기, 번역 공부하기 등 미뤄놓았던 일도 매일 꾸준히 하게 되었다.

 

 

이어서, 15분 끊기의 성공을 돕는 두 가지 팁을 쓰겠다.

미루기습관버리기, 15분끊기

 

첫째, 왜 미루는지 자신의 마음을 그냥 죽 적어 내려간다
나의 어떤 면이 이 일을 미루게 하는 건지, 왜 이 일을 하기 싫은 건지 차분히 되돌아보는 거다. 이 ‘하기 싫은 마음’을 어린아이라 생각하고 그 아이의 마음을 알아준 뒤 살살 달래주는 거다. 실제로 이 방법은 대부분의 말썽꾸러기, 고집쟁이 아이들에게 놀랍도록 잘 통하는 방법이라고 알려져 있다. 또한 죽어라 하기 싫은 일이 실제로 안 맞는 일이어서 그런 경우도 꽤 있다. 그럴 때는 그 일을 그만두고 다른 걸 하면 된다. 이 점은 카르린 파시히, 샤샤로보의 저서 <무계획의 철학>에 아주 잘 나와 있다. 여담인데, 전국의 미루기쟁이에게 꼭 일독을 권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 외에 유명한 작가들도 잦은 미룸으로 겪은 웃픈 일이 많아 위안을 얻을 수 있다.

 

둘째 집중이 잘 되는 공간에 찾아가라
카페도 좋고 도서관도 좋다. ‘딴짓거리’가 없는 환경에서는 15분씩 끊을 필요도 없이 몰입이 잘 된다. 사람의 뇌는 매 순간 피곤하게 의지력을 발휘하게끔 만들어지지 않았다. 의지력을 키울 생각보다는 의지력을 덜 쓰는 환경에 가서 일하기가 쉽고 빠르며 효과적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딴지일보의 기사 ‘노오력학개론‘을 참고하길.

 

 

15분끊기의힘

 

지금 이 글도 15분 끊기 전략 덕분에 쓰게 된 것이다. 한 달 전, 콘텐타에 작가 등록만 해놓고 뭘 쓸지 고민만 하다가 이주 만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15분 끊기가 아니었다면 이 글이 완성되는 시기가 다음 달이 될지 내년이 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하리라(남편에게 오늘 이 글을 다 쓰기로 약속했는데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어 정말 기쁘다). 미루지 않는 방법에는 15분 끊기 외에 다른 방법도 있을 것이다. 전국의 미루기쟁이들이여,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언제든 공유 부탁드린다. 나는 15분 끊기를 성공한 뒤 다른 사람들처럼 멋진 성공담을 남기고 싶다. 내가 원하는 한국문학번역원에 합격했다든지, 정식으로 데뷔하여 1년에 책 10권 정도 번역하는 전문 번역 작가가 되었다든지 하는(기왕이면 통장도 빵빵해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 같은 수많은 미루기쟁이에게 작은 희망과 자신감을 주고 싶다. 나도 할 수 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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