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난 맛집이 있습니다.
다른 식당이 감히 따라올 수 없는 다양하고 트렌디한 메뉴,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맛으로 이 곳은 24시간 손님들로 발디딜 틈이 없습니다. 모두들 부러운 눈으로 대박집의 사장님을 바라봅니다. 부자가 되는 건 시간 문제라 말합니다. 비결을 배우고자 이곳저곳에서 대박집을 기웃거립니다.
하지만 사장님의 얼굴엔 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습니다. 가게 매출의 대부분은 고스란히 건물주에게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건물주는 오히려 선심 쓰듯 가게의 모든 집기, 주방용품 등을 자신이 구해주는 걸로 쓰라고 합니다. 처음엔 고맙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그것들에 대한 비용도 청구합니다. 아주 비싼 값으로.
이 소식을 들은 몇몇 도매업자가 좋은 품질의 물건을 만들어 사장님에게 권합니다. 가격도 반값입니다. 하지만 사장님은 혹시라도 음식 맛이 변할까 다른 제품으로 바꿀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급기야 도매업자들이 아무리 싸고 좋은 물건을 내놓아도 쳐다보지 않고 문전박대를 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사장님은 24시간 고생해서 남 좋은 일만 하는 대박 집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우리나라를 정보통신(IT) 강국이라 말합니다. 미국, 일본을 따라하기 급급했던 나라가 이젠 그들을 앞선, 최소한 어깨를 견줄만한 산업으로 일궈낸 것은 가히 대박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에 가장 큰 역할을 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빠른 인터넷입니다.
아카마이라는 한 외국계 기업은 매년 세계 각국의 인터넷 속도를 측정해 발표하고 있습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인터넷 속도가 6분기 연속 1위를 달성했다고 합니다. 말 그대로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데 이견을 달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이러한 발표가 날 때마다 언론은 자화자찬하기 바쁩니다. 역시 대한민국! 외국에서 먼저 알아주는데 기분 나빠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어느새 정보통신 강국의 이미지에 세뇌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실상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우리나라는 저 대박 맛집과 별반 다를 바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빠른 인터넷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죠. 그 속에 수많은 통신장비들이 작동해야 합니다. IT라고 하면 휴대폰이나 컴퓨터 따위를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통신장비 역시 오늘날의 IT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2000년대 초 시작된 초고속 인터넷 붐 속에서 우리는 그저 인터넷을 깔기에 바빴지 그 안에 들어갈 장비가 어떤 것인지, 그것으로 어떤 부가가치를 창출해낼 것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못 했습니다. 15년여가 지나도록 아직도 우리가 쓰는 인터넷은 외국 기술로 이뤄진 것이라는 데는 변함이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신나게 인터넷을 소비하지만 알짜배기 수익은 외국 장비업체에 돌아갑니다. 맛집이 대박이 나도 돈은 건물주가 쓸어 담는 형국이지요. 사실상 세계 인터넷을 구축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이 업체들은 그 수가 서너 군데 밖에 안됩니다. 거의 독과점 수준이지요. 우리가 잘 아는 삼성전자도 이 분야에선 맥을 못 춥니다. 시장점유율은 1%도 되지 못합니다.
경쟁이 없는 시장에선 생산자가 갑입니다. 잘 쓰던 물건도 업그레이드라는 이름 하에 바꿔야 하고, 그들이 내건 가격정책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이를 지켜본 국내 중소업체가 열심히 연구개발 하여 그에 비견할 제품을 만들어냅니다. 제품의 성능도 괜찮고 가격도 쌉니다. 아무리 독과점 시장이라고 한들 경쟁이 붙으면 이기는 것이 당연해 보일 정도지요.
그런데 요상하게도 그것을 사려는 이가 없습니다. ‘제품에 하자가 있을 거 같아서’, ‘모르는 브랜드라서’, ‘원래 쓰던 물건이 있어서’… 갖은 이유를 대며 원래 쓰던 제품에 대한 충성도를 보입니다. 맛이 변할까봐 쉽사리 주방기구를 바꾸지 못하는 대박집 사장님의 염려일까요.
그러는 동안 그 제품 개발에 전력을 쏟은 중소업체들은 물건을 팔 곳이 없어 문을 닫습니다. 그렇게 나가떨어진 국내 업체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인터넷 품질 세계 1위의 나라에서 정작 그 인터넷 장비를 만드는 업체들은 계속 도산하고 있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전히 비싼 값에 인터넷은 소비되고 있고, 누군가는 뒤에서 씨익 웃음 짓고 있겠지요.
정보통신강국의 화려함 이면은 이토록 위태롭기 그지 없습니다.
싸고 좋은 제품이 선택 받는 것이 시장의 논리이지요. 이를 만족시키지 못해 경쟁에서 졌다면 깨끗이 수긍하고 기술개발에 더욱 정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한 곳이 우리네 통신장비 산업입니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 문을 닫은 중소업체들은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야 할지요.
머지않아 5G통신 시대가 열린다고 합니다. 이변이 없는 한, 그때도 우리나라는 세계 1위 인터넷국가로 명성을 떨칠 것입니다. 과연 우린 축포를 터트려야 할까요.
어쨌든 대박집의 신화는 계속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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