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표한다. 특히나 성에 대해 공공연하게 말하는 걸 꺼려하는 우리나라 문화 특성 상, 마치 그것이 나쁜 것이라도 되는 것마냥 터부시 하는 경향도 이에 한몫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앞서 말한 것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듀렉스가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듀렉스는 훌륭한 마케팅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단순히 브랜드의 이름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키거나 상품 판매를 촉진시키는 것을 훌쩍 넘어, 사람들의 인식까지 바꾸어 놓은 것이다. 듀렉스는 사람들이 ‘콘돔’이라는 단어에 대해 갖고 있는 막연한 거부감을 없애며 그것을 친근한 것으로 여기게끔 만들었고, ‘콘돔=듀렉스’라는 수식을 완성시키기까지 했다. 이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국내 콘돔 브랜드 점유율 1위(2014년 12월 기준)를 달성하고 있다. 듀렉스의 마케팅이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듀렉스의 성공 사례에서 마케팅의 몇 가지 기술들을 알아보기로 한다.
트위터에서의 성공, 듀렉스 전도사
듀렉스가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은 아마도 트위터일 것이다. 국내 트위터 이용자라면, 2013년 12월 23일에 탄생해서 2015년 12월 31일에 문을 닫게 된 ‘듀렉스 전도사’라는 계정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듀렉스 전도사’는 듀렉스가 2013년 12월에 모집한 대학생 서포터즈 활동인 ‘듀렉스 트렌더즈’에서 처음 기획되어 계정 운영을 시작했다. 처음엔 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으나, 점차 SNS 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얻게 되며 듀렉스의 메인 마케팅 채널이었던 페이스북 페이지 이상의 파급력을 가지게 되었다.
수많은 브랜드들이 서포터즈 활동을 기획해 왔으나 듀렉스 전도사만큼의 성과를 낸 서포터즈는 없었다. 이는 일차적으로는 듀렉스 전도사가 문화 및 트렌드에 대한 다양한 지식을 확보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운영 전략을 잘 짜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뒤에는 듀렉스 코리아의 남다른 마케팅 전략이 있기도 했다.
‘듀렉스 전도사’ 계정 운영자는 듀렉스가 단순히 SNS를 잘 운영했기 때문에 성공한 브랜드가 아니라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콘돔은 제품 특성상, 소비자가 온라인 등에서 미리 구매를 하기보다는, 필요한 때에 즉시 오프라인에서 구매하는 비중이 월등히 높다.
그렇기에 먼저 오프라인에서 밴더들이 다양하게 유통 채널을 확보하여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하는 데에 어려움이 없도록 하고, SNS에서는 그와 함께 ‘듀렉스를 발견하면 사진을 찍어 SNS에 제보’하는 캠페인을 진행했다.
해당 캠페인은 평소 콘돔의 진열 위치가 쉽게 찾기 힘든 구석임에 착안해 소비자로 하여금 직접 콘돔 및 듀렉스의 진열 위치를 파악할 수 있게 하고, 이를 사진으로 찍고 제보하는 행동을 통해 콘돔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허물었다. 일종의 유행처럼 번지게 된 이 캠페인을 통해 듀렉스는 브랜드 인지도가 급상승했으며, 이는 곧 매출의 상승으로 이어졌다.
그와 더불어 듀렉스는 SNS상에서 뿐만 아니라 오프라인에서 지속적으로 공익을 위한 활동과 대학생 서포터즈(듀렉스 트렌더즈) 운영 등을 통해 끊임 없이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는 행보를 보여왔다. SNS와 오프라인 마케팅 활동의 시너지를 통해 듀렉스는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 ‘성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전달하려 했다.
듀렉스 전도사 계정이 보유하고 있는 팔로워가 40,000명 이상이라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타 브랜드 중에서도 40,000명 이상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 곳이 있긴 하지만, 콘돔이라는 단어나 성적인 이야기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한 콘돔 브랜드의 팔로워가 40,000명을 넘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사람들로 하여금 콘돔이라는 상품에 대해서 말하는 것, 나아가 성에 대해 말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인식을 걷어냈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듀렉스 전도사 계정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캐릭터성’이다. 듀렉스 전도사 계정 주인은, 서브 컬쳐와 인디 문화뿐만 아니라 아이돌, 패션, 마케팅, 드라마 등 여러 가지 방면에서 뛰어난 지식을 갖고 있으며, 특유의 농담을 섞어 자신의 지식이나 의견을 전달했다. 단순히 기업이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소비자가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를 브랜드와 자연스럽게 엮어내며 자신만의 캐릭터와 말투를 보여줌으로써 차별화를 꾀한 것이다.
많은 브랜드에서 듀렉스 전도사의 SNS 마케팅을 따라했지만 소비자들에게 전혀 반향을 일으킬 수 없었던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그들은 듀렉스 전도사의 말투를 답습하거나 잡다한 지식을 긁어모으긴 했지만, 듀렉스 전도사처럼 유니크한 캐릭터를 확보하지는 못했다. 이는 마케팅 채널 관리에 있어서 실무자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사실 SNS나 블로그 등의 마케팅 채널들은 거창한 계획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기본적인 컨셉 정도가 필요할 뿐이다. 그렇기에 그 채널을 운영하는 실무자의 경험과 센스가 얼마나 뛰어난지가 중요해진다. 지속적으로 트렌드를 읽어내려고 노력하고 그것을 마케팅 채널에 적용시키는 과정도 꼭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듀렉스 전도사와 같은 입지를 확보하기 힘들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해당 브랜드의 주된 소비층에 적합한 캐릭터와 이야기를 제시해야 한다.
만약 당신이 화장품 브랜드의 마케팅 채널을 관리하고 있다면, 20~40대 여성을 주 타겟으로 삼고 그들에게서 대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사람을 실무자 자리에 앉혀야 한다. 각 채널마다 고려해야 할 소비층도 다르다. 트위터 같은 경우에는 2, 30대가 주를 이루고 있는 반면 카카오스토리에서는 4, 50대와 10대가 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채널에 따라 소비자 층이 다른 만큼 콘텐츠의 성격도 달라져야 한다.
이와 같이 마케팅 채널 관리자는 해당 브랜드의 소비자 집단 및 해당 채널의 주 활동 집단을 면밀히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실무자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실무자는 해당 계정만의 캐릭터를 만들어내고, 소비자들과 소통하며 그것을 잘 유지시켜나가는 데 집중해야 한다.
마케팅은 뻔뻔하게, 적극적으로
앞서 듀렉스 전도사의 SNS 마케팅 전략에 대해서 살펴봤지만, 사실 듀렉스의 성공적인 마케팅은 예견된 일이기도 했다. 듀렉스 본사나 듀렉스 코리아가 그간 해왔던 마케팅이 꽤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 듀렉스 코리아에서 내놓은 콘돔 CF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다. 내용이 파격이라기보다, TV(케이블 채널)에서 콘돔 광고를 방영했다는 그 자체가 파격이었다. 공익광고를 제외하고 특정 브랜드의 콘돔 CF는 듀렉스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그 전까지 한국에 입점했던 콘돔 브랜드들은 딱히 별다른 마케팅을 펼치지 않았다. 한국 사회에 깔려 있는 엄숙주의를 염려한 것인지, 다소 소극적인 자세로 마케팅에 임했다. 그렇기에 소비자들은 ‘콘돔’이라는 제품 군에 대한 인식만 있을 뿐, 특정 브랜드에 대해 인지하고 구매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듀렉스는 달랐다. 듀렉스의 마케팅은 적극적이었고 뻔뻔했으며 대담했다.
남자친구의 집에 놀러간 여자친구가, 현관 앞에서 가방에 든 콘돔을 쏟아버리는 장면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남성들이 주로 사용하는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아, 여성이 직접 콘돔을 준비한다는 내용에서부터 놀랍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와 같이 유쾌하고 직설적인 면이 많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에둘러 말하지 않고 오히려 정공법을 썼던 것이 소비자들의 공감을 산 것이다.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낼 수 있는 효과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더불어 듀렉스의 글로벌 본사에서 보여준 마케팅 방법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12월 16일, 듀렉스 본사는 세계 최초로 유니코드에 성생활 이모티콘의 공식 등재를 요청했다. 듀렉스는 16~25세의 85%가 이모티콘을 사용해 성행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편안함을 느낀다는 조사 결과를 토대로, 젊은 층이 사용할 성행위 공식 이모티콘이 필요하리라고 판단했다.
듀렉스에서는 소셜 캠페인 ‘#콘돔이모티콘’을 제시했고, 이후 이를 응원하는 게시물이 60초마다 하나씩 올라올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단숨에 참여자 100만 명을 돌파했다. 이제 사람들은 연인과 카톡을 할 때조차 듀렉스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될 것이다.
만약 당신이 마케팅 해야 하는 브랜드가 인지도가 미미함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다면, 빨리 그 자세를 떨쳐버리라고 알려줘야 한다. 왜 브랜드의 이름과 가치를 사람들에게 홍보하지 않는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브랜드의 제품을 어떻게 판매할 수 있을 것인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 한, 합법적인 선 안에서의 공격적인 마케팅은 필요하다.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자세를 취할수록, 마케팅에서 성공할 확률은 높아진다.
마케팅의 초기 단계에서는 전략과 구상이 중요하다. 그리고 신중함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마케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시기라면 전략보다는 실무가, 신중함보다는 적극성이 더 중요해진다.
소비자가 원하는, 또 소비자와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는 브랜드만의 캐릭터를 구축하고 지속적으로 유지하라. 소비자와 꾸준히 대화하려는 자세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브랜드 캐릭터와 브랜드 이미지, 그리고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은 전부 당신의 콘텐츠가 된다.
또한 이러한 요소들이 효과적으로 작용할 때, 당신의 브랜드는 사람들의 인식과 사회 문화를 바꿔 놓을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지금 ‘듀렉스’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 불결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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