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2014년 국내 개봉한 영화 중 단연 첫 손에 꼽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호아킨 피닉스 주연의 ‘그녀(her)’라는 영화입니다. 영화 포스터는 배우의 얼굴만 대문짝만하게 나와 있어서 도대체 무슨 내용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습니다만, 이 영화는 분명 SF영화 입니다.
대필작가인 ‘테오도르’가 인공지능 운영체제인 ‘사만다’를 만나게 되면서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입니다. SF영화라고 하면 은빛 쫄쫄이를 입은 주인공들이 우주를 날아다니고 외계인을 만나고 등등을 떠올리기 쉽지만 이 영화는 그런 분위기와는 전혀 다르지요. 감성충만한 일본 멜로 영화를 한 편 본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작년만큼 인공지능이 IT업계에 핫이슈로 등장한 적은 없었습니다. 사물인터넷이 현실화되면서 그 발전의 최종 단계는 인공지능이 될 것이라는 예측이 정설이 됐고, 사람의 조작없이 도로를 달리는 자율주행차가 실제로 등장해 인공지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드론은 또 어떻습니까. 장난감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똑똑한 제품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이러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도 합니다. 참 캐캐묵은 주제가 아닐 수 없는데요. 그런데 지금 돌아가는 모양새를 보고 있자면 이제 굳이 SF영화만을 떠올리지 않아도 되는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이쯤에서 이 글의 제목이 왜 하필 솔로 여성분들을 지칭하고 있는지 가늠이 될까요.
인공지능이 사람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상상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사람의 ‘관계’를 대체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을 인식할 때 먹고 마시고 자고 숨쉬는 ‘동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친구, 애인, 직장동료 등 나와의 관계로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이죠. 그런데 이 중, 인공지능이 ‘애인’을 대체할지 모르는 매우 구체적인 시도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위 영상은 작년 E3 게임쇼에서 반다이남코사가 선보인 ‘서머레슨(Summer Lesson)’이라는 게임의 테크데모입니다. 금발의 아름다운 소녀와 내가 해변가 어느 집에 앉아있는 것이 전부인 게임입니다. 게임 자체도 그저 그녀의 질문에 ‘예/아니오’로 대답하는 것이 다입니다.
재미로 따지면 이보다 단순하고 유치할 수 있을까 싶은데요. 하지만 이 영상이 공개된 후 이 게임의 출시를 학수고대하는 폭발적인 반응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상당수의 유저들이 게임 속 여주인공을 자신의 여자친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전에도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3D 그래픽을 기반으로 한 VR기기를 함께 사용하는 이 게임과 몰입도에서 비교할 바가 안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저러한 ‘가상’의 여자친구가 있다고 한들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히는 부분이 있습니다. 영화 ‘그녀’에서도 아주 비중 있게 다뤄지고 있는 부분인데, 과연 ‘그녀’와 성관계도 가능할 것이냐는 의문입니다. 영화에서처럼 ‘현실’의 사람을 고용해야 할까요. 다음 영상을 보면 그것은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영상 속 베타테스터들의 반응이 재밌습니다.
이쯤 되면 가상의 여자친구로도 ‘충분히’ 만족하는 남자들이 분명 생겨날 겁니다. 상처받을 필요도 없고, 돈을 쓸 필요도 없고, 현실에선 만나지도 못할 8등신 미녀가 내 옆에서 항상 나를 향해 미소를 날려준다니요! 물론, 반대로 여성을 상대로 한 가상의 꽃미남 남자친구가 등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게임 유저의 절대 다수가 남자인 점을 감안하면, 개발업체는 잘 팔리는 남성용 콘텐츠를 우선 개발하는 데 주력하겠지요.
현재 인류가 개발한 인공지능은 일상 언어로 대화가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했습니다. 물론 영화에서처럼 보다 고차원적인 대화가 실현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산이 많지만, 남자들은 그런 것까진 바라지도 않습니다. (이미 현실의 여자와 기초적인 대화도 힘들어하는 남자들이지 않습니까!)
결국 먼 미래가 아닌 현재의 기술로도 ‘그녀’는 충분히 실현가능하다는 결론입니다. 인공지능이 직업을 빼앗아가는 것이 아닌 미래의 남친을 빼앗아가고 있다는, 실로 무시무시한 일이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이러한 여자친구가 사이버 세상이 아닌 물리적인 실체로서 등장할 날은 언제일까요. 아마 이렇게 ‘생산’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나저나 이미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이러한 ‘제품’에 지나치게 –정신적으로나 성적으로나- 빠지게 될 경우, 과연 외도라고 볼 수 있을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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