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쿠레이리(Akureyri)에서 한껏 야경에 취해 하룻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침 일찍 북극해의 고래를 만나러 달빅(Dalvik)으로 갔다. 아쿠레이리에서 달빅까지는 45km 정도, 차로도 45분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나오지만 우린 거의 30분 만에 달빅에 도착했던 것 같다. 달빅 항구에서 출발하는 북극해 고래 투어(Arctic Whale Watching)가 아침 일찍, 8시 반이었나, 9시쯤 출발하는데 9월부터는 하루 한 번 떠나는 걸로 나와 있어서 배가 떠나기 전에 그곳에 도착해야 했다.

다행히 우리는 늦지 않게 달빅 항구에 도착했는데, 기억하기론 투어를 진행하는 듯한 커다란 여행사 건물 둘 중 한 군데만 열려 있었다. 혹시라도 이미 배가 출발해버렸을까 봐 걱정하며 문을 들어섰는데, 한 아저씨가 다행히도 아직 배는 출발하지 않았다고, 앉아서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준비해간 커피를 마시고, 여행사 안에 조그맣게 차려진 가게의 겨울옷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북극해에 나갈 때 입을 옷을 가져다주셨다.

고래 관찰

이렇게 생긴 옷으로, 우리는 외투 위에 그대로 이 멋진 옷을 껴입었다. 마도로스가 된 기분이었다. 북극해 고래 투어 간판 옆을 지나 북극으로 가는 배를 타러 갔다. 선착장 입구에 정박해 있는 아기자기한 보트를 지나, 오른쪽에 보이는 DRAUMUR라는 배에 탔다(왠지 Dreamer라는 뜻이 아닐까). 왼쪽에 있는 MANI는 성수기에 좀 더 많은 여행자들을 태우는 배인 것 같다.

배가 출발하기 전, 설레는 마음으로 선착장을 둘러보고, 북극해 고래를 보기 위한 항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여행사에서 우리에게 안내를 해주고, 옷을 갖다 줬던 아저씨가 배의 선장이자 투어 가이드였다. 먼 바다로 나가기 전에 그곳에 어떤 고래들이 살고 있는지 설명해 줬는데, 운이 좋았다면 혹등고래, 쇠줄고래, 밍크고래, 흰부리돌고래를 모두 볼 수 있었을 거다.

실제로 우리가 본 건 혹등고래(Humpback Whale)가 유일했던 것 같다. 상대적으로 배부분이 밝은 빛을 띠고 있어서 물 속에 있어도 희고 푸른빛이 새어나온다는 것을 우리는 곧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30분 정도 지나서였던가, 우리는 드디어 고래들을 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고 조금 기다리자 고래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번엔 두 마리가 함께 나타났는데, 이후 계속해서 두 마리씩 짝을 지어 다니는 걸 볼 수 있었다.

뒤로 보이는 저 설산과 놀랍게도 그 앞에 자리 잡은 작은 마을, 그리고 그곳에서 멀지 않은 북극해를 헤엄치는 고래들을 만나려고 우리가 이렇게 먼 여행을 했다.

 

돌고래는 별을 세며 유유히 헤엄쳤다. 바닷물은 돌고래 머리께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보드랍게 옆구리를 쓰다듬고 지나가 꼬리쯤에서 다시 만나 잔잔해졌다.  – 구도 나오코 <친구는 바다 냄새> 중에서

 

여행을 하기 반 년 전쯤, 우연히 구도 나오코의 <친구는 바다 냄새>라는 책을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한 권이 됐다.

<친구는 바다 냄새>는 입매가 야무진 은빛 작은 돌고래와 눈빛이 다정한 새까만 커다란 고래의 우정을 다룬 그림이 있는 책이다. 돌고래는 운동선수이고, 고래는 시인인데, 그래서인지 모든 대화가 시 같고 살아 움직인다.

이 책을 처음 알게 된 후 선물할 일이 있거나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이 있을 때 나는 한동안 주저 없이 이 책을 택했다. 하지만 곧 이 책은 절판됐고, 두어 번 알라딘에 품절도서 수급신청을 했는데, 첫 번째엔 책을 구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로는 책을 구할 수 없다는 답만 받았다.

만약 지금도 내가 누군가에게 책을 처음 선물한다면, 주저 없이 선택하고 싶은 책인데 절판되어 아쉬웠던 차에 직접 먼 데서 살고 있는 고래를 만나니 마치 이야기 속 그 고래인 것만 같아 더욱 반가웠고, 가까이 갈 수 없어, 오래 볼 수 없어 더 애가 탔었다.

아이슬랜드

“고래야, 오늘은 뭐 읽고 있어?”

“오늘은 우주학이야.”

고래 집에 놀러 온 돌고래가 묻자 고래는 안경을 벗고 대답했다.

“우주? 나도 알아. 하늘의 넓은 곳이 우주지?”

“그래그래.”

하늘을 좋아하는 돌고래는 달과 별이 닿을 듯이 보여도 사실은 멀리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멀리 있는지, 그것까지는 모르기 때문에 고래에게 물었다.

“고래야. 달은 어느 정도 멀리 있어?”

“그게 말이지.”

고래는 돌고래의 몸 크기를 살펴보고 말했다.

“지구의 크기가 너만 하다면 달은 이 정도쯤.”

고래는 멀찍이서 돌고래를 감싸고 빙글빙글 돌았다.

“그럼, 태양은?”

“으음… 잘 봐.”

고래는 멀리 쑥쑥 헤엄쳐 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조그만 점같이 되자, 봐, 여기쯤이야, 하고 소리쳤다.

“우주는 왜 그렇게 멀까?”

고래가 돌아오자 돌고래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그러자 고래는 책을 보여주며 태양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그, 수, 금, 지… 가 형제 같다지?”

“그래. 모두 태양의 아이야.”

“가장 멀리 있는 별은 어디쯤 있어?”

고래는 또 헤엄쳐 나갔다. 헤엄쳐 가는 점같이 작아졌는데도 고래는 멈추지 않고 쑥쑥 쑥쑥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돌고래는 지구가 된 채 꼼짝 않고 기다렸지만 고래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돌고래 둘레에는 오직 바다뿐. 고요한 바다에 오후의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다.

고래는 해가 뉘엿뉘엿 떨어질 때에야 돌아왔다.

“우주는 외로웠어.”

라고 말했다.      –    구도 나오코 <친구는 바다 냄새> 중

 

고래 두 마리가 함께 헤엄치고 있으면 책에서 읽었던 고래와 돌고래의 대화가 들리는 것 같아서, 둘이 물을 내뿜고 꼬리를 감추고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달빅 아이슬란드

저 멀리에는 꽤 큰 마을이 있다.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풀색 땅이 얼핏 보인다. 우리 눈엔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눈이지만, 에스키모나 그린란드 원주민들에게는 눈을 표현하는 수많은 단어들이 있다고 한다. 그것처럼 세상의 모든 초록 가운데 아이슬란드 그린,이라 할 만한 색이 있다면 노랑이 섞인 듯한 채도가 낮은 풀색이 아닐까 싶다.

이 날은 하늘이 온통 구름으로 뒤덮여있었는데, 운 좋게도 저기 보이는 설산 위로는 구름이 없어서 비록 멀리서지만 그 능선 하나하나가 보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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