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떠날 때 가장 설렌다
따라서 해외여행의 설렘은 대개 공항에서 끝나버린다. 한국 젊은이들의 버킷 리스트에서 틀림없이 한 줄 정도는 차지하고 있을 유럽여행이 특히 그렇다. 열 몇 시간의 비행, 기나긴 탑승수속, 귀에서 윙윙대는 외국어, 제일 늦게 나오는 내 캐리어를 찾아 드디어 공항 밖 공기를 마시는 순간 여행의 신비함은 반쯤 죽게 마련이다.
시차적응이 안되어 졸린 눈을 비비고 숙소로 가는 길은 김포-서울 고속도로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서래마을과 서울역을 반쯤 섞어놓으면 비슷한 모양이 되려나. 바가지 쓴 택시비를 어설픈 외국어로 인해 따지지도 못하고 호텔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의 마음 한편에는 “속았다.”는 기분이 솟구친다. 내 나라 같은 편안함이 오히려 여행자를 실망시킨다. 선진국화의 방향은 결국 한 곳을 향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명동 같은 다운타운, 홍대 같은 골목을 피해 진짜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파리에서 기차를 타고 꼬흐드 쉬 시엘로
툴루즈Toulouse까지 내려와 짐을 푼다. 이국적인 아름다움을 찾기위한 여정의 시작이다. 아쉽게도 아름다운 곳은 가기가 힘들다. 화창한 프랑스 남부의 도시에 짐을 풀고, 다시 기차를 타러 간다. 두량짜리 자그마한 기차가 향하는 곳은 기차 못지않게 작은 마을이다. 꼬흐드 쉬 시엘Cordes sur ciel. 몇 세기 동안의 건물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다.
달타냥이 여기저기 싸우고 다닐 쯤 교회나 마을회관으로 쓰였을 건물이 이 마을의 기차역을 대신하고 있다. 마을까지는 20 분가량 걸어야 한다. 귀찮다면 택시를 부르면 된다. 정찰제 15유로다. 하지만 마을까지의 길에 넓게 펼쳐진 해바라기 밭과 포도밭, 산길을 따라 걷는 것도 좋다.
들판에 홀로 솟아 있는 산봉우리에 빼곡히 들어찬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면, 마을 입구에 도착한 것이다. 해발 291m 정도로 산이라고 부르기에는 민망하지만 기차역부터 걸어온 여행자라면 마을을 돌 힘이 간당간당 할지도 모른다. 다행히 언덕 아래 간단한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맥주를 마셔도 좋고 커피를 마셔도 좋다. 꼬흐드 쉬 시엘의 아름다운 점은 관광지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카페는 마을 사람들의 것이다. 주변의 집에도 마을 사람들이 살고 있다. 에펠탑이나 베르사유 궁전과는 달리 꼬흐드 쉬 시엘은 그저 유럽의 한 마을일 뿐이다. 마을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우리도 마을 주민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질 수 있다. 지나가는 사람들과 아름다운 풍경, 이것이 유럽여행에서 우리가 찾아 헤매던 즐거움이다.
13 세기부터 18세기, 중세부터 르네상스까지
유럽의 건물을 그대로 눈에 담을 수 있다. 종교전쟁이 한창이던 때, 역설적이게도 이 마을은 백성들의 피난처가 되며 온전히 형태를 보존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전 세기의 잔해로 집을 짓고 다음 세기를 살았다. 마을의 외벽, 기둥, 지붕들은 각자 몇 세대의 파괴와 창조를 동시에 지니고 있는 셈이다. 설사 건축에 대한 조예가 없더라도, 오밀조밀 들어선 건물과 돌담 사이에서 우리가 상상하던 유럽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동화같은 분위기와 어여쁨을 느끼는데 많은 것은 필요치 않다. 프랑스에 실제로 존재하는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Les plus beaux villages de France)’ 대회에서 2014년 1등을 받은 곳이다.
관광지에 흔한 표지판도 이곳에서는 드물다
다만 조용한 시골마을의 정취를 보여줄 뿐이다. 역사적 가치나 미학적 해석을 제공하지는 않는다. 전부 아름다운데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식이다. 이러한 프랑스식의 당당함 속에 진짜배기 유럽이 자리를 잡고 있다.
사진 출처 http://cordessurciel.eu/
이런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하세요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