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부스스한 얼굴을 보면서 “이대로도 멋진 걸!”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유달리 잘 보이는 잡티와 기름기가 흐르는 팅팅 부은 얼굴은 참아내기가 힘들 만큼 마음에 들지 않기 일쑤이다.

그러나 비단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막 자고 일어난 얼굴 뿐은 아니다. 살면서 순간순간 불만족스러운 자신의 모습에 실망을 하곤 한다. 어이가 없을 만큼 단순한 실수를 저지를 때나 치매라고 부를 수 있을 만큼의 건망증 때문이라면 오히려 다행이다. 정작 가장 절망스러운 것은 결코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치부와도 같은 연약함이나 부족함이다. 그러한 치부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가면을 뒤집어쓰고 살거나 어울리지도 않는 배역의 연기를 하기도 한다. 또한 열심히 노력해서 연약한 부분을 강하게 만들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한 노력이 바로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다하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가끔은 그런 노력들에 지치는 것 또한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아도 즉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한 구석 자리잡고 있다.

몇 년 전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는 CCM이 대중적인 인기를 얻으면서 사랑받았던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사랑받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라는 말은 큰 위안을 준다. 그러나 그 노래에서 받았던 위안은 치열한 현실 세계로 접어들면서 다시금 자리를 잃고 만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서열 경쟁을 하는 사이에 그야말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나 같은 사람들의 자리는 초라하기 그지 없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 사랑받을 존재라고 이야기해 주기는커녕 존재 자체의 가치마저 의심하게 만드는 게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가난한 서민층의 삶이다.

그런데 이 책,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는 어쩌면 치열한 서열 경쟁에서 도태되었다고 볼 수 있는 ‘정신장애인’의 공동체(베델의 집)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의 노동력으로 자본을 창출할 수 없다는 점에서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실은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더 건강해져야 하기 때문에 차마 들을 가치도 없을 것 같은 ‘정신장애인’의 이야기는 내가 내팽겨치고 싶은 내면 안의 연약함과 같은 이야기였다. 그들과 나의 차이점은 단지 내가 스스로의 연약함을 부끄러워하는 것과는 달리 그들은 자신의 연약함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베델의 집’의 표어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기, 포기하는 것이 중요하다, 편견과 차별 대환영, 결코 규탄하지 않습니다, 고생 되찾기, 약함을 그대로’ 이다. 연약함을 인정하면 성장하지 못할 거라는 우려와는 다르게 이들의 공동체는 건강하다.

 

 “그대로도 괜찮다는 것은 결코 그 사람을 내버려둔다거나 돌보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사람을 그냥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며, 또한 그 사람의 문제나 말썽거리, 사귀기 힘든 그 사람의 성격 등을 남김없이 모두 받아들인다는 의미다.(226p)”

 

“문제를 막고 말썽의 싹을 잘라버리지” 않기 때문에 발생하는 다양성과 복잡함까지도 함께 하겠다는 의미이다.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한 사람이라도 소외당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베델의 집’에서 일군 공동체의 모습이야말로 있는 그대로 인정받는 공동체의 모습이다. 연약함은 연약함 자체일 뿐 우월한 것도 열등한 것도 아니다. 충분히 노력해도 변하지 않는 모습에 절망하고 자책하기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할 때에 오히려 삶을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다. 정신분열증 때문에 한평생 약을 먹어야 해도 의사소통 훈련을 받아야 할 만큼 타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아도 심지어는 동료를 폭행해도 그대로 둘 수 있다.

삶은 그렇게 “문제투성이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모든 문제를 일상으로 받아들일 때 문제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아닌 일상의 한 부분이 될 뿐이다.

당신도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강요하는 경쟁적인 ‘노력’에 지쳐있다면 이 책,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를 통해서 위로를 받아도 좋을 일이다. ‘베델의 집’에 살고 있는 정신장애인들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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