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따 저녁에 맥주 마실 사람들은 미리 말해줘.”
대낮부터 이미 반쯤 눈이 풀려있는 이 사내는 파키스탄 라호르의 리갈 인터넷인 리셉션 직원이다. 파키스탄에서는 이슬람 율법에 따라 주류 판매가 엄격히 금지되어 있지만 시원한 맥주 한 모금이 고픈 배낭여행자들을 위해 이 사내가 매일 저녁 발품을 팔아주고 있었다. 그가 어디서 맥주를 구해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 중간에서 약간의 수수료를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그는 언제나 청바지에 티셔츠를 멋스럽게 차려입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했다. 금요일이면 순백의 이슬람 드레스로 갈아입고 새삼 알라의 가르침에 순종하려는 듯 보였지만, 아침부터 잠들기 직전까지 늘 하시시에 취해있는 그는 내가 생각한 무슬림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리갈 인터넷인에 머물고 있는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괴상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이곳의 투숙객들은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숙소 안에서 보냈다. 딱히 관광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세끼 식사도 숙소 안에서 해결하는 듯했다. 라호르에 도착한 후 며칠 동안은 이곳저곳을 쏘다니느라 바빠 관심을 갖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이들의 일과에 대해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이 숙소 옥상에는 골방이 하나 있었는데, 하루 종일 숙소에 처박혀 뭘 하는 것일까 궁금했던 사람들은 바로 이 방에 모여 주구장창 하시시를 피워대고 있었다. 리셉션맨이 이 아편굴의 대장이었다. 그리고 늘 대장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그의 여자친구 카탈리나는 이 아편굴의 안주인으로 라호르에 장기체류 중이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금발을 풀어헤치고 있어서 늘 제정신이 아닌 여자처럼 보였다.
우리가 파자마맨이라고 부르던 미국 사내는 낮이나 밤이나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그는 정전이 될 때마다 촛불을 들고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놀래키곤 했다. 그 모습이 꼭 몽유병에 걸린 공포영화 주인공 같았다. 나를 마주칠 때마다 특유의 가는 목소리로
“헤이. 지혜. 저 아프가니스타니 정말 아름답게 생기지 않았니?”
라며 감탄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파자마맨은 정말 아편굴 대장을 좋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와 친구는 공식적(?)으로 아편굴의 멤버는 아니었고, 가끔씩 올라가서 그들의 헛소리를 들어주는 구경꾼이었다. 뉴욕에서 유학 중인 대만 청년 개리 역시 우리와 같은 구경꾼이었는데, 그의 첫인상은 전형적인 샌님이었다.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도 살면서 공부 이외에는 해본 게 별로 없는 것 같았다. 나는 공붓벌레의 일탈 치고 파키스탄은 꽤나 터프한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머지않아 ‘터프한 샌님’은 그에 대한 과소평가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숙소 옥상에서 열리는 수피 뮤직 공연이 있었던 날이었다. 우리는 숙소 옥상에 모두 모여 수피 뮤직의 반복되는 리듬에 조금씩 취해가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볍게 발을 구르거나 손뼉을 치던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었다. 모두들 조금씩 몸을 흔들고 있는 와중에도 가만히 이를 지켜보고만 있던 개리가 갑자기 무언가 결심한 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빠르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개리의 모습에 놀란 우리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모두가 그를 둘러싸고 원을 그리고 서서 그의 이름을 연달아 외쳤다.
“개리! 개리! 개리! 개리!”
폭발한 개리의 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고, 무아지경의 그는 신을 받아들인 박수무당 같아 보였다. 격렬한 그의 도리도리 댄스를 지켜보던 우리들은 하나 둘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박수를 칠 수도, 그의 이름을 외칠 수도 없었다. 가만히 서서 입을 떡 벌린 채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
‘누군가 좀 말려봐.’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언의 메시지가 오갔다. 용기를 낸 프랑스 빡빡머리가 그를 뒤에서 껴안아 제압했지만 개리의 에너지를 억누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엔 두 남자가 바닥에 넘어져 나뒹굴며 상황은 종결되었다. 개리는 샌님이 아니었다.
가장 미스터리했던 그녀가 등장한 것은 숙소 옥상에 널브러져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어깨까지 오는 생머리, 몸에 촥 달라붙는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은 모습이 육감적인 그녀는 브루나이 사람이었는데 나와 친구가 한국 사람임을 확인하고는 엄마가 송승헌을 좋아해서 한국 드라마는 빠짐없이 챙겨본다며 호들갑을 떨었다. 말투하며 손짓하며 여간 요란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뭔가 이상했다. 어쩐지 여자가 아닌 것 같았다.
육감적이긴 했지만 ‘기골이 장대하다’는 표현이 딱 어울릴 정도로 덩치가 컸고, 얼굴도 어딘가 모르게 중성적인 느낌을 주었다. 여자다 남자다 우리들끼리 한바탕 논쟁이 벌어졌다. 그날 저녁 그녀가 남자 도미토리로 들어와 티셔츠에 트렁크 팬티만 입고 잤다는 제보로 논쟁은 마무리되는 듯했지만, 그것으로 그녀의 성별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여자 도미토리가 꽉 찬 경우 더러 이런 일이 있기도 했고, 그녀가 짧은 반바지를 입고 잘 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 논쟁은 체크인을 할 때 확인한 그녀의 여권 사진이 남자였다는 리셉션맨의 증언과 함께 종결되었다. 어쨌든 그녀는 여자로 보이길 원하고 있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언니처럼 대했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라호르에 이틀 정도 머무르고 일찌감치 꿈에 그리던 훈자에서 신선놀음 중이어야 했지만, 우리는 ‘하루만 더, 하루만 더’하며 떠날 날을 미뤄오고 있었다.
라호르의 여름은 끔찍하게 더웠다. 한낮의 기온은 40도를 훨씬 웃돌았다. 밖에 나가면 그늘에 있어도 뜨거운 공기에 얼굴이 벌겋게 익었다. 하루에 몇 번씩 샤워를 해도 금세 온몸이 땀으로 젖어버렸다. 샤워를 하고 난 후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내지 않은 채로 방 천장에 붙은 선풍기 바람을 쐬고 있으면 잠시나마 시원했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정전이 되었기 때문에 선풍기는 사실상 무용지물이었다. 덜그럭 거리며 돌아가던 선풍기 마저도 멈춰버리면 천장이 내뿜는 열기로 방 안은 그야말로 불지옥으로 변했다. 곳곳에서 신음소리가 들려오고, 욕이 터져나오고, 몇 분간 간절한 마음으로 전기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다가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슬리퍼를 질질 끌고 좀비처럼 밖으로 나가곤 했다.
목적지는 숙소 건너편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였는데, 우리는 이곳을 ‘천국’이라고 불렀다. 이 천국에서 보통의 과일 맛보다 훨씬 진한 맛의 아이스크림과 신선한 생과일주스 따위를 맛볼 수 있었다. 그 불구덩이 속에서는 고무 맛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맛있다고 느꼈을 테지만. 무엇보다도 이곳에는 선풍기가 만들어내는 미지근한 바람 말고 피부에 차갑게 와 닿는 ‘에어컨’ 바람이 있었다. 온몸으로 찬 바람을 맞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이곳은 불지옥 라호르에서의 유일한 구원이었다.
이 천국에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주문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홀을 가득히 채운 테이블에 앉아있는 사람도 온통 남자뿐이라는 사실이었다. 가게 안은 어린아이부터 허연 수염이 덥수룩한 할아버지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남자들로 늘 북적였다.
“파키스탄 남자들 아이스크림 진짜 좋아하나 봐.”
“아이스크림을 남자만 좋아하겠어?”
“그럼 여자들은 어디서 먹고 있는 걸까? 집에서?”
“여자들이 가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따로 있을 수도 있어.”
한 저돌적인 사내가 자신이 먹던 아이스크림 컵을 내밀며 윙크를 날린 적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우리를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했다.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 여자가 신기한 것인지, 아니면 그냥 외국인들이 신기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몇 번이나 이곳을 드나들고 나서야 일제히 우리를 향하던 그들의 까만 눈동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이곳에는 여자를 포함한 가족 손님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었던 것이다.
아이스크림조차 남녀가 따로 앉아 먹는 것을 보면 여느 이슬람 사회처럼 엄격하고 보수적이지만 대학교 캠퍼스는 여지없이 특유의 자유로움과 낭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우리는 가끔씩 펀잡 대학교 캠퍼스를 어슬렁거리다가 카페테리아에 들러 트로피코 사과 주스를 사 먹고 돌아오곤 했다. 라호르 어디에나 파는 주스를 사 먹기 위해 굳이 대학교 캠퍼스까지 갔던 것은 아니고. 파자마맨의 표현을 빌어 말하자면 ‘고져스한’ 파키스탄 여대생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했던 무슬림 여성들과는 다르게 펀잡 대학교의 여대생들은 아주 적극적이고 사교적이었다. 부르카나 차도르는커녕 히잡조차 두르지 않은 여자들도 많았다. 화려하게 차려입은 그녀들은 헬로 하며 먼저 다가와 척척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곤 했다.
해질 무렵의 바르샤히 모스크에서 흘러나오는 아잔을 듣고 있는 것이 좋았고, 동네 곳곳을 뒤지며 하루하루 소소한 일상들을 쌓아가는 재미도 있었지만, 찜통 속에서 불더위와 씨름하면서도 라호르를 떠나지 못하고 있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늘 수피나이트 갈 거지?”
“수피나이트? 그게 뭔데?”
“가보면 알아. 갈 사람들은 이따 늦지 말고 숙소에 모여있어.”
리셉션맨은 더 이상의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수피 나이트는 리갈 인터넷인의 정기 이벤트였다. 매주 목요일이면 리갈 인터넷인의 주인인 말릭 아저씨가 원하는 사람들을 모아 ‘수피나이트’가 열리는 곳으로 데려간다고 했다.
“파키스탄 무슬림들이 신과 만나는 방법이야. 조금 유별나긴 하지만.”
개리가 땀이 송골송골 맺힌 콧등 위의 안경 매무새를 고치며 말했다.
“헤이. 지혜. 그들이 진짜 알라와 만나는지 아닌지는 모르겠고. 그건 그냥 파티야. 파키스타니 트랜스 파티.”
파자마맨이 빙글거렸다.
누군가는 종교의식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트랜스 파티라고 하는 수피나이트. 신을 만나는 파티라니. 개리와 파자마맨의 짧은 설명에 수피나이트에 대한 나의 호기심은 더욱 커졌다. 웬만하면 가방을 가져가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에 카메라 하나만 달랑 들고 오토릭샤에 몸을 실었다. 브루나이 언니가 내 옆으로 육중한 엉덩이를 들이밀었다.
“뭐야, 화장했어?”
“응. 어쩐지 주말에 클럽 같은 곳에 놀러 가는 기분이 들어서. 호호호.”
그녀의 말대로 오래간만에 여럿이 함께 모여 밤에 외출을 하는 것은 꽤나 설레는 일이었다. 라호르의 치안을 생각했을 때 밤에 돌아다니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에, 밤늦게 밖으로 나오는 일이 좀처럼 없었기 때문이다. 자동차와 릭샤, 자전거와 오토바이가 뒤엉킨 혼잡스러운 도로를 헤집으며 얼마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시 차 한잔 마시면서 기다리자.”
우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일행들을 기다리기 위해 한 노천 식당에서 차를 주문했다.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수피나이트를 위해 이곳을 찾은 사람들 같았다. 열기가 한풀 꺾인 밤공기를 들이마시며 반짝이는 조명들에 정신이 뺏기고 있으니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하는 것이 느껴졌다.
“꺅!”
카탈리나의 비명소리였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던 한 남자가 카탈리나의 엉덩이를 치고 지나간 것이다. 말릭 아저씨는 재빠르게 그의 뒷덜미를 낚아채더니 가차 없이 뺨을 후려갈겼다. 그는 손가락질을 하며 한바탕 욕을 쏟아붓고 나서는 말했다.
“이런 녀석에게는 매가 답이야. 다들 조심해. 이 안에 들어가면 현지인 여자는 단 한 명도 없어. 너희 빼고는 다 남자라고.”
온몸에 긴장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어딘가 겁먹은듯한 표정을 보이고 싶지 않아 애써 가슴을 활짝 펴고 휘적휘적 걸어보았지만, 자꾸만 어깨가 움츠러 들었다.
회색의 낮은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 안에 대강 훑어보아도 백 명은 훨씬 넘어 보이는 사람들이 빼곡하게 들어앉아 있었다. 어둡고 복잡해서 원래 무엇을 위한 공간인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없었다. 절대 ‘알라’를 만나는 장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다들 저 안으로 들어가서 모여 앉아 있어.”
리셉션맨이 우리를 인도했다. 별도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외국인들은 따로 모여 앉는 것이 이곳의 룰인 듯했다. 아저씨 말대로 현지인 여자는 단 한 명도 찾아볼 수 없었다. 파키스탄 남자들의 새까만 눈동자가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우리들을 샅샅이 훑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일행 중에 남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눈빛이 너무 날카로워서 한껏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불그스름한 조명 아래 뭉게뭉게 피어오르고 있는 뿌연 연기가 보였다. 사람들이 피워대는 하시시 연기였다. 아니나 다를까 리갈 아편굴 터줏대감들은 이미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한창 작업(?) 중이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사람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구호 같은 것을 외쳐대며 흥분해 있었다.
커다란 북을 목에 둘러맨 세 명의 남자가 등장했다. 북의 무게를 충분히 지탱할 수 있을만한 커다란 덩치들이었다. 화려한 색깔의 의상이 먼저 눈을 사로잡았다. 제멋대로 자라난 검은 머리카락과 얼굴의 반을 뒤덮은 수염 때문에 표정을 읽을 수 없었다. 대여섯 명의 남자가 연주자들 주변을 둘러싸고 섰다. 그들 역시 하나같이 현란한 차림새였는데, 게 중에는 갓 콧수염이 자라기 시작한 앳된 소년처럼 보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의 등장과 함께 공간의 온도가 순식간에 달아올랐지만, 나는 오히려 미묘한 한기를 느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낯선 무언가가 그 공간 안을 펄떡이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인데도 그 분위기가 버거웠다. 나는 아마 조금 무서웠는지도 모른다.
세 남자는 일제히 북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북의 양쪽은 서로 다른 소리를 내며 꽤나 빠른 장단을 만들어냈다. 의외의 날카로운 북소리는 한조각도 공중으로 흩어지지 않은 채 고스란히 전해져 내 고막을 두드렸다. 연주자를 둘러싸고 있던 사람들은 장단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도 하고, 펄쩍 뛰기도 하고, 어깨를 덩실거리기도 했다. 제각기 다른 움직임이었지만 그들의 춤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얼마 전 옥상에서 개리가 선보였던 ‘도리도리 댄스’가 그것이었다. 역시나 옆에 앉아있던 개리는 흥에 겨운 듯 서서히 고개를 젓기 시작했다.
“개리. 네가 전에 옥상에서 췄던 춤이 이거였구나?”
그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는 다시 도리도리 댄스에 열중했다. 공연을 지켜보던 사람들도 자신만의 박자로, 자신만의 움직임으로 북의 장단에 몸을 싣고 있었다.
북의 장단이 빨라짐에 따라 댄서들의 도리도리 속도 역시 점점 빨라졌다. 그 속도가 어느 정도냐 하면 동영상을 3배속쯤으로 재생하고 있는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바라보고 있으면 멀미가 나는 것은 물론이고 두개골 안에서 뇌가 출렁거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멈춰있는 채로 보고만 있으면 현기증이 났기 때문에 차라리 함께 돌리는 편이 나았다. 내 몸이 견딜 수 있는 속도로 도리도리를 하다 보면 신기하게도 오히려 어지러움이 사그라들었다. 두려움도 함께 사라졌다.
저들이 정말 알라와 만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확실한 트랜스 상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맨 정신의 육체는 절대로 견뎌낼 수 없는 움직임이었기 때문이다. 마치 접신 상태의 무속인들이 작두 위에 맨발로 올라간다거나, 서늘 퍼런 칼날을 혀에 갖다 대거나 하는 행위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각자의 스타일대로 하시시를 말아 옆 사람들과 나누어 피우고 있었다.
“하시시 스모커들의 정기 흡연 모임이 따로 없네.”
매캐한 연기 때문에 연신 손부채를 부쳐대는 내게 파자마맨이 하시시를 건네며 특유의 과장된 눈빛을 보냈다. 나는 그것을 받아 오른쪽에 앉아있던 개리에게 건넸다. 개리는 잠시 고민하다가 이내 집어 물더니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하시시는커녕 담배도 피우지 않던 그는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켁켁거렸다.
“괜찮아? 너 원래 이거 안 피우잖아.”
나의 염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보란 듯이 더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고는 다시 내뿜었다.
“어때?”
“글쎄. 잘 모르겠어.”
그렇게 개리는 종이가 타들어가 거의 남아있지 않을 때까지 손에서 놓지 않고 모두 피워버렸다.
“헤이. 개리! 그걸 혼자 다 피운 거야? 하시시는 나눔이고, 나눔은 사랑이라고!”
개리의 폭주를 지켜보던 파자마맨이 빽 소리를 질렀다. 개리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눈을 감은 채 도리도리에 열중했다. 개리 역시 무의식 속에서 무언가와 만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들의 공연은 두 시간 넘게 계속되었다. 가장 커다란 체구의 연주자가 북을 치며 제자리에서 빙빙 돌기 시작했다. 그의 연주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원심력 때문에 북은 그의 어깨 높이만큼 떠올랐다. 이대로 하늘로 날아가 버리는 것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북장단은 더욱 잘게 쪼개지고 쪼개졌다. 분위기는 점점 고조되었다. 사람들은 짐승의 울음소리를 내며 환호했다.
그의 연주가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이 느껴졌다. 꼬리뼈부터 정수리까지 전류가 흐르고 있는 것 같았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당분간은 라호르를 떠날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공연이 끝나고 좁은 출구 앞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몰렸다. 애초에 질서 정연한 모습을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미처 트랜스 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더 엉망진창이었다. 여전히 풀려있는 눈을 껌뻑이며 엉거주춤하게 서있는 개리의 팔을 잡아끌어 인파 속을 헤집고 들어갔다.
출구의 계단 양쪽으로 남자들이 줄지어 서있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레드 카펫을 밟는 탑스타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계단을 내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서있었다. 그리 넓지 않은 계단을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버젓이 공간을 차지하고 서있는 그들 때문에 계단 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저 사람들 뭐야? 왜 저러고 서있는 거야?”
“자, 지금부터는 다가오는 손들을 이렇게 내리치며 걸어야 해. 준비됐지?”
리셉션맨이 두 팔을 허우적거리며 걷는 시늉을 해 보였다.
“아니, 그러니까, 네 말은…”
“자, 가자!”
계단에 진입하자마자 서있던 사람들은 이곳저곳에서 손을 뻗어오기 시작했다. 반가운 마음에 환호하며 손을 흔들어대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고, 연예인 옷자락이라도 한번 만져보겠다는 그런 간절한 마음 비슷한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노골적으로 지나가는 외국인 여자의 몸을 ‘만지기 위해’ 손을 뻗쳐대고 있었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 손이 누구의 손인지 파악할 수조차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그 수십 초 정도의 시간 동안 이곳저곳에서 뻗쳐오는 그들의 손을 막느라 몸부림을 쳐대며, 있는 욕 없는 욕을 사정없이 허공에 외쳐대며, 겨우겨우 지옥의 계단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 사람들 진짜 미친 거 아니야?”
씩씩거리고 있는 나를 달래며 리셉션맨이 말했다.
“이곳에 오면 외국인 여자들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고 온 거야. 정말 유감이야. 내가 대신 사과할게.”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새도 없이 공연이 끝나고 빠져나온 사람들, 먹거리를 가득 실은 리어카들, 대기하고 있던 오토릭샤들로 길거리는 난장판이었다. 우리들이 잠시 정신을 놓은 채로 그 장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사이 개리가 후다닥 뛰어가더니 대기하고 있던 오토릭샤를 잡아타고 홀랑 떠나버렸다.
“뭐야, 저 녀석? 아까부터 화장실 가고 싶다고 하더니 그렇게 급했나?”
“아까 그걸 혼자 다 피웠으니 아마 제정신이 아닐 거야.”
나머지 일행들과 그의 뒤를 따라 바로 오토릭샤를 잡아 탔다.
“여러모로 충격적인 밤이다. 그치?”
“그러니까 말이야. 아까 계단 내려올 때 어떤 미친놈이 내 엉덩이를 쓱 문질렀다니까!”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우리들은 한참 동안이나 침을 튀겨가며 각자의 감상을 늘어놓기에 바빴다. 수피즘이 신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추구하는 이슬람의 신비주의 사상이라는데, 방금 전의 그 장면이 과연 ‘알라가 보시기에 기쁜’ 장면인지는 여전히 의문이었다. 신이 인간에게 공연 관람 질서를 요구하지는 않겠지만, 성추행을 그러려니 여길 리는 없으니까.
동네에 도착하고, 숙소 앞 단골 케밥 집에서 치킨 케밥을 하나씩 사 먹었다. 거의 네 시간 가까이 아무것도 먹지 못했던 우리들은 허겁지겁 케밥을 먹어치우고는 그제야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숙소 건물의 입구에 나있는 좁은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위에서 내려오고 있는 개리와 마주쳤다. 그의 손에는 검정 비닐봉지가 들려있었다.
“이 시간에 어디 가?”
“어. 어… 그게… 요 앞에 잠깐 나가. 먼저 올라가!”
그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리고 그는 후다닥 계단을 뛰어 내려가 사라졌다. 개리의 알 수 없는 행동에 당황한 우리는 몇 초간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근데… 이 냄새… 설마…”
“에이… 설마… 화장실 문 열려 있는 거 아냐?”
화장실 양동이에 개리의 바지가 담겨 있었다는 증언이 추가되며, 그날 밤 개리에게 일어난 일을 대강 추리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마음속으로’만 개리를 위로할 뿐이었다.
그 날의 사건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개리는 뉴욕으로 돌아간다며 라호르를 떠났다. 나와 친구는 그 이후로 세 차례나 더 수피 나이트를 찾은 후에야 겨우 훈자로 떠났고, 훈자에서 몇 주간 신선놀음을 하다 다시 라호르로 돌아왔을 때, 리셉션맨의 여자친구는 일본 여자로 바뀌어 있었다. 그 일본 여자가 리갈 인터넷인에 체크인하자마자 둘은 눈이 맞았고, 이를 보다 못한 카탈리나는 분노와 절망 속에 유유히 라호르를 떠났다는 슬픈 후일담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수피댄스’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년이 지난 후였다. 나는 터키를 여행 중이었는데 이스탄불에서 관광객들을 위한 수피댄스 공연이 열리고 있는 장소를 우연히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댄서들은 하얀 드레스에 하얀 모자를 쓰고, 양손의 손바닥이 하늘을 바라보도록 팔을 뻗고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우아하게 제자리에서 돌고 있었다. 그들이 제자리에서 뱅뱅 돌며 하룻밤, 아니 이틀 밤을 지새워도 라호르 수피나이트의 주인공들이 그랬던 것만큼 신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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