켜켜이 시간을 쌓은 도시, 알레포
‘시간’이라는 것을 도시의 모습으로 만들면 아마 알레포의 모습과 비슷할 것이다. 강의 끝자락에 만들어진 삼각주처럼 시간과 함께 흘러간 모든 것들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곳. 알레포의 시간은 박제된 채로 유리관 안에 모셔져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 구석구석에, 돌바닥 사이사이에 덕지덕지 묻어있다. 그리고 시간 속에, 아주 오래된 것들과 여전히 뒤엉켜 살아가는 알레포의 사람들이 있다. ‘오래되었다’라는 말은 여전히 부족하다. 알레포의 시간을 설명하기에는 말이다.
하지만 내가 기억하는 ‘시간의 도시 알레포’는 이제 없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흩어지던 길바닥의 돌들은 부서졌고, 까맣게 기름때가 탄 담벼락은 무너졌다. 도시는 파괴되었고,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사람들은 살기 위해 앞다투어 도시를 떠났다. 숨을 들이마시면 느껴지던 쌓인 시간의 냄새들이 완전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5년이 지났지만 비극은 끝날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타는 태양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시리아의 시간 속을 걷고 있던 내 모습이 점차 희미해진다. 조급한 마음에 시리아에서의 시간을 더듬어 글을 써보려 몇 번이나 결심하지만 번번이 키보드에서 손을 내려놓게 된다. 그 시간을 떠올리며 ‘참 좋았지’해도 되는 것일까 싶기 때문이다. 죄책감이라든가, 깊은 슬픔이라든가 하는 거창한 감정은 아니다. 아마 조금 민망하다는 것이 가장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여전히 낯선 이방인, 행운의 여행자
나는 여러모로 제법 운이 좋았다. 중국 정부가 개인의 티베트 자유 여행을 금지하기 직전에 티베트를 여행했고, 인도 델리의 파키스탄 영사관에서 비자 신청을 하면 바로 다음날 비자를 받을 수 있던 시기에 파키스탄을 여행했다. 내가 시리아를 찾았던 해는 그곳에서 내전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다. 많은 배낭여행자들이 시리아와 시리아 사람들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지 입을 모아 이야기하던 그런 때였다. 이런 것들도 행운이라면 행운인 것일까.
호주 퍼스를 여행하던 중, 한 펍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된 호주 친구가 ‘여기까지 와서 놀고먹고 있는 네가 참 부럽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묘하게 기분이 상했던 적이 있었다. 별생각 없이 떠난 여행이었고 대단한 목표나 방향 따위를 가졌던 것도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그러지 말자고, 여행하며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면, 알게 된다면, 여행지의 풍경에, 그곳의 사람들에게 익숙해지게 된다면, 그제야 그것을 행운으로나 여기자고. 그런 마음으로 여행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무언가 의미를 만들어 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었나 보다. 강박 같은 것이었다. 그 친구의 한마디는 나의 머리를 뎅 울렸다. 잘 사는 나라를 여행하든, 못 사는 나라를 여행하든, 현지의 사람들에게 비치는 나는 우선 멀리 남의 나라까지 와 ‘놀고먹고 있는 부러운 사람’이라는 것, 그리고 여행자가 갖는 위치는 바로 그곳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여행자가 낯선 사람인 이유는 단지 다른 나라에서 왔기 때문이 아니라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마음가짐이 시작부터 끝까지 현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의 시간과 생활의 시간은 쉽게 뒤섞일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내가 그들에 대해 아는 것은 정말 아는 것이 아니다. 7년 전 인도 다람살라에서 만난 티베트 친구가 있었다. 그는 티베트에서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망명한 사람이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시며 틈만 나면 술집에서 인도 사람들과 싸우곤 했다. 이러려고 목숨 걸고 인도까지 왔냐고 안타까움을 드러내는 나에게 버럭 화를 내며 그 친구가 했던 말을,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네가 뭘 알아?”
그래. 도대체 내가 뭘 안단 말인가. 나는 그 이후로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코소보에서 만난 한 한국인 여행자가 코소보 친구들에게 너는 세르비아 사람이냐, 알바니아 사람이냐, 어쩌고 저쩌고 물어대는 것을 듣고 얼굴이 화끈거렸던 것도, “나는 세르비아 사람도 아니고, 알바니아 사람도 아니고, 코소보 사람이야.”라는 코소보 친구의 대답에 속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낯선 것들을 마주한다는 것은 원래 불편한 경험이다. 그리고 여행이란 낯선 것들과 마주하고, 싸우고, 결국엔 화해하는 과정이 아닐까? 나는 좋은 것에 날름 마음을 몽땅 줘버리고,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늘 서성이고, 그리움에 묻혀 있기 일쑤인 사람이다. 시리아는 나에게 좋은 것이다. 그래서 시리아를 떠올리며 꽤나 복잡한 감정에 사로잡혀서 오랜 시간 고민했는데, 그 결론은 ‘끝까지 담담하고 싶다’이다. 화해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낯설게, 어색하게, 조금 멀리 떨어져 있고 싶다. 그래서 이 민망한 마음을 그냥 끝까지 가지고 가면서, 그래도 담담하게, 그렇게 시리아를 떠올리고 싶다.
시리아 알레포, 기억 속의 도시
알레포에서는 밤마다 잠을 설쳤다. 꼬박 밤을 새우게 되는 날에는 창 밖으로 알레포 구시가지의 검은 실루엣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곤 했다. 나란히 선 성냥갑 같은 빌딩 몇 채를 제외하고는 고만고만한 높이의 건물들이 만들어내는 스카이라인이 제법 지평선 같았다. 그다지 근사한 풍경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것은 알레포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되었다.
아침을 맞고 나서야 몇 시간 눈을 붙이고는 비몽사몽 한 상태로 밖으로 나와 해바라기씨를 한 봉지 샀다. 해바라기씨를 까먹다 보면 오로지 입술과 앞니와 혀의 감각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된다. 그 손톱 크기의 반의 반도 되지 않는 해바라기씨를 입 안에 넣는 일에만 오로지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입에 들어오는 것이 거의 없다 싶을 정도로 손톱으로 무의미한 씨름을 하던 나에게 2초에 한알씩 해바라기씨를 까먹을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준 것은 터키 사람들이었다. 이 방법을 터득하고는 해바라기씨의 맛이 아니라 해바라기씨를 까먹는 행위 자체에 어느덧 중독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조막만 한 야자수 그늘 아래 자리를 잡고 앉아서 봉지 안에 든 해바라기씨를 한톨도 남기지 않고 전부 까먹어 버렸다. 과장이 아니라 그러고 나면 정말 어떤 성취감 같은 것을 느꼈다.
해바라기씨 한 봉지를 정복하고 더위에 저항하려는 것을 포기한 나는 공기 중에 몸을 맡기고 그저 걸었다. 시리아 사람들이 내 곁을 스치며 내뱉는 ‘재키 찬’, ‘칭챙총’ 등의 말들은 이제 ‘헬로’와 같은 인사말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조차도 조용히 ‘칭챙총’이라고 읊조리고 지나갈 정도였으니. 가끔씩 ‘소서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당시에 중동에서 ‘주몽’ 열풍이 불고 있었다) 그들에겐 나, 재키 찬, 소서노 모두 다 똑같이 찢어진 눈을 가진 사람들.
그리운 커피 향, 올라비 카페
커피 냄새가 흘러나오는 카페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가게 안을 잠시 들여다보는데 안에서 일하고 있던 점원이 냅다 달려 나왔다.
“헬로. 헬로. 들어와. 들어와.”
나는 시리아 사람들이 마시는 터키쉬 커피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터키를 여행했을 때도 마시지 않았던 터키쉬 커피를 시리아 사람들은 자꾸만 내게 건네곤 했다. 차라리 차를 준다면 즐겁게 마실 텐데 터키쉬 커피는 내게 너무 썼고, 무엇보다 좀 홀짝이다 보면 커피가루가 입 안에 흘러 들어와 마시기에 영 불편했다. 하지만 내가 맡았던 그 냄새는 내가 기억하는 ‘그리운 그 커피’의 냄새였고, 카페 안에 들어가니 찌든 때가 꼬질꼬질 탄 ‘그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었다. 아아, 커피다!
“아이스 카페 라테. 가능해요?”
자주색 유니폼까지 맞춰 입은 직원들은 아주 자신 있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일제히 움직였다. 풍겨오는 향기를 통해 이 집 커피가 보통의 맛은 아닐 거라고 확신했다. 가게 안에는 앉을자리가 마땅치 않았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커피콩을 사러 오거나 테이크아웃을 해가는 사람들이었다. 좁아터진 공간 안에 기어코 꾸겨앉아서 커피를 기다렸다. 너무 연약해서 손으로 집으면 그대로 쭈그러져 버리는 반투명의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 나온 ‘아이스 카페 라테’는 내가 기대한 만큼 차갑지 않았지만 그 맛은 환상적이었다.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이고는 그 환상적인 커피를 아끼고 아껴 한 모금씩 마셨다.
올라비 카페. 그 날 이후로 매일같이 아이스 카페 라테를 마시기 위해 올라비 카페를 찾았다. 몇 시간이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그들과 수다를 떨었다. 그리고 올라비 카페의 친구들은 알레포를 떠올리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되었다.
이제는 파괴되어 버린 시라아 알레포 여행에 대한 단상 – 그래도 담담하게 1편
출처 : roundyround 지구는 둥그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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