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http://rawlings.com/
흔히들 포수를 ‘안방마님’이라고 말한다. 그 표현에서 우리는 투수를 다독이며 게임을 풀어 나가는 <H2>의 노다 아츠시나 <공포의 외인구단>의 백두산같은 듬직한 캐릭터를 떠올린다.
그래서일까? 포수라는 포지션은 눈에 보이는 통계를 뛰어 넘어, 게임 전체를 좌우할만한 지배력을 가진다고들 한다. 과연 그들의 당당한 풍채 뒤에는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숨어 있는 것일까. 이러한 생각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칼럼을 가져왔다. 반박은 그 다음이다.
- 2013년 11월 16일 fangraphs.com에 올라온 칼럼입니다. 본문 내용을 번역하여 요약 했습니다.
야디에르 몰리나의 가치를 찾아서
2013년의 내셔널리그에서 공식적인 MVP는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준 앤드류 맥커친이었다. 그가 MVP 수상자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얘기하지만, 투표의 내용은 몇가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먼저, 폴 골드슈미트는 1위표를 하나도 획득하지 못했는데 그는 전체 시즌에서 찬스에 매우 뛰어난 선수였다(clutch). 두번째로, 두 장의 1위 표가 야디에르 몰리나에게 갔는데 이는 모두 세인트루이스의 기자들에게서 나온 것이다. 야디에르 몰리나에게 1위 표를 던진 기자 중 하나는 맷 카펜터를 2위로 뽑았는데 이것이 단순한 편파에서 나온 것이라 보여진다. 만약 당신이 한 선수에게 표를 던진 유일한 사람인데, 그 선수가 당신의 hometown team의 소속이며, 다른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선수에게 표를 던진다면, 이는 확실히 꽤나 의심스러운 일이다.
그 기자들이 잘못된 과정을 따랐다 할지라도 그들이 올바른 답을 우연히 찾아냈다는 것이다. (역주 : 팬심에 의해 투표를 했음에도 야디에게 한 투표가 제대로 된 결과였음을 말하는 것 같네요). 아니면 최소한, 괜찮은 답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세인트루이스의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도 몰리나를 높게 평가하며, 몰리나는 수치로 측정하기에 어려운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포수는 어려운 포지션이며, 몰리나는 그 중 최고에 속하고 투수 코치진의 전적인 신뢰를 받는 리더이기도 하다. 투수들은 몰리나야말로 야구팀의 심장이며 영혼이라고 말하며, 몰리나의 재능은 숫자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단순한 믿음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몰리나는 훌륭한 타자이고, 내구성도 좋고, 블록킹도 뛰어나다. 기록들은 그가 뛰어난 포구를 하며,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되지 않은 것은 기본적으로 포수리드(game-calling)에서 나타나는 리더십이다. 우리는 리더십에 숫자를 부여하는데 익숙하지 않지만, 필자는 이를 계속해서 시도해 보았다.
왜냐하면 적어도 어떤 단서라도 얻고 싶었기 때문이다. 나는 pitch-framing 연구에 빠져있는데, 이것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때 나는 pitch-framing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완전히 반해 버렸다. (* pitch-framing : 포수가 투수의 공을 포구할때 심판에게 유리한 판정을 받기위해 글러브를 움직이는 행위) 누구나 볼배합(투수가 여러 구종을 섞어 던지게 되는 순서)이 중요하다고 본다. 좋은 볼배합와 나쁜 볼배합 사이에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평판으로 보면 몰리나는 투수들을 훌륭히 다룬다. 나는 이러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몰리나의 기록을 분석해 보았다.
몰리나는 메이저 리그에 2004년에 데뷔했기에 2004-2013년 사이의 기록을 이용해서 분석하기로 했다. 분석 자체는 꽤나 간단하다. 몰리나와 최하 250 타석 이상 같이 호흡을 맞춘 모든 투수들을 조사했다. 몰리나 말고 다른 포수와도 적어도 250 타석 이상을 상대한 투수들로 표본의 풀을 좁혔다. 크리스 카펜터의 예를 들자면, 몰리나와는 약 4400 타석에서 마주했지만 다른 포수와는 약 1100 정도의 타석에서 승부했다. 나는 32명의 투수들의 표본을 기록했고, 이는 결국 몰리나와 함께 했을 때의 결과와 몰리나가 아닌 포수와 함께 했을 때의 결과를 비교하는 일이 되었다.
몰리나와 파트너일 때 투수들은 0.746의 OPS(*OPS : 타자의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친 값)를 기록했다. 몰리나 외의 포수와 파트너일 때 투수들은 0.757의 OPS를 기록했다. 이는 11 point(1푼 1리)만큼의 차이인데 250타석이 아니라 500 타석 이상을 상대했다고 가정하면 이 차이는 15 point(1푼 5리)로 늘어난다. 차이는 있지만 결코 크다고 할 수는 없으며, 이는 아마도 전적으로 몰리나의 프레이밍(포수가 공을 받을 때 미트의 위치를 이동시키면서 스트라이크 존 안으로 들어오게 만드는 기술)에 기인한 차이일 것이다. 투수들을 게임 내에서 가이드 할 때 이정도의 기록들은 그가 확실한 마법사는 아님을 보여준다. 또는 그가 마법사라고 한다면 수많은 다른 포수들도 마법사라는 것이다.
물론 어떤 투수는 몰리나와 함께 할 때 더 좋은 성적을 냈고, 특정 투수는 좀더 나쁜 성적을 거뒀다. 애덤 웨인라이트의 경우, 몰리나와 함께 했을 때 확실히 좀 더 효과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카펜터의 경우는 상당히 '덜' 효과적이었다. 이러한 효과가 상당부분은 BABIP(* 타구에 대한 타율을 계산하는 용어) 때문인걸로 보이긴 하지만 말이다. 우리가 신경 쓰는 것은 전반적인 효과이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몰리나 효과'는 찾지 못했다. 이 조사가 결점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만약 정말 효과가 있다면 어떤 강력한 신호가 나타나야 한다.
아마도 포수리드(game-calling) 역시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필자가 의미하는 것은, 일단 메이저 리그에 올라온 이상 그렇게까지 능력의 편차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나쁜 볼배합은 존재하지만, 빅리그의 포수들은 아마도 그런 배합은 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투수들과 게임전에 미리 맞춰 볼수록 포수는 유사한 접근법에 도달할 것이다. 몰리나는 뭘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는 여태까지 던져왔던 구종과 타자의 모습을 통해 다음에 어떤 구종을 선택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다른 모든 포수들도 알고 있으며, 그들의 생각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투수들은 몰리나의 어떤 뛰어난 점들 때문에 몰리나와 게임을 하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사실 이 조사가 야디에르 몰리나의 가치를 이해하는데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다. 그가 투수진을 관리할 능력이 있다는 숨겨진 가치에 대해 오랫동안 의심해 왔다. 이건 아주 잘못된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를 너무 띄워준 것일지도 모른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수치화된 기록으로 볼 때, 포수 한명이 게임을 좌우할 수 있는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프레이밍을 통해 스트라이크 몇 개를 더 얻어올 수 있긴 하지만,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고 있던 '든든한 안방마님'이 상징하는 효과는 그렇게 시시하지 않았다.
분명 좋고 나쁜 볼배합은 존재한다. 그렇지만 162경기에 달하는 한 시즌을 치르다 보면 결국 평균에 수렴하기 마련이다. 전세계에서 야구를 시작한 꼬마아이들 중에 레귤러 메이저리거가 되는 비율은 0.1%도 채 되지 않는다. 이미 그 분야에서 끝을 달리는 메이저리그 급 선수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일정 레벨 이상의 볼배합을 하기 마련이다. 툴(tool) 하나가 심각하게 모자라다면, 애초에 그 위치까지 올라올 수도 없다.

1996년 Los Angeles Dodgers 포수 Mike Piazza (AP Photo/Lenny Ignelzi, Dodgers blog )
마이크 피아자가 그 좋은 예이다.
메이저리그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포수 중에서도 피아자의 타격 실력은 압도적이다. 도저히 그 비교 대상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에게는 수비를 못하는 반쪽짜리 투수라는 멍에가 씌워져 있다. 그런데 과연 그가 반쪽짜리 선수였을까?
피아자의 그런 이미지는 특히나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하다. 박찬호 선수와의 궁합이 좋지 않아서, 라고 많은 이들이 기억하고 있어서였을 것이다. 박찬호 선수는 피아자가 자신과 사인이 매번 맞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했고 우리는 새벽잠을 깨워가며 보던 다저스 경기에서 피아자의 물어깨를 수없이 탓했다.
그런데 수치로 나타나는 박찬호와 피아자의 궁합은 사뭇 다른 모양새다. 실제 피아자는 박찬호가 호흡을 맞춘 포수중 게임출장 1위(89경기), 소화이닝 2위(385.1이닝)이며, 평균자책점도 3.71로 준수하다. 박찬호의 커리어 통산 평균자책점이 4.36인 점을 생각해 보면 더더욱 그렇다. 물어깨라고 알려진 것과 다르게 박찬호 경기에선 20회 도루허용, 12회 저지로 도루저지율도 0.375이다.
그렇다. 피아자는 수비가 폐급인 선수가 아니였다. 적어도 기본은 해주는 선수였다고 우리의 기억을 정정하고 재평가를 해 주어야 한다. 놀라운 재발견이다.
팬그래프나 베이스볼 레퍼런스에서는 선수의 수비 중심 승리 기여도 (defensive WAR)를 산출하는데 있어 포지션별로 가중치를 부여한다. 다음은 팬그래프의 수비 가중치다.
※ 162경기에 모두 수비했을 시를 가정할 경우
- 포수: +12.5점
- 1루수: -12.5점
- 2루수: +2.5점
- 3루수: +2.5점
- 유격수: +7.5점
- 좌익수: -7.5점
- 중견수: +2.5점
- 우익수: -7.5점
- 지명타자: -17.5점
포수의 수비 가중치를 보자. 무려 12.5점이다. 심지어 유격수-2루수-중견수의 수비가중치를 합친 수치와 같다. 흔히들 센터라인, 센터라인 하면서 키스톤 콤비와 중견수의 수비력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진정한 센터라인의 지배자는 포수다.
다시 생각해보자. 정말로 눈뜨고 못봐줄 정도의 수비를 구사하는 포수라면, 메이저리그에서 20년간 살아남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다.
2000년대 중후반을 지배했던 SK왕조. 이 중심에는 박경완이 든든한 안방마님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팬들은 20승 투수와도 바꿀 수 없는 포수라고 박경완을 떠받들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건대, SK는 박경완이 없었더라도 시즌을 잘 치러나갔을 것이다. 그정도의 전력을 구축한 팀이라면 말이다.
요즘 가장 각광받는 세이버스탯 WAR(대체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를 통해 좀더 분석해 보도록 하자. 스탯티즈(www.statiz.co.kr)에서 계산한 수치를 따왔다.
SK가 왕조의 시작을 쏘아 올렸던 2007년, 팀의 주전 포수 박경완의 WAR는 3.93이었다. 같은 해에 22승을 거둔 투수 리오스의 WAR는 8.15였다. 두 선수의 가치는 두 배 넘게 차이가 났던 셈이다. 팬들의 애정은 이해하지만, 냉정히 말해 팀에 가져다 줄 수 있는 효과는 급이 달랐던 것이다. 과연 그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팀에 4승이 넘는 차이를 안겨줄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을까?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진 않지만, 2009년에 SK가 19연승을 달성했을 때 마스크를 쓰고 있던 선수는 박경완이 아니라 정상호였다.
20세기를 뒤흔든 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그의 저서 <논리철학논고>를 다음과 같은 말로 마친다.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야디에르 몰리나와 박경완같은 리그 최고 수준의 포수라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지니고 있을 수 있다. 게임을 직접 챙겨보는 팬이라면 그것을 분명히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 순간들이, 162경기 또는 144경기라는 긴 시즌 내내 뚜렷하게 수치화될 수 있는 상수常數임을 입증할 수는 없다.
야구는 스무명에 달하는 엔트리로 한 게임을 치르는 스포츠다. 한 선수의 '무형의' 존재감이 게임 전체를 뒤집을 수 있다면 그건 차라리 마법에 더 가까운 일이다.
이런 오리지널 콘텐츠가 필요하세요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