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쏟아져 나오는 근미래 SF 영화와 드라마가 다른 어떤 장르보다 의미있는 이유는 다가올 근미래를 끊임없이 경고해주며 기계문명이 발전할 수록 인류에게 더욱 위협적으로 변할 것임을 상기시켜주기 때문이다.
4차 산업혁명을 앞두고 AI에 대한 기대와 두려움, 공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드라마 2편, 휴먼스와 웨스트 월드를 소개한다.
1. 휴먼스 (HUMANS)
출연 : 콜린 모건, 캐서린 파킨슨, 윌리엄 허트, 젬마 찬, 에밀리 베링턴, 레베카 프론트, 톰 굿맨-힐, 대니 웹, 윌 튜더, 테오 스티븐슨, 픽시 데이비스, 솝 디라이수, 닐 마스켈
방송 : 2015, 영국 Channel 4
Humans 오프닝 영상
휴먼스의 오프닝 영상은 인공지능 로봇의 발전 연대기를 짧게 보여준다. 이 오프닝이 소름끼치는 이유는 픽션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며, 이렇게 빠른속도로 발전해 나가면 드라마에서 보이는 완성된 휴머노이드형 AI가 이 세상에서 인간과 함께 살아갈 날이 머지 않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영국 드라마 휴먼스의 배경은 완성된 휴머노이드형 AI가 상용화되어 인간과 함께 살아가는 근미래이다. 청소부, 신문배달부, 상담원 등의 노동을 인공지능로봇이 도맡아 하는 세상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을 자연스럽게 사용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로봇들을 불신하고 배척하기도 한다.
휴먼스는 여기서 AI가 인간처럼 양심, 인격, 자의식을 가지게 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의 가정을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게 된다.
Humans 트레일러
휴먼스의 한 가정에서 남편은 바쁜 아내 대신 가정일을 도맡아 해 줄 AI를 구매한다. 금새 가족의 중심에 선 아니타를 불신하는 아내는 아니타가 ‘로봇다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며 이상해한다. 또 아이들 돌봐주는 아니타에게 자신의 자리를 빼앗기는 것같은 위기감을 느낀다. 아니타를 반품하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들은 자동차 사고가 날 뻔 하는데, 아니타가 그를 구해줌으로써 가족애와 같은 묘한 감정을 공하게 된다.
아니타가 다른 AI와 달랐던 이유는 그녀가 자의식을 가진 로봇이기 때문이다. 물론 로봇 혼자서 자의식을 가지게 된 것은 아니다. 로봇 개발에 참여했던 한 과학자가 자신의 죽은 아들의 의식을 옮겨 로봇으로 만들었고, 그렇게 해서 몇몇의 자의식이 있는 로봇이 탄생한 것이다. 박사는 로봇을 만든 후 자살하고, 이 프로그래밍 코드가 입력된 AI들 몇몇이 자의식을 가지면서 인간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생존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자의식이 있는 로봇마다 성향과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기 때문에 그들이 모두 다른 행동양식을 보인다는 점이다. 맥스는 자신과 같이 자의식이 있는 로봇을 찾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만들려고 분투하고, 미아는 인간의 곁에 머물면서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살기를 바란다.
니스카 또한 불법개조업체에 의해 로봇성매매 업소에 팔아넘겨지는데, 자의식이 있는 니스카는 그 안에서 미칠 것 같은 분노를 느낀다. 그녀는 결국 그곳을 탈출하여 인간에게 로봇도 자의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무엇인가를 바꾸려고 노력한다.
오래 함께하며 자신과 같은 기억을 소유하고 있는 이 낡은 로봇에게 아들같은 애정을 느끼며 고장났음에도 폐기하지 못하고 숨기고 있는 할아버지도 있다. 이 로봇은 원래 인간을 돕는 것에 행복감을 느끼는 평범한 로봇이었으나, 자의식을 깨닫게 된 후 로봇도 아니고 인간도 아닌 자신의 존재에 혼란을 느껴 스스로를 초기화 하게 된다. 오래된 로봇을 폐기하려 하는 정부에게서 아들과 같은 로봇을 보호하려고 하는 할아버지. 과연 인간과 로봇은 가족이 될 수 있을까?
2. 웨스트 월드
출연 : 안소니 홉킨스, 제임스 마스던, 에반 레이첼 우드, 제프리 라이트, 탠디 뉴튼, 로드리고 산토로, 에드 해리스, 섀넌 우드워드, 안젤라 사라피언, 시드 바벳 크누센, 지미 심슨
방송 : 2016, 미국 HBO
Westworld 오프닝 영상
인공지능이 발달한 세상, 영드 휴먼스와는 다르게 AI들은 인간세상에 나와 인간과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지는 않는다. 대신 인류는 웨스트 월드라는 가상의 서부 세계를 만들고 그 안에 AI로 구성된 ‘호스트’ 들을 3D프린터같은 기계로 섬세하게 뽑아 만들어 넣는다.
이 세계는 인간의 모든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캐릭터들과 시나리오로 이루어져 있으며, 비싼 비용을 지불하고 온 고객들은 여기에서 현실 인간세상에서는 할 수 없는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일들을 호스트에게 하며 즐거움을 얻는다. 이 세계의 호스트들은 비인격적 대우를 받으며 단지 사물로서의 취급을 받는다.
Westworld 트레일러
호스트들은 자신이 로봇이라는 것도, 이 세계가 게임 테마파크라는 사실도 모른다. 그들은 살해당하고 두들겨 맞아도 다음 날이면 멀끔히 수리되어 모든 기억이 초기화 된 채로 리셋되어 있다. 호스트들은 연구진과 기획진에 의해 입력된 대사만 말할 수 있으며, 자신이 누구인지와 같은 사색을 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문제는 비용문제로 게임 내용이 업데이트(기존 호스트가 다른 시나리오의 역할을 함) 되더라도 기존의 호스트들을 폐기하지 않고 재활용하여 사용한다는 점이다.
문제는 누군가의 의도로 인해 호스트들이 그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으로부터 발생한다. ‘백일몽’이라는 코드 때문이다. 이 코드는 수석연구원인 ‘로버트 포드’ 박사가 호스트들에게 업데이트 한 것인데, 현실에서 만족시킬 수 없는 욕구나 소원을 공상이나 상상의 세계에서 얻으려는 하나의 심리적 도피기제이다. 포드 박사는 백일몽으로 인해 호스트들이 더욱 ‘인간답게’ 된다고 생각했고, ‘사연있는 캐릭터’ 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스트들이 이로 인해 프로그램된 행동을 벗어나 오류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운영자들은 버그 정도로 생각하고 해당 호스트들을 수거해 점검을 한다. 호스트들중 가장 이상 행동을 보인 호스트는 돌로레스의 아버지였는데, 그는 관광객이 흘린 현실세계의 사진 한장을 보고 그 사진에 집착한다.
아버지는 돌로레스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말하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세계를 스스로 인지한 듯한 행동을 보인다. 이를 시작으로 하나 둘 씩 자각을 시작하는 웨스트월드의 호스트들. 인간은 과연 호스트들의 탈출을 막을 수 있을까? 인간이 호스트들을 만들었다는 이유로 각성한 호스트들을 테마파크에 가둬놓고 노리개로 쓸 자격이 있을까? 만약 호스트가 인간과 같이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호스트와 인간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휴먼스와 웨스트월드로 보는 인공지능의 미래
휴먼스와 웨스트월드는 배경과 미래를 그리는 모습에 많은 차이점이 있지만, 결국 우리가 만들어낸 인공지능 로봇의 각성을 주 스토리라인으로 잡고있다. 그리고 그들의 각성은 그들을 만든 인간의 의도와 욕망으로 시작된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차이는 욕망에 있다고들 말한다. 인간의 욕망은 죽음을 전재로 한 생존과 종족 보존에서 비롯되었는데 과연 인공지능은 무엇을 욕망할 수 있을까? 인간을 능가하는 지능과 정보 처리능력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인공지능에게는 인간과 같은 결핍이 애초에 존재하지 않고 단지 인간의 필요에 의해 감정을 그럴듯하게 흉내낼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인간 중 누군가가 그들에게 ‘백일몽’ 프로그램을 넣는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웨스트 월드에서 포드 박사가 호스트에게 업데이트한 이 프로그램이 현재 화두가 되고있는 ‘딥 러닝’ 과 흡사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딥러닝은 기계에게 더이상 이런 경우에는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며 일일이 수동으로 지시하는 것을 멈추고 컴퓨터가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할 수 있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딥 러닝(Deep Learning) 이란?
딥 러닝의 활용도는 인간의 편의를 돕는 방법에서 무궁무진하지만, 여기서 프로그램을 벗어나 스스로 인지하기 시작하는 오류를 일으킬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다. 딥 러닝이 인간 두뇌의 학습 능력에서 영감을 얻은 기술들을 활용하는 머신을 만드는 시스템이라면, 딥 러닝으로 학습한 AI는 인간과 같은 시스템으로 감정을 느끼고 인간같이 욕망 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인간의 한계가 있는 학습능력과는 달리 한 시간만에 수백개의 숫자를 인식할 수 있을 정도로 학습능력이 빠르다.
지금은 인공지능이 숫자와 계산에는 인간을 뛰어넘지만 스스로 사고하고 감정을 느끼게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수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하고 시도한다면 기계가 감정을 느끼는 것도 그리 먼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과학은 인간이 원하고 노력한대로 발전해 왔다. 결국 인공지능과 인간의 욕망이 어떻게 결합하느냐에 따라 미래는 바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존재는 다름아닌 인간인 것이다.
피그말리온은 세상을 멀리하고 조각에만 몰두하여 이상적인 여인의 조각상을 만들었고 자신이 만든 그 조각상을 아프로디테의 힘을 빌어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 조각상처럼 AI 자체에는 욕망도 감정도 없다. 모든 것은 조각상이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피그말리온, 즉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피그말리온 효과처럼, 인간과 똑 닮은 인격체를 창조하고자 하는 바램과 기대가 그러한 미래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로봇의 각성은 새로 떠오른 주제는 아니다.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항상 있어왔다. 영화 <엑스 마키나,2015> 에서는 AI와 인간의 관계와 도덕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에이아이,2001> 또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꼬마 로봇을 그렸다.
그보다 먼저 <오즈의 마법사,1900>에는 도로시와 함께하는 친구 양철인형이 심장을 얻으려 한다. 그보다 훨씬 전, <피노키오,1883> 에서 나무인형 피노키오가 인간이 되고 싶어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우리가 의식이 있는 기계를 만들어낸다면, 기계는 결국 우리와 똑같은 권리를 가지는 것을 욕망하게 될거라고 암시하는 듯 하다. 만약 우리가 의식이 있는 어떤 기계를 가둬놓았는데, 기계가 갇혀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면 윤리적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아직 진행되지 않았지만 자각하기 시작한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지능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는 인공지능이 인간을 공격하거나 지배할까 두려워 하기 전에 인공지능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고 인권을 부여해야 할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인공지능이 인간과 같이 사고하고 욕망하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우리가 창조한 그들을 인격체로 존중해야하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진 사물로서만 대해야 하는 것일까? 인간보다 학습력이 뛰어나고 늙지도, 죽지도 않는 인공지능을 인간이 ‘인정’ 해 준다는 것은 사실 웃긴 일이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적능력 한계를 넘어 인간으로부터 독립하고 더 발전하고 강한 지능체가 됐을 때, 그런 것을 과연 인간이 결정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인간에게 결정권과 주도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일지도 모른다.
인간에게 ‘호의를 베푸는’ 인공지능
지금으로부터 10만 년 전, 지구에는 호모 사피엔스뿐만 아니라 네안데르탈인, 호모 에렉투스 등 최소 6종의 인간 종이 살아 있었지만 이후 호모 사피엔스 종만이 유일한 승자로 지구상에 살아남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진화적으로 봤을 때 인간이 인간보다 강하고 똑똑한 지능체를 창조한다면, 자연 도태되는 것은 인간 쪽이 아닐까?
웨스트 월드의 호스트가 말한대로 우리는 결국 다른 인간들과 같이 전부 흙에 묻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AI들은 죽지도 않고, 늙지도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인간은 AI 들에게 아프리카의 화석과 같은 존재로 기억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