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정주할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어쩌면 행운이다.
MBC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가 회사에서 먹고 자는 모습을 보며 마음 편히 웃을 수 없었던 건, 그것이 오래 머물 수 있는 독립된 공간을 얻지 못한 채 이곳저곳을 전전하는 나의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이다.
이찬주 작가와 열정에 기름붓기가 함께 준비한 ‘밤에 뜨는 열기구 展’은 그래서인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이찬주 작가가 제작하는 모든 작품의 시초에는 1000/100, 그리고 500/30이라는 작품이 있다. 제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번에 알아차렸다면, 당신은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 위해 한 번이라도 매물이나 시세를 들여다본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보증금 1000에 월세 100, 혹은 보증금 500에 월세 30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품에는 옥탑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나 사다리가 없다. 서울의 작은 옥탑방이라도 얻고 싶지만, 보증금 500만 원이 없어 그 집을 얻을 수 없는 청년들은 올라가지 못한 채 그저 방을 바라볼 뿐이다.
열심히 남의 집을 지었지만, 자신이 살 집은 없었던 작가는 이사할 필요가 없는 ‘내 집’을 만들기로 한다.
땅 위에 내가 살 집이 없다면 바다로, 하늘로 가서 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만든 상상의 집은 열기구가 달린 배의 형상을 하고 있다. 비록 하늘은 어둡고 시야는 확보되지 않더라도 온 세상을 갈 수 있는 집이 있다면, 천군만마를 얻은 것만큼이나 든든할 것이다.
‘청춘’이란 단어를 들으면 사람들은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을 떠올리곤 하지만, 오히려 청춘은 밤을 닮았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미완성의 자아를 완성해 나가는 과정, 그것이 곧 청춘이기 때문이다. 이찬주 작가는 어둠 속을 헤쳐 나가는 젊은이들에게, 그리고 그런 자신에게 열기구를 띄운다. 작가의 소망이 담긴 집은 어두운 밤에 떠오르는 열기구가 되어 막막함 속에서 우왕좌왕하는 청춘들에게 작은 불씨가 되어준다.
이찬주 작가와의 대화에는 어둠 가운데 있는 청춘들이 모였다. 어떤 이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는 그 이야기를 깊이 아로새기며 들었다. 또 어떤 이는 자신이 가진 재능을 사람들 앞에 선보이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 순간 각자의 머릿속에 떠오른 청춘의 의미와 형상은 모두 달랐으리라. 작가의 이야기는 그곳에 모인 청춘, 그리고 어쩌면 그 자신의 앞길에도 희미하게나마 빛을 비추어주는 존재가 되었을 것이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며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中
이찬주 작가는 자신을 이야기할 때 기형도 시인의 시 <질투는 나의 힘>을 자주 인용한다. 문장이 자신의 모습과 똑 닮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비극적이거나 절망적이지만은 않다.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얻은 기술과 폐자재를 활용해 만든 그의 작품에는 위로와 희망이 한 줌씩 담겨 있다. 낡은 타워크레인에서 아버지를 떠올리지만, 이내 그 타워크레인은 여전히 건장한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지금 나의 모습이 조금은 초라해 보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 상상하던 청춘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지만, 삶이 밝게 빛나기는커녕 한 치 앞도 알 수 없어 불안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오늘 우리는 열기구에 작은 불빛을 담아 보낸다. 어두워도 우린 간다. 우리가 갈 수 있는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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