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블록체인 스페셜리스트 이형섭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암호화폐와 ‘안전자산의 저주’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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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안전자산의 저주’라고 하면 무엇이 먼저 떠오르시나요?
어떤 분들은 좀비 영화의 교과서인 <새벽의 저주(Dawn of the Dead)>를 떠올리시고, 게임에 흔히 등장하는 저주를 생각하시는 분도 계시겠지만, 저는 안전자산의 저주에 걸린 대표적인 국가들 – 스위스, 덴마크, 스웨덴, 일본 등 – 이 떠오릅니다.
‘안전자산의 저주(curse under safe haven)’란 표현의 뜻을 풀어 보면 이렇습니다.
“특정 통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며 타 통화 대비 강세를 보여, 이 때문에 해당 국가의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현상.”
오늘은 ‘저주에 걸린’ 대표적 국가들 중에서도 스위스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려 합니다. 유럽 위기, 브렉시트 같은 위기가 있을 때마다 유럽 부호들의 돈은 자체 화폐를 사용하는 스위스와 북유럽 국가들에 몰렸습니다. 그 중에서도 금융으로 유명한 스위스에 특히 많은 자금이 몰렸죠. 스위스는 자체 화폐인 프랑의 강세로 자국 경제가 불안해질 때마다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습니다. 유럽 이 나라 저 나라에서 위기가 있을 때마다 다들 프랑을 찾으니 프랑의 가치는 급등하고 자국 수출 경쟁력이 약화돼 마이너스 금리 도입이라는 강수를 두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국의 프랑에 대한 애정은 식지 않았고, 스위스는 버티다 못해 환율 페그제(peg)를 폐지하기도 했습니다.
*환율 페그제(peg)란?
한 국가의 통화가치를 다른 국가의 통화에 연결하는 환율 제도. 예를 들어, 미 달러당 원화환율이 1200원으로 연계돼 있다면 국제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일본 엔화 환율이 2엔일 경우 엔화당 원화환율은 600원이 된다.
프랑의 강세가 지속되면서 스위스의 수출 경쟁력이 계속 약화되고 관광산업에도 특히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가뜩이나 비싼 스위스 호텔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관광산업에도 큰 타격을 입었죠. 스위스 경관과 비슷하면서 물가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탈리아 북부 지역이 대체 관광지로 뜨기도 했습니다.(저도 몇 번 가봤는데 실제로 언어도 경관도 많이 비슷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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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와 스위스 프랑의 강세가 무슨 상관인가?
일반적으로 자국 화폐의 가치가 약한 국가들은 자국 통화의 지위를 위협할 수도 있는 암호화폐(특히, 비트코인) 도입에 적극적이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자국 화폐로 돈이 몰리지 않아 걱정인데, 굳이 암호화폐 시장을 키워 줄 이유는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안전자산의 저주’에 걸린 국가들의 상황은 다릅니다. 스위스의 경우 안전자산인 프랑의 강세를 약화시켜 줄 수 있는 암호화폐는 정말 반가운 존재였을 겁니다. 암호화폐 사용을 적극 장려하고 해당 시장을 키워야겠다고 판단한 스위스 정부는 재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취리히, 제네바는 물론 소도시 주크(Zug)를 일명 ‘크립토 밸리(Crypto Valley)’로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어느 국가보다 빨리, 2013년에 말이죠.
제가 암호화폐에 처음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 2014년이었고, 업계에서 활동하기 시작하기 시작한 시점이 2015년이었는데, 스위스는 이미 2013년 국가 차원에서 ‘크립토 밸리’까지 세운 겁니다. 금융 선진국답게 돈이 몰리는 곳, 아니 돈이 몰릴 곳을 선점해 파이를 키운 스위스 정부의 빠른 대처가 아직도 놀랍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보고 좀 배웠으면 좋겠네요. 노동으로 돈을 버는 것만이 미덕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을 어서 빨리 던져 버려야 합니다. 노동으로 버는 돈이 가치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사설이 길었습니다.
스위스 정부의 판단은 경제의 흐름과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주크는 성공적인 암호화폐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2016년, 2017년, 그리고 올해인 2018년에도 수많은 ICO 업체들과 블록체인 업계의 인재들이 스위스로 몰리고 있고, 실제 사업을 스위스에서 진행하진 않더라도 법인 설립 시 제공되는 세금 면제 등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 법인만 스위스에 설립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를 통해 스위스는 자국화폐 프랑의 강세로 인한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었고, 지금 이 시점에도 암호화폐를 이용해 자국화폐 프랑에 걸린 안전자산의 저주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스위스의 블록체인 산업 키우기는 현재진행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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