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 달에 두 번 월급을 받는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이야, 부럽다!” “투 잡이야?” 둘 중 하나의 반응을 보인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나와는 거리가 조금 있다.
내 직업을 한 마디로 간단하게 말하기엔 어딘가 애매한 구석이 있다. 굳이 말하면 ‘콘텐츠 작가’ 혹은 ‘에디터’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업무 형태는 프리랜서다. 중소기업 두어 군데의 일을 맡아 하는데, 복합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직종을 하나로 딱 집어 말하기 쉽지 않다. 더구나 단기 프로젝트가 들어오면 더 많은 곳의 업무를 진행하기도 한다.
내 경력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콘텐츠 작가’라고 하면 어떤 콘텐츠냐고 묻는데, 사람마다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다르기 때문에 설명이 애매해진다. 또 ‘작가’라고 이야기하면 반사적으로 “책 냈나요?” “책을 내야 작가 아닌가요?” “어디서 글을 볼 수 있죠?” 등의 질문이 돌아온다.
그 모든 게 번거로워 한동안 ‘잡역부’라고 말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다. 내가 할 줄 아는 업무 내에서 주문이 들어오는 대로 거의 다 해 내는 편이니 잡역부가 맞다. 그런데 잡역부라고 말했더니 소문이 이상하게 났다.
내가 일용직으로 일한다, 아르바이트로 연명(?)하고 있다는 등의 소문이 지인들의 귀에까지 들어가 내게 되돌아왔다. 씁쓸한 편견이었다. 잡역부는 여러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일용직이나 파트타임직이나 그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것과 소속에 따라 일용직이나 아르바이트로 분류되는 것은 분명 다르다. 정규직으로 소속돼 있지 않아도,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을 충분히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튼, 중소기업 두어 군데의 일을 맡아 하는 까닭에 업체별로 정해진 결제일에 돈이 들어온다. 액수가 많지는 않지만 한 달에 두 번 떨린다. 프리랜서가 되기 전 정규직으로 일할 때는 한 달에 한 번만 떨렸다. 액수는 그때와 크게 다를 바 없지만 지금은 두 번 떨리니 이득 본 것 같다.
프리랜서지만 웬만해서는 게으르지 않게 생활패턴을 고정하려 애쓴다. 아침 7시에 남편과 함께 일어나고 아침식사를 한다. 남편이 출근하면 집은 간단히 정리하고, 업무를 시작한다. 맡은 일이 많은 날은 하루에 6~8시간을 꼬박 일한다.
중간에 점심을 먹는다. 회사에서처럼 1시간을 꼬박 여가 시간으로 쓰지는 않는다. 간단히 음식을 차려 먹고 양치질을 한 후 10분 정도 앉아 쉰 다음 바로 일을 재개한다. 회사를 다닐 적에는 업무시간에 동료들과 차도 마시고, 잡무를 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회의가 잦아서인지 업무에 바짝 집중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집에서 혼자 일하게 되니 집중도가 깜짝 놀랄 만큼 높아졌다. 전에는 이틀 간 나눠 하던 일을 지금은 하루 8시간만 집중하면 끝마칠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일찍 일을 시작해 빨리 끝낼 수 있다는 점이 프리랜서의 좋은 점이다.
일에 요령이 붙거나 오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오전에 속도를 바짝 내 업무를 마무리한다. 처음에는 여유 있게 하루 종일 일하는 날이 많았는데, 요령이 생긴 요즘은 오전이 정신없이 바쁘다. ‘오후엔 놀고 싶다!’는 사심에 사로잡혀 타이핑도 평소보다 빨리, 메모도 빨리, 기획도 빨리 해 내는 것이다.
운 좋게 오전에 일을 마치면, 오후에는 주로 책을 읽는다. ‘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으면서, 막상 놀 수 있게 되면 엄청 시시하게 논다. 집에서 책을 읽거나 도서관에 가는 식이다. 날 저물 때쯤엔 채소가게가 번잡해지니 한산한 낮 시간대에 나가 채소 장을 본다. 가끔 빵집에 가서 갓 나온 빵이 있는지 기웃거린다. 딱히 살 것도 없으면서 집 앞 인테리어숍을 어슬렁거리거나 목적지 없이 집 근처 호숫가를 하염없이 걷기도 한다. 오후에 놀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것 치고는 너무 모양 빠지게 노는 듯싶지만, 좋아하는 게 이런 쪽이니 별 수 없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으면 전철역 근처로 남편을 마중하러 나간다. 시간이 나도 할 일이 어지간히 없는 것이다.
오전에 바짝 일했으면 오후에 어디 구경을 다니거나 가까운 곳에 여행이라도 다니면 좋으련만. 그나마 생활반경을 넓히는 날엔 영화를 보러 가거나 전시회에 간다. 어릴 적부터 혼자 놀아 온 탓인지 혼자 문화생활을 즐기는 시간이 가장 편하다. 이런 날은 편한 신발을 신고, 가벼운 책을 한 권 가방에 넣고 나간다. 목적지 근처에 일하는 친구가 있으면, 전날 미리 연락해 뒀다 차 한 잔 마시고 오는 날도 있다.
여기까지는 프리랜서로 전향한 후의 즐거운 반쪽이다. 슬픈 반쪽도 분명히 있다. 사람들이 나를 ‘알바생’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잡역부라고 잠시 떠들었던 기간에 내가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로 겨우 산다며 소문이 났던 탓도 있다.
그런데 딱히 반박할 수 없었던 게, 프리랜서는 정규직이 아니다. 근로자이기는 하되 ‘용역’이다. 사람들은 정규직이 아니면 그 외 모든 업무 형태를 동일하게 인식한다. 나는 4대 보험을 내는 정규직이 아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와 비슷한 위치에 있다. 따라서 해고도 쉽고, 계약 기간도 짧다. 실제로 지금 맡은 두 개 업체 중 한 곳은 조만간 계약이 종료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업체는 새로 구하면 그만이다. 그래서 아르바이트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본다. 수입이 줄어든 것도 아니고 즐겁게 일을 하고 있음에도. 정규직이 아니라는 이유로 그 불편한 눈빛을 감수해야 한다.
그것까지는 참을 수 있다. 가장 힘든 것은 소신껏 일하는 나를 ‘반 백수’로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지난 명절, 친척 한 분이 프리랜서로 일한다는 내게 말씀하셨다.
“집에서 일한다고? 그럼 거의 노는 거네. 남편 아침밥이나 잘 챙겨.”
“출퇴근 안 하면 노는 거야. 남편한테 잘해.”
“너 그렇게 편히 살면서 밥상 차릴 때 반찬은 몇 가지나 올리니?”
다시는 그 분과 긴 이야기를 주고받고 싶지 않을 정도로 몹시 화가 났다. 게다가 나를 낳아 키워 준 엄마까지 나의 프리랜서 생활을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신다.
“너는 집에서 일하니까 가정주부와 다를 바 없어. 네가 전업주부만큼 집안일을 해야 하는 건 당연해!”
이렇게 주장하시며 남편과 가사를 분담한 나를 엄청 나무라신다. 업무 형태가 달라졌을 뿐이지 똑같이 일하고 있다는 걸 아무리 설명해도, 집에서 일하는 것은 그저 부업이라고 받아들이실 뿐이었다.
내 직무 내용과 업무 방식, 경력에 대해 손톱 만큼도 모르는 사람들이 날 반 백수로 낮춰 평가하는 것은 프리랜서가 된 이후 가장 참기 힘든 부분이다. 타인의 직업과 삶의 방식, 업무 패턴에 대해 말할 때 신중해야 하는 건 나이나 관계를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예의다.
열심히 일하는 나를 반 백수로 평가하는 이유는,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회사생활이 당연한 삶의 방식이거나 직업의 큰 틀이라고 인식되어서일 것이다. 그건 이해한다. 나 역시 대학 졸업 이후 회사에 다니는 걸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고, 회사라는 조직에서 일하는 것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었다. 졸업 후 9년 동안 조직 안에서 치고 치이면서 살았다.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치고 치이는 생활. 줄을 잘 서야 하고 말 한마디를 해도 득이 되는 말로 골라 해야 하며,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서는 안 되는 회사생활이 끔찍이 싫었다. 정치에 무능한 나 같은 사람은 회사생활을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선 안 되는 것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인생을 갖다 버리는 꼴이었다. 그토록 싫었지만 열심히 회사를 나갔고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지만, 사실 삶은 마음 먹기에 따라 어떻게든 짤 수 있는 것이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 선언’을 할 무렵, 불면과 초조로 손끝까지 파들거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불안한 시간을 잠시 견디고 나니, 이제는 프리랜서로 일하는 나를 껍데기가 아닌 진짜 내 모습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놀랍도록 유연해진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일요일마다 가슴이 조여 오고, 금요일 밤이면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을 하고, 야근이라도 하고 오는 날이면 겨우 씻고 침대에 쓰러지던 나는 이제 없다.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해 하루를 길게 쓰는 법을 익히고, 아플 때면 눈치 볼 일 없이 쉬어도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제야 배운다. 점심시간마다 조미료에 버무려진 밥을 먹는 대신 건강한 음식을 적당량 먹을 수 있고, 남편과 매일 저녁식사를 함께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조직의 유리천장이 미치도록 두려웠던 30대 중반의 암담함을 이제는 벗어났다. 정규직이 아니라는 현실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지금은, 비록 어느 회사 소속의 어떤 직급이라고 나를 소개할 순 없지만, 개인으로서 맡은 업무를 확실히 해 내며 내 가치를 증명한다.
사회생활을 준비하며 멋진 커리어 우먼을 꿈꾸던 대학시절의 내가 지금의 나를 만나면, 내 모습이 마음에 들까? 머릿속에 그려 오던 모습과 많이 다른 삶을 살고 있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정규직이라는 상자 안에 갇히는 대신 상자를 벗어나 즐겁게 사는 방법을 찾은 나를, 과거의 내가 좀 더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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