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스물]로 성공적으로 데뷔한 이병헌 감독은 2018년 성인 코미디를 표방한 영화 [바람 바람 바람]을 선보입니다.
솔직히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극한직업]으로 대박을 쳤고, 드라마 [멜로가 체질]에서 각본과 연출을 맡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상당한 기대를 하며 영화를 보게 되었는데요.
[바람 바람 바람]의 원작은 2011년 체코 영화 <희망에 빠진 남자들>(감독:이리 베데렉 원제: Muzi v nadeji)으로, 이병헌 감독은 “성숙해야할 나이임에도 성숙하지 못한 인간들의 일상과 일탈을 그린 영화”라고 소개하기도 했었습니다.
왜 바람을 피우는가
이 영화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단순히 ‘바람을 피운다’라는 명제가 아니라 ‘왜’ 바람을 피우는가라는 것을 전체 이야기 속에서 찾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어서 소개하는 영화 감상 후기도 이 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요.
그 전에 한 가지만 얘기하자면 영화 제목이 [바람 바람 바람]이고 주제도 ‘바람’이기 때문인지 감독은 영화의 배경을 제주도로 선택했습니다. 제주도는 오래 전부터 돌, 여자 그리고 바람이 많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니까요.
석근과 담덕
이 영화는 기본적으로 천하의 바람둥이 석근 (이성민)과 그의 매체 봉수 (신하균)이 이갸기를 이끌어갑니다. 그리고 석근에게는 그만을 바라보는 아내 담덕 (장영남)이 존재합니다.
과거에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롤러코스터 디자이너로 일했던 석근은 제주도에서 모범택시 운전 기사를 합니다. 그의 전 (前) 직업을 롤러코스터 디자이너로 설정한 이유는 아무래도 우리가 현실에서 바람을 가장 정면으로 받을 수 있는 때가 롤러코스터를 탈 때여서이기 때문이 아닐까 ‘추정’하는데요, 감독의 속마음을 알 길이 없으니 어디까지나 추정입니다.
사실 롤러코스터는 바람뿐만이 아니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과정을 통해 상당한 짜릿함을 주는 놀이 기구인데요, 롤러코스터가 주는 짜릿함을 연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다양한 손님을 만날 수 있는 택시 기사, 그것도 모범 택시기사를 하며 항상 바람을 필 준비가 되어 있는 석근은 실제로 영화 시작 부분에 택시 승객을 구워 삶어 바람을 피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예기하면 ‘타고난 바람둥이’이라고 할 수 있는 석근.
그런 석근은 자신의 아내 담덕이 자신이 바람을 피운다는 사실을 모르는 줄 압니다. 그래서 어느 날 바람 피운 것을 들켰을 때도 미안한 척 넘어갑니다. 마치 처음인 것처럼 연기하면서 말이죠.
하지만 담덕은 그가 그토록 바람을 피우고 다녔다는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롤러코스터 디자이너로 일할 때부터 말이죠. 하지만 아무 말 없이 그저 가정을 든든히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것은 그토록 오래 결혼생활을 유지해왔음에도 두 사람은 아이가 없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딱히 나오질 않네요.
이후 석근은 바람핀 걸 들켜서 미안한 마음에 담덕에게 명품백을 선물합니다. 그리고 담덕은 그 명품백을 갖고 자전거를 타며 장을 보러 다니던 중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되는데요.
이런 상황을 맞이한 석근은 담덕에게 너무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장미를 들고 그의 무덤을 찾아가 울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 때 의외의 남자가 나타납니다. 바로 맹인 안마사 (양현민)이 나타나 ‘누님은 튜울립을 좋아하셨어요’라는 사실을 얘기하는데요, 석근은 이 남자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담덕이 좋아했던 꽃을 알고 있는지 궁금해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화의 반전 아닌 반전이 등장하는데, 사실은 담덕도 바로 이 안마사와 바람이 났던 것입니다. 결국 부부가 같이 바람이 났던 것이죠.
하지만 담덕의 바람은 석근의 바람과 많이 다릅니다.
석근은 타고난 바람둥이로 아예 작정하고 바람을 피운 것이지만, 담덕은 그런 석근에게 아내로서 그리고 여자로서 ‘존중을 받지 못해’ 바람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외로웠던 것이죠.
살 붙이고 같이 사는 남편은 가족으로써 자신을 바라볼 뿐 사랑하는 아내, 사랑하는 여자로 보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람을 피운 것에 대한 박탈감이었던 것이죠.
봉수와 미영 그리고 제니
봉수는 석근의 매제입니다. 쉽게 얘기하면 봉수의 아내 미영 (송지효)가 석근의 여동생인 것이죠.
석근은 25살에 만난 첫사랑 미영과 결혼할만큼 연애 경험이 부족한 남자입니다. 심지어 요리학원에서 유부녀 수강생의 유혹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정도인데다 석근이 바람 피는 현장을 목격하곤 ‘그래도 되는 거냐’는 식으로 진지하게 얘기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바람을 ‘소개’해준 사람이 바로 석근입니다. 자신의 여동생 남편에게 바람을 피우라고 권유하는 설정이라니 아연실색할 수 밖에 없는데요, 하지만 생각보다 이 과정에 이성민이라는 배우의 연기 때문인지 큰 무리 없이 지나갑니다.
그리고 그렇게 석근이 소개한 봉수의 바람 상대는 바로 제니 (이엘).
처음 등장한 당구장 장면에서부터 온 몸에 색기를 품은채 등장한 그녀에게 봉수는 호감을 느끼고 결국 그녀와 바람을 피우게 됩니다. 심지어 그녀의 집에 들락거리기까지 하면서 말이죠.
사실 봉수가 전혀 그답지 않게 바람을 피우게 된 데에는 아내 미영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해서가 아닐까라고 보여집니다.
일단 두 사람은 오로지 아이를 갖기 위해 미영의 배란일에만 부부 관계를 갖습니다. 그 주도권은 당연히 미영이 갖고 있고요.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운영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파리만 날리는 상황인데, 봉수는 어떻게 해보겠다는 의욕조차 없습니다. 원래 봉수는 중화 요리를 좋아하고 또 잘합니다. 그래서 중화요리 식당을 하고 싶어했고, 또 싶어 하죠. 하지만 성격이 센 아내 미영의 강요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태리 식당을 운영하는데요.
물론 나중에 제니를 몰래 식당으로 데려와 직접 요리한 짜장면을 맛 보게 했을 때 받은 그녀의 칭찬으로부터 봉수는 자신감을 얻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엔 중식당으로 업종 변경을 하고는 대박을 치죠.
이처럼 일에서도 부부관계에서도 아내 미영으로부터 존중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계속되자 천하에 순진했던 봉수조차 바람을 피우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담덕과 봉수의 사례에서 보듯이 배우자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상황이 되면 바람을 피우게 되는 게 아닐까 합니다. 자신을 인정해주고 존중해주는 사람과 함께 말이죠.
그렇다면, 이런 상황은 과연 바람 피운 것에 대한 면죄가 될 수 있을까요?
영화 최대의 반전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에서 생각지도 않은 두 번의 반전 장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 첫 번째는 바로 미영의 바람입니다.
영화 상에서 미영은 유일하게 바람을 피우지 않은 인물로 그려집니다. 석근이 바람 핀 증거를 잡은 담덕이 그를 용서했다는 사실은 안 미영은 담덕을 찾아가 왜 용서했냐고 묻습니다. 자신의 오빠지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죠.
그래서 남편, 즉 봉수가 바람 피우는 것을 안다면 어떤 행동을 할지 몰라 봉수는 늘 조심했습니다. 심지어 제니가 집으로 찾아와 관계를 가질 때도 미영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런 미영이 알고 보니 운영하는 식당의 요리사인 효봉 (고준)과 바람을 피우는 관계였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감쪽같았던 반전이었는데요.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에 미영에게 아이가 생기는데 아이의 아빠는 과연 누구일까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두 번째 반전은 석근과 제니의 관계입니다.
주지하다시피 제니는 석근이 봉수에게 소개해준 인물입니다. 그래서 봉수는 제니와 바람이 난 것이고요.
그런데 영화의 결정적인 순간, 즉 제니가 미영에게 사실은 본인과 봉수가 바림 피우는 사이라고 말하려고 식사를 하는 자리에 나타나 새롭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다며 제니를 지칭한 것입니다.
물론 석근이 이 대사로 미영과 봉수의 문제는 큰 위기 없이 지나갔지만 석근은 봉수와 잠자리까지 가졌던 제니와 결국은 함께 살게 되는데요, 영화를 보면서 이런 결말이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는 또 다른 반전이라고 생각합니다.
제니의 역할
영화 속에서 제니는 ‘어쩌면’ 현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로망을 상징하는 인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첫 번째 이유로는 본인이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조건이나 현재의 상황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사랑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죠. 그 사람이 쑥맥이어서 연애가 재미없어도, 유부남이어서 위험한 관계라해도 제니는 그저 자신의 사랑을 만들어 갑니다.
물론 이 것이 옳다, 그르다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꽤나 얘기할 거리가 많아지는 부분이긴 하지만, 적어도 그 무엇에도 상관 없이 사랑을 만들어간다는 부분은 요즘 여성들에게 어느 정도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합니다.
두 번째 이유로는, 그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입니다.
극 중에서 제니는 당당하게 봉수와 미영이 운영하는 식당을 찾아가는 것도 모자라 서빙 직원으로 취직까지 합니다. 속된 말로 ‘적을 코 앞에 두면서까지’ 자신의 사랑을 표현한 것이죠. 당당하게 적진, 즉 봉수와 미영의 집으로 찾아가 봉수와 대낮에 잠자리를 가진 것도 그렇고요.
흥행 성적은
[바람 바람 바람]을 보고난 사람들의 평은 혹독했습니다.
‘이야기가 뜬금없이 전개 된다’, ‘돈 아깝다’, ‘바람 피우는 거 조장하는 영화냐’, ‘집 안을 개족보로 만들었다’ 등 엄청 안 좋은 평들이 많았습니다.
흥행 성적 역시도 그 때문인지 관객수는 백만 명을 간신히 넘긴 1,194,229 명이었고, 수익은 9,784,385,375 원이었습니다. 일 최대 상영횟수 4,843와 최대 스크린 수 985개라는 상황이었기에 아쉬운 결과를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 바람 바람]의 영어 제목은 [What a man wants] 입니다. 남자가 원하는 것이죠.
멜 깁슨이 주연한 [What women want]처럼 여자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능력이 생겨서 연애에 성공한다는 것이 아니라, 결혼 생활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남자가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이 영화의 주인공을 봉수라고 합니다. 석근이야 타고난 바람둥이라 영어 제목에 어울리지 않지만, 봉수는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결혼 생활에서, 그리고 아내로부터 남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봉수가 바람을 피운 이유고요.
예전에 어디선가 들었던 말 중에 ‘살다’의 명사는 두 가지라고 합니다. 하나는 ‘삶’이로 또 다른 하나는 바로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런 과점에서 보면 사랑이란 우리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해야만 하는, 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있어서도 사랑이란 감정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정도 결혼 생활을 한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의리로 산다’고 하는데요.
그 의리 역시 사랑이라는 감정이 밑바탕에 없으면 어렵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리든 사랑이든 서로에 대한 존중과 배려는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그래서 전, 이 영화를 꽤나 괜찮은 영화가 아닐까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 어떤 사랑에도 존중과 배려는 중요하다’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준 영화이기 때문에 말이죠.
#이미지 출처: 다음 영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