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한 장면은 수많은 시각요소를 가집니다. 이러한 시각요소는 프레임 안에 한 데 모여 관객에게 더욱 진한 여운을 선사하곤 하죠. 이처럼 하나의 프레임 안에 시각요소를 감각적으로 정리하고 배치하는 것을ᅠ’미장센’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영화 <캐롤(Carol)>의 한 장면을 분석하고, 영화가 남긴 잔상을 더욱 깊게 느껴보고자 합니다.
영화 <캐롤>은 2016년에 개봉한 멜로 영화입니다. 1950년대 뉴욕에서 ‘인생에 단 한 번, 오직 그 사람만 보이는 순간, 모든 것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랑’을 만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죠.
오늘 분석할 장면은 영화 속 두 주인공 ‘캐롤(케이트 블란쳇)’과 ‘테레즈(루니 마라)’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캐롤’의 남편 ‘하지(카일 챈들러)’에게 들키면서 여행지에서 급히 뉴욕으로 돌아가는 시퀀스 중 한 장면입니다. 동성을 사랑한다는 사실이 양육권 분쟁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을 알기에 ‘테레즈’는 신중하지 않았던 자신을 자책하는데요. ‘캐롤’은 차를 멈춰 세우고 슬퍼하는 그녀를 꼭 안아줍니다. 오직 자동차의 외관과 두 인물의 모습으로 구성된 이 장면은 화려한 미장센으로 대표되는 장면은 아니지만, 절제된 시각요소의 사용을 통해 확고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퀴어를 소재로 하는 작품은 정체성으로 인한 혼란과 같이 인물의 내적 갈등에 집중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 작품은 그러한 갈등 요소를 전면에 내세우기 보다 오히려 평범한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성애가 금기시되었던 당시 시대적 배경(1950년대)을 표현할 방법이 필요했죠. 영화는 그 방법으로 정교한 프레임 디자인을 선택합니다.
프레임은 차량 외관에 의해 꽉 차버렸지만, 차량 내부에는 두 주인공 외에 아무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자동차 프레임에 갇혀 오직 두 사람만이 존재하도록 시각요소를 배치한 건데요. 이러한 장면 구성은 그들의 사랑이 사회적으로는 홀로 이겨내야 할 외로운 싸움이라는 것을 암묵적으로 나타냅니다. 영화의 주제의식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동성애가 금기시되었던 당시 시대적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죠.
이 장면에서 자동차 외관 프레임 다음으로 시선을 끄는 지배 요소가 있습니다. 바로 마치 창틀처럼 보이는 자동차의 전면 유리 프레임입니다. 전면 유리 프레임은 화면을 반으로 분할하는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데요. 해당 장면에서 ‘캐롤’은 자신이 있던 위치에서 두 사람을 갈라놓은 선을 넘어 ‘테레즈’가 앉은 조수석으로 이동하죠.
이러한 분할 구도와 인물의 이동은 해당 장면을 기점으로 두 인물의 성격이 변화함을 예고합니다. 극의 초반, ‘테레즈’는 ‘캐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솔직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반면 ‘캐롤’은 남편 ‘하지’와의 관계 등 외부 요인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감정 표현을 하지 않죠. 그러나 해당 장면 이후, 두 인물의 성격은 서로 뒤바뀝니다. 갈라진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던 ‘테레즈’는 자신으로 인해 곤경에 빠진 ‘캐롤’을 위해 사랑의 감정을 숨기기 시작하고, 프레임을 넘어 ‘테레즈’에게 다가간 ‘캐롤’은 자신의 감정을 확신하고 이별의 시련을 극복하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변모하죠.
조명과 색상도 눈여겨볼 만한 요소입니다. 조명 없이 흐리게 연출된 탓에 관객은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모습 외에 그들의 표정 등은 자세히 알 수 없는데요. 이는ᅠ사랑이 멈춘 순간에 감정을 숨겨야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대변합니다. 또 어둡고 흐리게 묘사된 그들의 공간은 앞으로 두 사람이 겪어야 할 고비와 공개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사랑의 한계를 나타내기도 하죠. 게다가 다채로운 색상을 활용한 다른 장면들과 달리 이 장면에서는 유독 색상이 거의 빠져있는데요. 거의 흑백에 가까운 색상은 그들의 사랑이 ‘컬러’에서 ‘흑백’으로 전환되었음을 보여주며 두 사람의 이별을 암시합니다.
한편 이 장면에서 드러나는 두 인물의 근접도는 긍정적인 기대를 유발하기도 합니다. 서로 껴안고 있어 인물 사이의 공간이 거의 없는 이러한 근접성은 이별이라는 시련 속에서도 두 사람이 결국 용기를 가지고 그것을 극복해 낼 것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죠.
극이 위기에서 절정으로 넘어가는 단계에 위치한 이 장면은ᅠ적절한 시각요소의 사용과 배치를 통해 두 인물의 성격 변화, 관계에 대한 복선, 그리고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함축하여 드러냅니다. 이처럼 미장센이 뛰어난 작품은 관객의 마음에 더욱 오래 기억되는 영화로 남기 마련이지요. 훌륭한 미장센으로 필자에게 깊은 잔상으로 남은 영화 <캐롤> 이 독자 여러분께도 큰 여운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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