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술집이 있어서 간다, 상수동
술자리에서 그런 얘길 했다.
나는 원래 안주하는 걸 좋아하는 본성을 가진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나 자신을 자꾸만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상황으로 밀어넣는 것 같다.
그랬더니 친구가 그랬다. 자꾸 그런 상황으로 나 자신을 몰아가는 그 ‘어떤 이유’라는게 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는 나의 본성은 아니냐고. 잘 모르겠다. 내 인생은 자꾸 내가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술집 선택권이 내게 있을 때 나는 항상 가던 곳을 간다. 굳이 새로운 곳을 찾기도 귀찮고, 좋아하는 곳이니 계속 가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다. 어떤 동네에 가는 이유는 그 술집에 가기 위해서인 경우가 크다. 이를테면 강남은 접근성이 좋지만 좋아하는 술집이 없기에 안가고, 상수동은 집에서 매우 멀지만 그곳에는 좋아하는 술집이 있기에 간다.
본격 술집 포스팅 상수동 편!
1 차는 언제나 심야식당 :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
김씨네 심야식당은 늦게 가면 자리가 없다. 6시에 들어가려고 바로 앞에 있는 이리까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이리까페는 넓고, 바람이 시원하고, 아메리카노가 아주 진하게 맛있다.
이렇게 기다려서까지 가야 하는 ‘심야식당’을 좋아하는 이유는 별거 없다.
좁은 식당이라 회전률을 위해 빨리빨리 손님을 내보내고 싶은게 당연지사일텐데, 메뉴판에 써 있는 ‘지나친 음주는 감사합니다.’라는 문구 때문에 편히 오래 술을 마실 수 있다. 그렇다고 오래 눌러 앉아 술을 마실 것도 아니지만 괜히 마음이 더욱 편하다. 개인적으로 음식 재료 중 두부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곳의 두부데리야끼가 담백하게 맛있는 것도 수많은 이유 중 하나이다. 두부데리야끼 먹으러 가자, 하면 그날의 목적지는 상수동이다.
두번째로 좋아하는 안주는 소고기 타다끼. 따로 설명할 필요도 없고, 간단하고도 즐거운 이유. 맛있다.
누가 주인인지 아르바이트인지 동업자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말 없는 두 분도 좋다. 열 번도 넘게 갔는데 말 한 번 섞은 적 없다. 물론 나 역시 괜히 비벼대는 성향이 아니라서 그렇겠지만 무관심한 듯 따뜻한 느낌이 좋다. 가끔 식당이나 바에서 과잉친절을 베푸는 주인을 만나는 적도 있는데 단골로 가는 곳의 주인과 너무 가까이 지내다보면 서로 기대하는 것이 많아지고, 그러다보면 또 실망도 잦아지기 마련이다. 이곳은 기대도 없고 실망도 없이 은근한 정으로 간다. 음식맘큼 담백하다.
2차는 수염 : 애인이랑 가세요.
얼딩어가 한잔에 5천 몇 백 원. 맛있다.
밤이 깊어가면 이 곳의 음악 소리는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진다. 같은 공간이라도 인테리어나 공간 특성 상 더 시끄럽게 들리는 장소가 있다. 애인끼리 가면 안들린다는 핑계로 가까이 붙어 앉아 속삭이면 되겠지만 일단 셋 이상 되면 안들린다고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술 취하기도 전에 지치게 된다. 그래도 옹기종기 놀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이다.
3차는 상수리 : 신청곡 받습니다.
상수리는 신청곡을 틀 수가 있고, 진토닉이 맛있는 곳이다. 진을 조금 진하게 타달라고 하니 오히려 사장님이 더 기뻐하시며 진을 듬뿍 듬뿍 담아 주시기도 했고, 계란을 삶았다며 삶은 계란을 안주로 주시기도 했다. 프렛첼이 엄청나게 큰 플라스틱 병에 담겨 있고 원하는 만큼 퍼서 먹을 수 있었다.
요즘은 사람도 많아졌다. 손님이 많아지면 주인 입장에서는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내게 상수리의 많아진 손님들은 괜히 내 과자를 뺏은 것 같아 질투심이 인다. 물론 바를 독차지 하고 싶다는 마음 자체가 사장님께는 미안한 일이긴 하다. 하지만 조용히 가서 내가 좋아하는 음악 들으며 혼자 술 마실 수 있는 곳을 바라는 게 큰 욕심도 아닌 것 같은데 요즘은 이게 참 어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