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중국 패션을 다루는 Temper Magazine에 영문으로 월간 연재를 하고 있습니다. 본 포스팅은 11월 1일자의 영문기사를 한글로 번역해 재구성한 내용입니다.
악세서리는 모든 옷입기의 화룡점정이다
태초에 의복이 위험한 환경으로부터 인체를 보호하는 역할에 힘썼다면, 악세서리는 보다 미적인 역할을 맡았다. 최초의 장신구는 주로 동물의 뼈나 치아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전세계적으로 후기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에서 발견된다.
기나긴 역사를 자랑하는 큰 형님 중국 역시 마찬가지. 중국에서 발굴된 최초의 장신구는 베이징 근처의 구석기 시대 북경원인(北京原人) 유적지인 저우커우디엔 (Zhōu Kǒu Diàn,周口店)이다. 이후 청동기 시대 중국 최초의 왕조인 하 왕조와 은 왕조 시기에 주조기술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장신구가 등장하게 된다. 중국 내 대부분의 박물관에는 고대 장신구만을 모아둔 구역이 있으며, 유명한 시안 진시황릉의 병마용 군단도 예외는 아니다. 물론 이 경우의 장신구는 멋을 뽐내기 위한 사치품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지위나 계급을 나타내는 용도가 더 강했다.
비녀의 경우 현재 여성용 장신구로 인식되는 면이 크지만, 이전에는 남성들 또한 관모를 고정하기 위해 자주 사용했던 악세서리다. 특히 계급을 보여주는 관모와 함께 착용했기 때문에 더욱 상징성을 띄었다. 당시의 장신구는 또한 주술적인 의미를 내포하기도 했다. 모란이나 용 등 좋은 의미를 가진 상징을 차용하기도 했고, 행운을 상징하는 옥의 사용도 두드러졌다.
청대 (1644-1912) 들어서면서 중국 패션은 보다 화려해지고 다양해졌다. 지금도 유명한 치파오 (Qípáo, 旗袍)가 바로 청나라 탕좡 (Táng Zhuāng, 唐装)의 종류 중 하나이며, 악명 높은 전족 풍습 또한 이 시기에 활발해졌다. 악세서리의 미적인 용도가 더욱 커지면서 이 시기 사람들은 보다 화려한 장신구를 선호해 에나멜의 사용도 늘어났다. 이후 중화민국 시기에는 진주와 은 장신구가 유행하면서 현재의 악세서리 개념에 가까워졌다.
80년대 들어서면서 중국의 악세서리 산업에 큰 사건이 일어났다. 중국 정부에서 악세서리/장신구 사업을 수공예 예술 분야로 공식 지정하면서 막대한 자원과 인재를 투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어서 90년대 중국의 시장 개방에 맞추어 많은 해외 패션 브랜드들이 중국에 진출하며 중국 소비자들은 ‘브랜드’라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 후 약 20년 간, 중국의 소비자들의 선호는 급격히 증가하면서도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2002년 백금 악세서리의 가장 큰 손이었던 중국 소비자들은 곧 그 흥미를 순금 악세서리로 옮겼다. 하지만 요즈음의 젊은 소비자들은 금 주얼리들을 올드하다고 여겨 올해에만 금 소비가 전년 대비 7% 감소했다. 그들의 눈은 최근 다이아몬드에 꽂혀 있는 모양. 드비어스의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0년 간 중국의 다이아몬드 소비는 세 배 넘게 증가했단다. 2선 도시의 소비자들과 밀레니엄 소비자들의 저력이 발휘된 결과다.
중국 악세서리의 현재 – 시누아즈리 chinoiserie
중국의 패션 브랜드들 가운데는 중국 전통 디자인에서 영감을 받은 곳들이 적지 않다. 중국홍 (中国红) 이라 불리는 쨍한 빨간 색채를 비롯해 전통적으로 좋은 의미를 가진 상징물인 모란이나 소나무 등의 모티브를 종종 차용하기도 한다. 한 예로 2013년 유명 주얼리 브랜드 Chow Sang Sang은 잉어와 승천하는 용, 중국 전통 전지공예(paper cut art: 종이를 잘라 문양을 만든 중국의 전통예술) 디자인의 골드바를 출시한 바 있다.
(2)편에서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