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인의 자녀가 어떻게 대학에 들어갔는지가 이슈가 되면서 ‘학종’의 불공정함에 대한 분노가 커지고 있다. 지난 해 스카이캐슬에 대한 반응은 시니컬함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 이 이슈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마치 계층간 불평등이 지금까지 없었다고 믿었던 것처럼 사회가 정말로 공평하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격렬하다.
이 분노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듯 보인다. 이 분노를 보며 문득 떠오른 건, 구인과정에서 여성들을 구조적으로 차별했다는 지난 해 뉴스였다. 채용과정에서의 여성 차별 정황은 여러번 기사화되었지만 이렇게 넓게 그리고 격렬한 분노를 일으켰던가? “불공평함”이 이 분노의 원인이라면 왜 어떤 경우에는 이렇게 분노하지 않을까?
우리가 평등한 혹은 공평한 세상에 살고 있을까? 계급이 사라지고 능력주의가 자리 잡았다고 하지만 정말 이 자본주의 세상이 능력에 기초한 평등한 세상일까? 아무리 순진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정말 이 사회가 공평한 능력주의 세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끔씩 그 불공평함이 드러나 버리는 사건을 접하면 사람들은 격렬히 분노한다. 특히 군대나 대학 입시는 뇌관이다.
대조적으로 여성이 당하는 불공정함은 많은 경우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여진다. 분노를 터뜨리는 20대 ‘전투적’ 페미니스틀은 공감을 받기 보다 오히려 같은 세대 남성들의 분노의 대상이 된다. 여성의 불평등은 너무 오래 이어져 와서 그 불평등함을 바로잡고자 하는 노력은 집단 이기주의로 비치기도 한다.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가 “20대 여성이 페미니즘 등 집단이기주의 감성으로 무장하고, 남성혐오 문화가 확산해 20대 남성 지지율이 하락했다”는 내용의 내부 보고서를 작성했다. 경향신문 2019. 2월 기사
불평등의 기원은?
계급적 불평등의 기원은 기원전 1만년 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에 사피엔스는 야생 식물들을 길들여 농작물화하고 야생 동물을 길들여 가축으로 만들기 시작한다. 저서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밀을 길들였다가 보다, 밀이 인간을 길들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빙하기가 끝나면서 야생에서 자라던 밀과 같은 곡물이 더 흔해지면서 한 곳에서 꽤 오랫동안 채집하며 머물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차 이동할 필요없이 아예 정착하여 곡식을 키우는 농경사회로 진입한다.
하지만 인간은 덫에 빠진다. 처음엔 이 전보다 안정적인 곡식의 공급이 좋았겠지만, 한곳에 정착하게 되면서 출산율도 급격히 올라가게 된 것이다. 더 많은 인구를 부양하기 위해 점점 더 많이 일을 해야 하게 된다. 밀을 위해 땅을 갈고, 비가 오지 않으면 물을 퍼 나르고, 야생동물들이 먹어 치우지 않도록 울타리를 만들어 지켜주고, 잡초를 캐고, 땡볕에서 등이 휘도록 일을 하게 된다.
동시에 농경사회로 넘어가면서 사유재산의 개념이 생기고, 잉여 생산이 늘어나면서 직접 생산에 종사하지 않는 전문가 집단, 종교인들과 관료, 군인들이 성장하며 계급체제를 만들기 시작한다. 계급간 불평등이 생겨난다.
이런 과정은 인류 전체로 보면 진보의 과정이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혁신이 일어나고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생산성은 급격하게 증가하여 인류는 지금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린다. 유전자를 분석하고 화성 식민지 건설을 꿈꾸는 이 모든 문명의 발전은 농업혁명과 함께 가능해진 것이다. 하지만 개별적인 인간으로 보면 계급의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의 삶은 위쪽과 점점 격차가 커진다.
왜 여성은 이런 처지에 놓였나?
계급 사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여성의 불평등도 착착 진행된다. 농업 혁명과 함께 출산율의 급격한 증가가 일어나고 이는 여성과 남성의 지위를 드라마틱하게 바꾼다. 수렵채집 사회의 여성이 평균 4년에 한번 임신하고, 영아 살해 등을 통해 감당할 만한 숫자로 인구수를 조절한 반면, 농경 사회에서 여성은 2년에 한번 꼴로 임신한다. 농업과 함께 노동력이 필요해지면서 여성의 임신은 장려되었고, 여성들은 거의 평생을 임신,수유, 육아에 매인 상태로 지내게 된다. 수렵채집사회에서 여성은 채집을 통해 집단의 생존에 남성과 동일하게 기여한 반면(수렵 채집 사회에서의 , 이제 여성은 2등 시민의 지위로 격하된다.
정갑윤 자유한국당 의원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아는데, 대한민국의 제일 큰 문제는 출산을 안하는 것”
“후보자가 훌륭한 경력을 갖고 있지만, 국가에 대한 책임도 다하라”
인사 청문회에서 이런 질문을 하는 국회의원은 어떻게 이 수준에 그 자리까지 올라 갔을까 신기하게 느껴지지만
여성을 출산의 도구로 보는 시각은 아주 오래되었다.
계급이 출현하는 과정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로 거의 평생을 매이게 된 여성들은 생산 수단에서 소외되고 동시에 계급의 위쪽을 차지하는 사회적 권력에서도 배제된다. 농업 혁명을 거친 모든 사회에서 여성의 지위하락이 일어나며 마치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처럼, 여성의 생물학적인 열등함에 기인한 것처럼 사회적 세뇌가 일어난다.
동시에 자손에 대한 남성의 불안감은 여성을 남성의 소유물로 만듦으로써 해소된다. 여성을가축 또는 물건의 지위로 격하시킴으로써 부계 혈통을 지켜나간다.
여성의 지위가 바닥으로 떨어져가는 이 과정에서 여성이 단결하여 싸우지 못하게 하는 원인들이 있다. 남성을 통하여 권력의 일부를 여성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계급이 다른 여성들이 협력하지 못한다. 공주들이 왕자들보다는 차별 받지만 노예보다는 풍요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남편이나 아버지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기를 갈망하면서, 협력하여 저항하지 못한다. 전 세계의 노동자들이 단결하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아들을 가진 어머니들이 딸보다 아들에게 더 감정이입하는 걸 보신 적이 있는지?
여성 지위의 변화가 불가피해진 이유
20세기들어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는 이유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출산율의 저하다. 이제 여성은 아이를 낳지 않거나 1-2명의 아이를 낳는다.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지 않거니와 인공적으로 출산을 조절할 수 있게도 되었다. 여성들은 출산과 육아에 평균 2-3년을 보내긴 하지만 많은 부분 외주가 가능하다. 상대적으로 이제 출산/육아에서 자유롭다. 사회적인 역할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직업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면서 불만이 생기기 시작한다. 그리고 같은 종류의 불만을 가진 동질 집단, 즉 정치적 요구를 가진 집단으로 성장한다. 이것이 여성에게 불리한 사회적인 제도를 바꾸는 동력이 된다.
이 과정에서 남성의 조력이 있을까? 미국의 흑인 해방 운동에 북부 자본가들이 조력해야 했던 것과 같은 자본주의적 동기가 있을까? 이 것도 역시 출산율의 저하와 연결돼 있다. 출산율이 떨어지면서 여성을 고용해야 할 자본주의적 동기가 생기면서 남성들도 여성의 사회적 진출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노동자로서의 남성은 저항한다. 흑인 해방 운동 과정에서 하층 백인들이 흑인들을 더 핍박한 것처럼, 노동자로서의 남성들은 여성이 자신의 일자리를 뺏어간다고 느낀다.
왜 한국에서 20대가 페미니즘의 최전선에 있나? 그들은 왜 4-50대 가부장제와 여성차별의 실질적 피해자들을 끌어들이지 않나?
온라인에서 본 20대 남성의 질문이다. 화자는 이렇게 질문하면서 실제로 별 피해를 입지도 않은 20대 여성들이 실질적 피해자인 4-50대를 등한시하고 스스로를 여성차별의 피해자로 자처한다고 비난한다.
왜 지금 한국에서 20대 여성이 페미니즘의 최전선에 있을까?
지금 한국에서 20대 여성이 과거 어느 때보다 페미니즘에 전투적인 이유는 이들이 아이를 낳고, 집에서 육아를 담당하는 역할에 머물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80-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여성들 중에는 직장을 꼭 다녀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대학은 다니고 싶지만 그 이후에는 결혼하여 가정을 지키는 것도 괜찮은 선택지라고 생각하는 비중이 꽤 있었다. 지금 20대들은 달라 보인다. 그들은 아내와 엄마가 전업인 삶을 살아갈 생각이 없어 보인다. 그리고 이런 세대에, 직장에서 일어나는 차별은 이제 그냥 넘길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취업에서의 여성 차별, 승진에서의 여성 차별, 여성이 사회 생활을 하기 힘들게 만드는 비공식적인 모든 성차별들이 견딜 수 없는 것이다.
여성으로서 사회생활을 하는 과정에는 늘 딜레마가 따랐다. 당연히 유능해야 하고 유능하다고 인정을 받아야 하지만 동시에 결혼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연약하게 보여야 하는 것이다. 마르고 연약해 보이는 것을 여성스럽고 매력적이라고 사회가(혹은 남성이) 느끼기 때문에 성공한 여성은 보복을 당하는 것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렇게 기가 세서야 결혼할 수 있겠니와 같은. 성공하는 남성에게 젊은 여성이 트로피처럼 따라오는 것과 정반대다.
지금 20대들은 결혼 따위 안하면 그만이지라고 답한다. 20대 여성이 4-50대를 포섭하지 못한다고 20대를 비난하는 것은 이상하게 보인다. 4-50대 여성들이 이 20대의 싸움을 어떻게 지원할 것인가 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