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의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읽다가 한 문장에서 멈춰선다.
누군가에게는 “죽는다는 것은 더이상 모차르트의 음악을 듣지 못한다는 것” 일 테고
“아내에게 죽음이란 더이상 신간을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내가 죽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의 아내와 별반 다를 바 없다. 소설 신간을 읽지 못하기 때문.
소설 단편 <바얀자그에서 그가 본 것>에서는 아내의 책이 두툼하게 부풀어 올랐고 페이지가 바랬지만 새 책으로 다시 구입하기 보다 이 책을 애지중지하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억만금을 주어도 바꾸지 않을 나만의 책을 떠올리고 있다.
4개월 전 <사랑의 이해>라는 드라마에 빠지면서 이 드라마의 원작까지 찾아보며 유튜브에 원작과 드라마의 차이점을 테마로 드라마 리뷰를 진행한 적이 있었다. 드라마가 인기가 많아지면서 원작 <사랑의 이해>를 도서관에서 빌리기 어려워지자 서점에서 이 책을 구매한 기억이 있다. 2개월 가량 드라마와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서 콘텐츠를 만들었던 순간들은 가장 행복하고도 기억에 남는 일이다.
총 6번의 연재를 통해 유튜브 구독자는 200명이나 늘었고, 유튜브에 콘텐츠를 계속해서 연재하는지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었다. 그리고 외국 팬들이 단 댓글에 답을 해주면서 서로의 의견을 발전시키는 과정 또한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렇게 책 <사랑의 이해>는 내 인생의 한 자락을 기억해낼 수 있는 소중한 매개체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우리집은 도서관>이라는 앱에 책를 맡겨서, 대여한 만큼 수익을 올리고자 갖고 있던 책들을 등록하는 과정에서도 <사랑의 이해>만큼은 그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죽을 때까지 소장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다시 소설로 돌아가면, 소설 속에서 남편이 소중히 여겼던 아내의 책은 <인도방랑>이었다. 아내와 나눈 대화가 그녀가 죽고 난 지금에도 그가 버티고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아내는 <인도방랑>에서 인도말 ‘카타무 호갸’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 말의 뜻은 ‘다 끝났어’다. 인도에서는 모래폭풍이 지나가고 나면 이 말을 한단다. 그리고 그의 아내는 이 대목을 읽으며 울었다고 한다.
세찬 모래 폭풍이 오더라도 좀만 버티면 다끝나는 순간이 온다고.
설사 인간에 대한 신뢰도 접어두고 싶고, 아무것도 나아지지 않을 것 같은 때가 오더라도 곧 이런 상황이 끝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슬프면서도 안심이 된다는 그녀의 말에 공감한다. 그녀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계속 신간을 찾아 읽는 것은 언젠가 그 이야기는 우리의 삶이 되리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아내는 옆에 없지만 그는 그녀와 쌓아올린 기억들은 언제든 꺼내봐도 행복하다. 동시에 이제 더 이상 그에게 ‘카타무 호갸’라고 인도말을 들려주던 그녀가 없고, 자신은 비관주의이지만 그럼에도 낙관주의자가 되자던 그녀가 지금 여기에 없다는 사실 때문에 울고 있는 그의 모습에 나의 모습 또한 겹쳐 보였다.
슬프지만 행복한 이 모순된 감정을 나 역시 겪고 있기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