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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스쿠니 문제: 감정 문제를 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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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일본의 국회의원이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했다.  본인들은  “국책에 순직한 분들의 영혼에 숭배의 마음을 갖고 참배했다”는 식으로 말한다. 하지만 야스쿠니신사에 있는 자들은 태평양전쟁에서 A급 전범에 속하는 등의 ‘침략’자들이다. 이처럼 일본은 매년 야스쿠니 문제로 세계와 기싸움을 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일본의 야스쿠니 참배 문제는 감정의 문제로 봐서는 안된다. 야스쿠니 참배는 단순히 ‘평화의 시대’에 ‘전범’을 옹호하는 ‘미친 행동’을 넘어선 것이다. 오히려 이렇게 보는 것이 그 뒤의 이면을 보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다. 여기서는 조금 새롭게 야스쿠니 참배를 바라보고자 한다.

야스쿠니는 신사(神社)이지만 종교적인 곳보다는 한국, 중국과 엮이면서 정치적인 곳으로 인식된다. 정치인들 역시 ‘전쟁의 비참함, 평화의 소중함’을 언급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야스쿠니를 비종교화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신사 비종교’ 시기의 야스쿠니를 살펴보도록 하자. ‘신사 비종교론’에 입각하여 ‘국가 제사’가 된 국가신도는 전 국민과 전 종교를 망라하는 일종의 초(超)종교가 되었다. 종교는 아니기에 기독교, 불교 등과의 양립은 가능했으나 ‘신(천황)을 공경하는 마음’이 애국심이자 신의 길로 보는 일종의 국신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교묘하게 종교의 타이틀을 벗어난 국가신도는 결과적으로 다른 종교를 모두 집어삼켜버렸다. 천황과 국가에 대한 충성과 신에 대한 믿음이 모순되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일본의 종교계는 당대의 정치적 흐름이었던 전쟁 참여에 적극 가담하게 된다. 기독교의 경우 호국영령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를 연관지으면서 “적을 섬멸”하겠다는 마음가짐을 다잡았다. 불교의 경우 ‘천황에게 귀일도 하는 신민도’를 절대의 길이라고 하고 ‘아미타불의 신앙’을 그 안에 포섭함으로써 황실의 명령에 따라야하는 종교적인 근거를 만들었고 전쟁 참여를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이들이 교묘하게 이용하는 것은 종교집단만이 아니다. 그들은 유족들의 마음까지 교묘하게 변형한다. ‘홀로 키운 사랑스런 외아들을 나라에 바친 명예로운 어머니들의 감격의 눈물 좌담회’라는 기사에서는 어떻게 그들의 슬픔이 변형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다카이: 아들도 저승에서 기뻐해줄 거예요. 죽는 방식이 좋았죠. 우는 얼굴 따위를 보여서야 천자님께 죄송하죠. 모두 나라를 위해서인데. 안그래요?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로 언제나 기운이 넘치죠.

나카무라: 정말로 그렇죠. 이제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쓸쓸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라를 위해 죽어 천자님께 칭찬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른 것은 모두 잊어버릴 만큼 기뻐서 기운이 나죠.

모리카와: 변변치 않은 우리 아이인데, 그래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여기서 볼 수 있는 ‘어머니’들의 말에서는 전사에 대한 회의나 슬픔의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나카무라’의 말에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 것에 대한 쓸쓸함이 제시되지만, 그 순간 천자님과 그에게 받는 칭찬이 나오면서 죽음을 기뻐하게 된다. 상실로 인한 슬픔이 상실에 대한 의미부여와 함께 사라지게 된 것이다. 국가신도의 활용으로 유족들은 가족의 전사를 기뻐하게 되고 일반 국민은 전쟁이 나면 천황과 국가를 위해 죽기를 원하게 되었다.

자민당을 중심으로 비종교화 시도가 계속해서 이뤄지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본래 홉스의 리바이어던에서 제기한 논의를 기반으로 형성된 사회계약론에 기초해 생각해보면 주권은 내면이 내면에 있는 한 영향력을 미칠 수 없고 행위로 갔을 때 그것이 위해가 된다면 제재를 가하는 것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종교와 같은 것은 위에서 볼 수 있듯이 내면을 관장한다. 따라서 종교와 통치가 일치되면 통치권력은 인간의 외면과 내면을 동시에 통제할 수 있다. 그리고 야스쿠니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나 숭경해야 할 ‘도=도덕’”으로 기능할 수 있다.

문제는 그곳에 민주주의로서의 정치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민주주의에서의 정치라는 것은 인간의 내면과 내면의 충돌과 그것이 하나의 길로 합쳐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획일화된 내면에서는 애초에 내면과 내면의 충돌이 발생할 수 없기에 정치가 발생할 수 없다. 단지 명령에 순응적으로 반응하는 기계만이 살아있을 뿐이다. 이처럼 일본의 야스쿠니가 가지고 있는 정치성은 정치를 없애는 것에 있다.

한편, 이러한 물음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면과 외면이 통제되는 상황 속에서 그 통제를 벗어나는 존재가 어떤 정치적인 흐름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다. 불가능은 아니겠지만 국민으로서 이를 제기할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이다. 이는 1932년, ‘야스쿠니신사 참배 거부사건’에서 드러난다. 이 사건은 조치대학 학생 중 기독교인이었던 두 학생이 종교적인 이유로 야스쿠니신사에서 참배하는 것을 거절한 사건이다. 결과적으로 조치대학은 이 사건 때문에 엄청난 위기에 처했으나 완전히 굴복함으로써 겨우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학장 이하의 전 교직원 근신 처분과 학생, 신부, 학장 모두가 야스쿠니심사에 참배하고 문부성에 애국과 사적 신앙은 별개 영역이라는 내용을 전달하였다.

이 케이스를 생각해볼 때, 만약 통치권자의 흐름과 반대되는 정치적 흐름을 국민의 이름으로 만들려고 한다면 사실상 국민성을 박탈당하는 경우까지 생각해봐야 한다. 일종의 호모사케르 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호모사케르란 조르조 아감벤의 개념으로, 이에 해당하는 사람은 희생물이 될 수는 없지만 누군가 그를 죽이더라도 살해자는 처벌받지 않게 된다. 이처럼, 신에게 벗어남으로써 내면을 가진 인간이 될 수 있지만, 규율에서 벗어남으로써 증오나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야스쿠니 참배를 단순히 ‘일본은 전쟁과 관련된 잘못이 없다’ 혹은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기원한다’라는 식의 선언으로 이해하면 안 된다. 야스쿠니신사 참배, 옹호가 가지는 정치성은 외부적인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내부적인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기에 야스쿠니는 정치가 종교에 손대려는 ‘제정일치’의 시도로서 내/외면적으로 통제 가능한 국민을 만들어내고 과거 천황을 중심으로 이뤄진 지배의 방식을 되풀이하려는 기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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