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여행은 제 첫 번째 마이애미 여행이었어요. 예전에 비행기를 갈아타러 몇 번 공항만 스쳐 지나간 적은 있었는데 공항 밖으로 나온 건 처음이었죠. 공항에서 몇 시간을 보내며 구경했던 이국적인 마이애미 기념품들, 쿠바 스타일 바들, 부자로 은퇴한 사람들을 위한 ‘보통 집 가격에 0 하나는 더 붙어있는’ 소더비 부동산 매물 광고판들, 알록달록한 팝아티스트 로메로 브리또(Romero Britto)의 그림 등이 그동안 제가 가지고 있던 이 동네 인상의 전부였죠. 하지만 여기서 며칠 지내본 결과, 생각보다 마이애미에는 생동하고 있는 창의적인 문화가 있었고, 남미 등 주변 국가들과의 끊임없는 대화가 있었고, 이를 통한 사람들의 다양하고 유연한 삶의 태도가 있었어요.
아트 바젤 마이애미
7월 중순의 마이애미 날씨는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더워요. 마치 대형 에어컨 뒤에 서있는 기분이 들죠. 앞 아니고 뒤요. 그 뜨거운 바람이 시끄러운 모터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가만히 있어도 푹푹 찌고 습도는 얼마나 높은지, 그래서 이 곳의 성수기를 3월 ~5월 정도라고 해요. 만약 저처럼 한여름에 마이애미를 오게 된다면 여행에서 쾌적한 날씨의 역할이 얼마나 큰 지 알게 될 거예요. 다른 의미로 마이애미가 가장 뜨거워지는 계절은 12월, 1월이예요. 그 유명한 아트 바젤 마이애미가 그 시기에 열리기 때문이죠. 올해는 12월 1일부터 4일까지 열린다고 해요. 그때가 되면 마이애미의 좋은 호텔들은 성수기 가격으로 훌쩍 뛰죠.
아트 바젤 마이애미 : https://www.artbasel.com/miami-beach
자, 다시 마이애미 시내로 돌아와서 이 곳이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 얘기해볼까요.
마이애미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바로 노랫말에도 나오는 마이애미 비치이지만, 또 하나, 아르데코 거리(Art Deco District)예요. 정부에서 이 지역의 건축 양식을 보호하기 위해서 문화재 거리로 지정을 해 놓았기 때문에 제 아무리 건물 주인이라도 외관 페인트 색상을 바꾼다거나 보수를 할 때 정부의 세세한 승인 절차를 거쳐야 되죠. 그래서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어요. 마치 1960년대 엘비스 프레슬리가 살고 있을 법한 그 느낌 그대로 동네가 구성되어 있죠.
아르데코 거리의 건축물
이 거리에 가면 아르데코 워킹 투어가 있어요. 투어 가이드와 함께 한 시간 정도 이 동네를 걸으며 유명한 건물들을 둘러보는 것이지요. 플러스로 작은 아르데코 박물관도 함께 들어갈 수 있는 투어예요. 날씨가 너무 더워서 하지 말까도 잠깐 고민했는데, 이때 아니면 언제 구경할까 싶어서 참가했죠. 한여름만 아니라면 꼭 참여해 보길 추천해요. 수박 겉핥기로 볼 수 있을 건물들도 하나하나 전문가 설명을 들어가며 역사적 배경을 들을 수 있어서 더 오래 기억에 남을 테니까요.
돈 내고 고생해서 배웠으니 한 번 정리 좀 해볼까요? 아르데코란 1920-30년대에 유행한 장식 미술의 한 양식인데 기하학적인 무늬와 다양한 색채감이 특징이에요. 큐비즘, 모더니즘 등의 영향을 받아서 그 이전 시대의 아르누보가 좀 더 화려한 곡선미를 추구했다면, 이건 직선미 등이 좀 더 부각되었죠. 아르데코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프랑스에서 시작을 했는데 유럽과 미국의 곳곳에서 그 양식을 찾아볼 수 있어요. 뉴욕의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대표적인 아르데코 양식이죠.
아르데코는 시간이 지나면서 처음 모습에서 점점 변화를 해갔다고 해요. 1929년 미국의 경제 대공황 이후, 점점 장식 요소를 간소화하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방향으로 건축 양식에 변화가 생긴 것이지요. 마이애미 지역에서 아르데코 건물이라고 불리기 위해선 몇 가지 기준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코트야드, 평평한 지붕(eaves), 철제 난간, 창문의 장식 프레임, 색상과 디자인의 재미 요소(Fun), 장식이 가미된 벽 같은 거에요. 모든 건물이 다 이 기준을 만족시키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몇 개 건물을 보면 ‘아, 이게 아르데코이구나’ 하는 느낌이 오죠.
아르데코 인테리어의 특징
건축의 외관에서도 아르데코의 특징을 알 수 있지만, 실내 인테리어에서도 그 특징이 정확하게 드러납니다. 기본적으로 아르데코 인테리어 스타일은 크게 3가지 정도로 정의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첫째로는 기하학적인 패턴의 반복, 그리고 기계적인 추상 형태의 대칭 구도입니다. 기존의 아르누보에 비해 한층 간결해진 꽃문양, 원, 지그재그, 식물의 덩굴, 뾰족탑 등이 ‘아, 이게 아르데코이구나’를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단서가 되어주죠. 공간 장식에 있어서도 직선을 대칭으로 배열해 공간을 장식하는 것이 큰 특징이고, 이는 무엇보다도 건축물에 안정감을 더해줍니다.
두번째로는 특별한 소재의 사용이에요. 1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직후인 이 시기엔 다시 문화가 부흥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파리의 물랑루즈 시대가 이 시대라고 하면 딱 감이 오시겠지요? 기존이 사용하던 평범한 건축 자재가 아니라, 인도, 아프리카, 아시아 등 다른 대륙에서 물 건너온 마호가니, 자개, 진주, 티크, 상아 등의 귀한 소재들이 아낌없이 인테리어의 소재로 사용되었죠.
세번째로는 색깔이에요. 초록, 주황, 파랑과 같은 선명한 색상들이 많이 사용되었고, 또 동시에 오리엔탈리즘의 영향을 받아 군청색, 노란색, 청회색 등도 많이 쓰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마이애미의 아르데코에서는 이것과는 차별되게 핑크, 민트, 하늘색과 같은 독특한 컬러들이 많이 사용되었고, 이는 곧 마이애미에서만 볼 수 있는 독창적인 스타일이되죠. 역시 건축, 인테리어는 그 시대상, 지리적 특징을 가장 잘 반영하는 당대 문화의 총체 같습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가 느낀 그대로의 마이애미식 아르데코는 ‘조악하지만(나쁜 뜻은 아니고요) 뜨거운 바닷가 날씨에 어울리는 장식 스타일’인 것 같아요. 사실 유럽에서 입 딱 벌어지게 세밀하게 구성되어있는 건축 외관 장식들에 비하면 ‘이거 아르데코라고 이름 붙이기에 너무 대충 만들고, 대충 칠한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지만, 마이애미에서 볼 수 있는 아르데코는 그런 꼼꼼하고 놀라운 기교보다는 미국의 변화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조화로운 건축 양식인듯 합니다. 그러니 정확히 말하면 이 곳은 그냥 아르데코 문화를 보기 위함보다는, 원래에서 파생되어 지역색을 반영한 아르데코를 감상하기에 적합한 곳이지요. 미국 문화처럼요.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파란 하늘과 쭉쭉 뻗은 야자수, 파도치는 넓은 바다와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리는 건축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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