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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영화의 공식을 깬 재난영화,

Koo

9월 초, 관객 900만 명을 돌파하며 여름 극장가 최종 승자 타이틀을 거머쥔 영화가 있습니다. 바로 재난영화 <엑시트>입니다. 국내 재난영화로서 ‘천만관객’의 반열에 오른 영화는 해운대(2009년)와 부산행(2016년), 그리고 괴물(2006년) 정도입니다. 어쩌면 <엑시트>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엑시트>는 ‘전대미문의 진짜 재난을 만나다!’라는 소개처럼, 여러모로 새로운 재난영화입니다. 그동안 공식처럼 쓰이던 재난영화의 클리셰들이 이 영화에선 보기 좋게 깨지는 걸 볼 수 있는데요. 이런 신선함이 관객들의 취향을 단번에 저격한 것이 아닐까요? 이번 콘텐츠에서는 한국 재난영화의 성공을 축하하며, <엑시트>의 흥행요인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 본 콘텐츠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선함을 무기로 여름 극장가를 석권한 재난영화 <엑시트>(사진: 네이버영화)

 

전대미문의 재난, 청년 백수를 덮치다

영화 <엑시트>는 갑작스런 재난을 마주한 산악동아리 선후배의 탈출액션을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 용남(조정석 扮)과 의주(임윤아 扮) 앞에는 그야말로 듣도 보도 못한 재난이 펼쳐지는데요. 바로 도심 한복판에서 일어난 유독가스테러입니다. 국내 굴지의 화학회사에서 해고를 당하고 앙심을 품은 공동창업자가 유독가스를 방출해버리면서 본격적인 재난이 시작되죠. 영화에서 주로 활용되는 재난이 쓰나미, 화재, 시설붕괴 등이었다는 걸 감안하면, 소재부터 신선한 셈입니다.

갑작스레 도심에 퍼진 유독가스와 함께 영화 <엑시트>의 재난이 시작된다.(사진: 네이버영화)

영화 <엑시트>는 주인공을 비롯한 주변 캐릭터에서도 새로움이 돋보입니다. 영화의 주인공 용남은 히어로처럼 묘사되어 오던 기존 재난영화의 주인공들과는 딴 판이죠. 일단은 신분부터가 백수로, 어린 조카에게마저 무시당할 정도로 안쓰러운 처지입니다. 실제로 한 관객은 관람평에서 “온 가족이 모이는 어머니 칠순잔치부터 용남에게는 재난”이라고 표현했을 정도죠.

또 다른 주인공 의주 역시 대한민국의 평범한 20대 청년으로 등장합니다. 직장상사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전형적인 직장인이죠. 용남과 의주의 평범함이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투영하기에 관객들은 영화에 더욱 몰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외모까지 평범한 것은 아니라는…(사진: 네이버영화)

이 영화의 캐릭터가 색다른 부분은 또 있습니다. 바로 악역이 없다는 점인데요. 기존 재난영화에서 관객들에게 ‘고구마’를 먹이는 장본인은 바로 악역들이죠. 보통 재난영화에 등장하는 악역들은 재난을 헤쳐 나가는 주인공을 방해하거나 혼자 살아남기 위해 민폐 행동을 하는 등 여러모로 관객들을 답답하고, 분노하게 만듭니다.

<엑시트>에는 이런 캐릭터가 나오지 않습니다. 의주가 일하는 곳의 점장(강기영 扮)이 다소 이기적인 모습으로 등장하긴 하지만 악역이라기 보단 그저 ‘찌질’한 정도에 그칩니다. 또한 원흉이 된 테러범의 사연에도 집중하지 않습니다. 그저 ‘해고된 데에 앙심을 품고 유독가스테러를 일으켰다’는 설명 정도로 넘어가죠. 전형적인 서사를 과감히 삭제한 자리에는 시원한 탈출액션이 가득 채워집니다.

 

신파 대신 유머를, 오글거림 대신 유익함을 남기다

<엑시트>가 유독 젊은 층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신파가 없다는 점입니다. 기존 재난영화는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희생자를 통해 관객들에게 슬픔을 강요하죠. 사실 이는 재난영화 뿐만 아닌 한국영화 전체의 고질적인 악습입니다. 한국영화의 신파는 마치 ‘자, 지금부터 울어’라고 자막에 쓰여 있는 것처럼 노골적이고 습관적입니다.

하지만 영화 <엑시트>는 ‘쿨’합니다. 주인공 용남의 누나 정현(김지영 扮)이 피해를 당해 용남의 감정을 흔들긴 하지만, 딱 거기까지입니다. ‘눈물을 쥐어짜내겠다’는 의도는 보이지 않죠. 관객들에게 억지감동과 눈물을 강요하는 대신 유쾌한 액션과 유머를 전면에 배치해, 긴박한 상황 속에도 웃음을 터뜨리게 합니다.

그렇다면 영화 <엑시트>의 미덕은 이렇듯 기존 재난영화의 클리셰를 파괴한 통쾌함이 전부일까요?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르기에 그것만으론 조금 부족하죠. 이 영화는 재난을 피하는 주인공들의 액션에만 치중하지 않고, 실제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재난 상식을 알려주는 것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본 전직 소방관이 “<엑시트>의 장점은 재난안전대비 현장을 잘 표현했고 심지어 교육적이기까지 하다는 것”이라고 평을 남겼을 정도입니다. 그의 평대로 관객들이 <엑시트>를 통해 새롭게 알게 된 재난상식이 참 많은데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볼까요?

옥상문은 비상시 개폐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야 하지만 지켜지지 않는 곳이 많다.(출처 : 소방뉴스)

영화 <엑시트>에서의 주요 대피장소는 옥상입니다. 낮은 곳에서 천천히 올라오는 유독가스의 특성 때문이죠. 그런데 대부분의 옥상은 잠겨있는 데다가 힘으로는 열 수 없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사실 관객들에겐 크게 이상할 것도 없는 익숙한 모습입니다. 실제로 건물 옥상이 잠겨 있는 건 흔한 일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위험한 상황에선 이게 잘못된 일이라는 걸 영화 <엑시트>가 알려주고 있습니다.

실제로 옥상으로 통하는 문이 잠겨있는 바람에 피해자를 키웠던 사건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지난 1971년 성탄절에 발생한 호텔 ‘대연각’ 화재 사건이 대표적이죠. 당시 잠겨있던 옥상 출입구 부근에서 23명의 질식 사망자가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지난 2016년 ‘주택 건설 기준 등에 관한 규정’ 16조를 개정해 비상문 자동개폐장치를 설치해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지만, 법 개정 이후 지어진 건물에만 적용된다는 사각지대 때문에 아직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실제로 영화 <엑시트> 흥행 이후, 서울 시내 옥상문을 취재한 현장기사들이 여럿 보도되기도 했죠.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사라지고 있는 점자블록(사진: 열린뉴스)

유독가스로 앞이 보이지 않는 용남과 의주가 탈출을 감행할 때, 점자블록을 참고하는 장면 역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최근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점자블록을 없애고 있어 논란이 된 적이 있죠. 영화 <엑시트>는 점자블록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비슷한 장면은 또 있습니다. 바로 용남이 지하철역에서 방독면 정화통을 찾는 장면인데요. 실제로 지하철역에는 구호용품 보관함이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익숙한 풍경처럼 여기며 지나치는 것 중 하나이지만, 유사시에는 목숨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중요한 시설이죠. 영화 <엑시트>는 이런 요소들을 쉽게, 하지만 확실히 알려주고 있는 것이죠. 영화를 다 보고 나오면 ‘따따따 따아-따아-따아- 따따따…’하고 귓가에 맴도는 SOS 모스부호 신호까지 덤으로 말입니다.

영화 <엑시트>는 재난영화로서 유익함과 재미를 한 번에 잡았다는 평을 받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클리셰를 깨는 신선함으로, 무겁지 않은 유익함으로 관객들을 매료시킨 <엑시트>처럼 새롭고 유익한 재난영화가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Koo

9년 차 프리랜서 작가 구혜경입니다. 소설가로 활동하며 『가려진 문틈의 아이』, 고즈넉이엔티(2019), 『우리는 서로를 보살피며』, 은행나무(2022)를 출간했습니다. 이 밖에도 여행에세이, 유튜브 시나리오, 보도자료 등의 글을 썼으며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 등 다양한 기관의 공식블로그에 콘텐츠를 기고했습니다. 사회 이슈/법률/친환경/재난·재해/영화/여행·관광명소/반려동물 등 다양한 콘텐츠를 쓰고 있습니다. 포트폴리오: writerkoo.notion.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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