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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

arduousallmond
맥시멀리스트의 미니멀라이프 도전기 1
(부제. 몇 번째 도전인지 감히 세어볼 수도 없음)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이 평생을 걸어야 할 만큼 어렵다는 요즘,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는 거대 캥거루인 나는 새삼 이 울타리가 얼마나 든든하고 감사한 것인지 생각해보고 있다.
어릴 때 나는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무언가 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막연하게 내가 어른이 되면,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결혼을 해서 가정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혼자 짐작한 나의 결혼 연령은 무려 26세였다. 요즘 26세 친구들과 나의 모습을 쓱 번갈아 보면,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시간이 지나서 어른이 된 지금의 나는 직업이 있지만 ‘번듯한’이라는 기준에 대해서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어떤 날은 ‘번듯한’ 느낌이 들었다가 또 어떤 날은 안 ‘번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결혼은 하지 않았고, 26세도 훌쩍 넘긴지 오래다.
  
 
집에 대한 환상도 그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 난 어른이 되면 서울에 집이 한 채 있고, 그 집을 내 마음대로 꾸미면서 살아갈 거라는 큰 착각을 했었다.
현실은 서울에 (부모님 집에 포함된) 방이 한 개 있고, 그 곳은 개인의 인테리어 성향이라고는 1도 보이지 않는 그저 무언가를 버리지 못하는 한 사람의 흔적들이 가득한 창고방이 되어가고 있다. 내가 꿈꿔온 집은 이게 아니었다.
 
집에 대한 나의 환상은 이러했다. 우선 나는 결혼 여부를 떠나서 서울에 방 3개가 있는 집에서 살 것을 예상(?)했으므로, 각 방에 대한 컨셉이 있었다.
 
먼저 거실은 우드톤으로 편안한 느낌을 줘야한다. 채도가 낮은 녹색과 갈색을 적절하게 조합하고 원목 가구들을 사용해서 최대한 숲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거다. 서울 한복판이지만 피톤치드가 나올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하지만 우거진 정글은 아니다. 자잘한 잡동사니들은 치우고 최대한 깔끔한 모습으로 자연친화적인 거실, 한켠에는 꽤나 부피가 있는 식물들을 두어야겠다.
침실에 대해서는 딱 한 가지만 충족되면 다른 건 상관없었다. 바로 침대. 나는 꼭 아주 아주 넓은 침대를 쓰고 싶었다. 아주 아주 큰 2인용 침대를 사서 혼자 굴러다니면서 자고 싶다. 침실에는 침대, 옷장, 거울만 있으면 충분하다.
 
다른 방은 작업실. 작업실은 문서 작업을 위한 공간과 취미 작업을 위한 공간으로 나눠서 쓰려 한다. 컴퓨터, 재봉틀 등을 사용할 긴 테이블이 하나 필요하고, 뜨개질이나 만들기를 위한 좌식 테이블도 필요하다. 부자재들을 담아둘 이동식 서랍장도 하나 있다면 좋겠다. 좌식 테이블 밑으로는 작지만 예쁜 카페트를 하나 가 놓여있다. 거실과는 다른 약간 도시적인 느낌과 수공예의 아기자기함이 합쳐졌다고나 할까?
 
다른 하나의 방은 나의 분신 같은 방으로, 나의 지나온 역사(라고 쓰고 버리지 못한 물건들이라 읽는다)와 나의 오만가지 취미들의 집합소이다.
한 쪽 벽면으로는 책장과 장식장이 있다. 책장은 아끼는 책들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게 큰 편은 아니다. 반편 공통점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장식장은 책장의 3배쯤은 되어야한다. 여행 기념품, 피규어부터 이를 모를 장난감, 빈티지 인형들, 그리고 해리포터 굿즈들까지. 바라만 봐도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다. 그리고 한 쪽으로는 내가 아끼는 엽서와 영화 포스터들을 달마다 바꾸어 달면서 감상해야지.
이 모든 것들이 가장 잘 보이는 구석으로 침대도, 의자도, 쇼파도 아닌 그 중간의 애매한 기구를 두고 나의 역사를 감상할 것이다. 참, 배경음악은 summer salt의 heart and my car로 부탁한다. 시간은 해가 넘어갈 준비를 하는 듯한 4시 정도가 참 좋겠다. 나는 하와이를 가보지 않았으나 8090의 하와이를 동경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현실은? 내 망상(?)속 세 가지 컨셉의 방을 크지 않은 방 하나에 다 넣어놨다.
 
 
침대는 여전히 슈퍼싱글이다. 나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그래도 나에게 좁다. 움직임이 큰 꿈이라도 꾸는 날엔 몸을 뒤척이다가 벽에 무릎 박치기를 하고 잠에서 꺼내나기 일쑤다. 나는 아주 아주 큰 침대를 원한다.
큰 장식장을 두고도 하나씩 야금야금 늘려갔던 낱개 장식장도 6개나 되어버렸다. (나 어쩌지?) 빈티지 인형에 대한 취미를 휴식기를 가지고 있지만, 이미 가지고 있는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멈춤은 크게 의미가 없다.
장식장이 커지면서 어쩔 수 없이 책장은 지분을 더 뺏기게 되었고, 줄이고 줄여 아끼는 책들만 남겨두었지만 골라낸 책들도 미련이 남아 버리지 못한 채 한 구석에 쌓아두었다. (나 진짜 어떡해?)
거기다가 지인에게 안 쓰는 재봉틀과 부자재까지 알차게 물려받아서 부자재용 플라스틱 서랍도 장만했다.
 
이걸 다 한 방에 넣는게 가능하냐고 묻는다면, 믿을 수 없다는 사람들을 내 방으로 초대하고 싶다. 이 곳에 불가능이란 없다(?) 이 정신 사나운 잡동사니가 내 방을 벗어나 부모님의 영역을 침범하는 순간, 나는 이 집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는 다른 방법이 없다.
 
 
 
그렇지만 이제는 생각을 좀 바꾸어보기로 했다. 세상 모든 것을 사랑했던 맥시멀리스트이지만 미니멀라이프를 도전해보는 것, 그것이 지금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다.
 
‘내가 독립을 하면, 내 집이 생기면’
이라는 어리석은 생각으로 버리지 못했던 나의 일부들을 이제는 놓아주려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방에서 오래오래 살아야할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마음으로, 이사하는 마음으로, 다시 태어나는 마음으로! 이 방이 이제 내 집이다, 생각하고 정리를 해보려한다.
 
 
우선 오늘은 눈을 질끈 감고 책을 골라냈다. 책들을 정리하면서 절대 보낼 수 없는 아이들은 특별한 칸으로 옮겼는데, 정말 별의별 소중한 것들이 다 있다.
엄마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내가 아닌 나의 형제에게 주려고 산, 그 당시 나에게는 너무 글씨가 많아서 읽기 어려웠던 ‘선생님 덧니에 다이아몬드를’이라는 본격 초등학생의 선생님 짝사랑 로맨스물이 있고, 아빠와 한동안 열심히 당구장을 다닐 때 샀던 ‘당구 기술 교본’. 그리고 문송하다는 우스갯 소리가 나와도 화가 나서 웃을 수 없던 나의 스무살이 담긴 전공책들.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데 무엇을 버려야하는지, 다 그만 두려다가 다시 정신을 차렸다. 서울에는 내 집이 없으니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최근에 다시 읽고 책의 내용을 바로 떠올릴 수 있는 책들을 기준으로, 온라인 중고서점에 판매가 가능한 것들을 추리고 접수까지 완료했다. 자꾸 미련이 남을 것 같아 택배상자에 담고 테이프질까지 완벽하게 끝냈다.
책을 골라내던 중, ‘어차피 다시 또 마음에 드는 책들을 살텐데 괜한 낭비 아닌가’ 라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이겨냈다. 최근 한 3년간 대부분의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고, 다시 읽고 소장하고 싶은 책들만 골라서 구매하고 있으니, 나름 합리적인 소비다. 많은 책들을 비우고 적은 책들을 천천히 채우기로 하자.
 
이번에 정리하지 못한 책들도 따로 분류를 해두었다. 온라인 중고서점에 판매가 가능하지만 한 번 더 읽고 싶어 남겨둔 책들과, 판매가 불가능한 책들. 판매가 불가능한 책들은 혹시 근처에 가능한 기부처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
 
 
10권 남짓의 책을 빼냈지만 티도 안 난다.
길게 잡자, 올 해가 가기 전에는 하와이 풍의 새로운 방을 만들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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