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는 재료로 요리합니다
관광객이 많은 루앙프라방이나 방비엥, 비엔티엔에서는 오래 머무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시내에서 조금만 시골로 들어가면 ‘있는 재료로 요리합니다’라고 하는 식당이 많다. 그러므로 간단한 식재료는 현지어로 알고 있는게 중요하다. 적어도 숫자라도 알아야 어느 정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1 능 2 썽 3 쌈 4 씨 5 하 6 혹 7 잿 8 뺏 9 까오 10 씹
20 싸오 30 쌈씹 40 씨씹 100 러이 1000 판 10000 씹판
한국어랑 비슷한 구석이 있어서 쓰다보면 별로 어렵지도 않은데 문제는 음식이다.
보통 재료를 늘어놓고 우리가 손가락으로 가리킬 수도 있지만 정체가 무엇인지 모르는 음식 재료도 있기 마련. 한 번은 식당 아주머니가 두부 요릴 원하는 우리에게 No 두부라며 대신 검지손가락으로 뿔 모양을 하며 그걸 먹겠냐고 하셨다. 과연 그게 뭘까 기대하며 기다려서 요리가 나왔는데 도무지 이게 뭔지 모르겠는거다. 소인가? 염소인가? 소한테 뿔 있나? 토끼 아닌가? 하며 옷갖 추측을 하면서도 맛있게 먹었다. 하지만 끝내 무엇을 먹었는지 알 수 없어 동행자와 한동안 과연 이 뿔모양을 한 동물의 정체가 무엇일지 토론을 하느라 오랜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산책을 하는데 버팔로를 발견했다. 아, 그 때 우리가 먹은 고기 버팔로인가보다! 유레카!
나중에 현지어 배워서 아줌마에게 물어보니 맞다고 하셨다. 라오스에서는 웬만한 라오어를 배우기가 어렵지 않은데, 영어가 많이 쓰이지 않기도 하고 음식 재료나 과일 이름 등 한 번 외우면 계속 써먹는 생계형 언어라 반복형 학습의 효과가 무엇인지 체험해볼 수 있다. 게다가 현지인들도 별 부담 없이 물어보는대로 가르쳐주고, 이상한 억양이라도 척하면 척 잘 알아 듣는다. 그렇게 그 때 말을 배워 사용하고 다녔었는데, 지금은 다 잊었다.
트레킹 요리, 집밥이 그립지 않다
아무튼 ‘있는 재료로 요리합니다’ 식당에 가서 해야 할 일은 식재료를 현지어로 말하거나, 그게 안된다면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된다. 야채 종류도 참 많은데, 삶거나 볶아서 나오기에 그렇게 향이 세지도 않고 맛있다.
이건 식당 요리는 아니고 트래킹하는 도중 길에서 밥을 해먹어야 해서 먹은 채소요리인데 식당에서 먹는 채소 요리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냥 싱싱한 채소 후드득 뜯어서 그 자리에서 데쳐서 먹는데 그냥 채소일 뿐인데도 그 땐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모르겠다.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집밥이 그립지 않았던 건 다 이 ‘있는 재료로 요리합니다’ 식당 덕분이었던 것 같다. 특이한 점은 한국처럼 밥을 따로 덜어주는게 아니라 앞접시를 주고, 중간에 밥을 진짜 많이 담은 사발과 메인 요리를 놓는다. 아무리 적게 봐도 4명은 족히 먹을 밥량인데, 이걸 그냥 2명 먹으라고 가운데 놔 주니, 그냥 저냥 먹다 정신차리면 밥그릇이 싹 비워져 있다. 당시에는 미친듯 배가 불러도 조금 지나면 날리는 쌀이어서인지 금세 배가 꺼져서 배 터질 것 같아도 꾸역꾸역 먹었다.
라오스, 먹는 즐거움을 알다
오늘은 어떤 요리가 나올까, 두근두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맛이 일품이다.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먹는 족족 다 맛있었다. 난 요리의 생명은 재료라고 생각하는 사람인데, 아무래도 그날 그날 있는 싱싱한 재료를 쓰기에 맛있었던건 아닌가 싶다. 여행을 하면 아무리 맛집에 가서 멋지게 차려 놓고 먹더라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항상 데리고 다니는데 라오스에서는 그런게 없었다. 풀풀 날리는 쌀밥에 계란부침, 데친 채소만 놓고 먹어도 그저 맛있고 행복했다. 이거 주세요, 라고 말하면 식당 아줌마가 들고 들어가 바로 만들어 주시고, 기다리는 동안 조그만 식당에 앉아 음식이 익는 냄새를 맡으며 엄마가 만들어주는 집밥 생각을 했다. 맛있는 밥상이라는 건 사실 대단한 레시피나 다양한 종류의 음식, 뭐 그런 것들이랑은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손맛, 사랑이 담긴 음식, 뭐 이런 단어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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